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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침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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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민혜 Oct 08. 2024

앓고 지나기

아침편지

안녕요. 잘 잤나요? 스미고 번지네요. 창에 나무 그림자만 어른거려요. 멀리는 새하얗게 지워집니다. 코앞만 보고 나아가야겠죠. 시간이 흐르면 안개는 반드시 걷힐 겁니다.


얼마만인가 모르겠어요. 오늘 제게 온 손님은 몸살이에요. 담요를 둘러메고 있지만 오들오들해요. 새벽은 무거운 머리를 목침에 뉘어 헤매었습니다. 코 아래 숨이 따듯해요. 더 할 말이 없다는 듯 목구멍은 먹먹합니다.


사고 때문은 아닌 걸로요. 몇 곱절로 돈을 벌었던 9월을 지나왔어요. 맵고 밍밍한 맛을 계속 입에 넣은 참이에요. 기념비적인 날도 있는데 마침 어제도 그래요. 이런 날들 중에도 읽고 쓰며 일을 해왔다는 게 놀라워요. 오늘 몸살은 정당합니다. 진즉 앓아야 했어요.


'재향 군인의 날'이에요. 달력은 어려서 할머니랑 살던 때 집에 있던 것과 똑같이 생겼어요. 음력 달력이고 숫자가 큽니다. 10월은 뭐가 많네요. 지난주 '노인의 날', '세계 한인의 날'부터 내일 '한글날', 다음 주 '체육의 날', '부마민주항쟁 기념일'..


아직 한참이에요. 줄줄 읊으려다 고단하실까 그만둡니다. 축제와 행사가 많은 달이지요. 밖에 모이기 좋은 날씨니까요. 다만 부고 소식도 잦아지는 때예요.


촘촘했던 여름과 달리 서늘해서 일까요. 늦은 밤 아이를 안고 살을 비볐어요. 따듯하고 보드라워요. 코앞에 아이를 두고 바라보는데 괜히 무안합니다. 언제 이렇게 커버렸는지, 무책임한 그 말을 차마 꺼내지 못했어요. 그저 쓰다듬고 바라봅니다.


물고기가 강물 '속'에 흘러가고 있다면, 강물의 유속을 알아차릴 수 있을까요. 시간 속을 지나며 우린 그 질감을 느끼기 어렵습니다. 앓고 넘어질 때에야 잠시 멈춰 바라볼 있겠죠. 그제서 알알이 헤아리는 겁니다. 지나간 시간과 다가올 시간을요.



운동은 넘기지만 출근할 거예요.^^ 평소처럼 읽고 쓸 거고요. 약은 먹겠습니다. 글이 짧은 건 기분 탓인가요. 아픈 거지, 나쁜 게 아니라고 말했잖아요. 그래, 아파도 좋아요. 오늘을 살고 그대를 볼 수 있으니까요. 답답하실까 하는 말인데, 어제 차에서 훌쩍댄 건 안 비밀입니다. 맞아요. 울었어요.



정당한 아픔에 토 달지 않고 제 할 일 할게요. 내가 있으니 전부가 있습니다. 몸 마음 살피시고요. 화요팅입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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