세상에나, 날이 차요. 어제보다 더합니다. 슬쩍 보일러를 켰어요. 몸에 열을 내며 뛰놀던 고양이들이 조용해집니다. 따듯한 바닥에서 뒹굴다 잠에 들었어요.
어제 소설 한 권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을 뿐인데. 새벽부터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이 솟아요. 올라서는 욕구를 가라앉히고 매트에서 몸 마음을 살폈어요. 흐름 따라 요가하면서 체온을 올리고 가부좌를 틀었습니다.
겨울이 다가오는 게 명실 해요. 마침 몇 차례 환생하는 소설을 읽은 참입니다. 오늘의 그대는 몇 번째 생인가요? 전생을 믿느냐 물으시면, 모르겠다 말할게요. 모른다는 게 정답이지요. 알 수 없으니까요.
"서연이는 이번이 589번째 생이잖아. 엄마는 고작 321번째인데."
하면서, 요러게 농담을 던지곤 해요. 아이가 지혜로운 말을 할 때예요. 어른보다 어른 같은(?) 이야길 하면 감탄을 금치 못해서요. 딸이 6살 때 이야긴데요. 제 반도 안 되는 아이 몸을 수건으로 감쌀 때였어요. 따듯한 물에서 막 나온 참이었지요. 아기가 불쑥 저를 향해 말했어요.
"엄마 고백할 게 있어. 나는 나, 서연이가 하민혜 몸에서 나와야겠다고 결정했었어."
"엥? 그랬다고? ㅎㅎ 그럼 서연이는 엄마 뱃속에서 뭐 했는지도 기억나겠네?"
"응. 수영하고 노래하고, 춤추며 놀았지. 따듯해서 나오기 싫었어."
실화입니다. 당시 소감을 말하자면 신기하고 무섭기까지 했어요. 서연이는 예정일을 훌쩍 넘겨 꼬박 3일을 유도 분만하다 실패했습니다. 4.5kg까지 무럭무럭 자라나 의사의 권유로 제왕절개 했지요.
신기합니다. 전생은 몰라도 아이의 기억은 유효했어요. 지어냈다기엔 영악하지 않을 나이였지요. 물론 어디서든 들었을 수 있겠습니다. 말이 빨랐던 아이예요. 반짝이는 눈빛으로 진실을 고백하던 표정이 아직 생생합니다. 그날 상상을 해보았더랬어요. 나 역시 우리 엄마를 내가 선택했던 걸까, 하고요.
딸의 말이 진실이든 아니든. 우리 모두 자기 삶을 살아왔고, 살아갑니다. 내가 왜 여기 있는지, 목적을 모른다 해도 서연이 말처럼 이 모든 게 나의 선택이라면. 정말이지 홀가분합니다. 자유로워요.
책임을 미루고 싶을 때가 많아요. 옆에 사람에게, 직장 동료, 상사에게. 부모님에게 더 나아가선 신에게로요. 이 삶이 왜 이런 모양인지, 나는 왜 나여야만 하는지. 이곳에 왜 있어야만 하는지를 알 수 없으니까요. 책임을 떠넘기면 조금은 편안해지지만 나 스스로를 옭아매는 꼴입니다.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없어요.
말도 안 되게 어려운 레벨을 고르셨더라도, 그조차 나의 선택인 걸로 해요. 그래야만 이 삶을 무한히 확장할 수 있습니다. 그대는 그대의 삶과 세상 전부를 창조한 셈이지요. 앞으로도 그럴 거예요.
행복한 수요일 만들어 가시길. 따듯하게 다니시고요!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