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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침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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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민혜 Oct 07. 2024

사고(事故)

살아가는 일

안녕하세요. 이불속이 좋은 새벽이었어요. 오고 갑니다. 뜨거웠던 날들도, 사람도요. 


마트 가는 길이었어요. 빨간 신호라 멈춰 섰는데 뒤에서 쿵! 빠각하는 게 아니겠어요. 금속이 부딪히는 굉음은 얼얼합니다. 꺅, 소리 한 번 질렀어요. '꺅'이 아니라 '깎'이었으려나.


내려보니 차 뒤에가 찢어지고 찌그러졌어요. 오토바이에서 떨어져 나간 짐이 눈에 들어옵니다. 주섬 주섬 줍고 있는 덩치 큰 아저씨도요. 말없이 함께 쏟아진 짐과 오토바이 몸통을 주웠어요. 제법 빠그라진 오토바이도 차 뒷 편도 괜히 내 몸처럼 아립니다. 


연락처를 교환하고 사진을 찍었어요. 5분 뒤쯤 헤어졌나 봅니다. 별일 없다는 듯 차에 타고 가던 길을 가는데요. 자꾸 엉덩이가 뜨끔합니다. 사람들이 내 뒤에만 보는 것 같아요. 물론 기분 탓이에요. 


잘못한 일은 없지만 하필 거기 서 있던 것이 미안합니다. 몸은 성하실까요. 수리비가 제법 들겠더라고요. 오토바이 보험은 꽤 비싼 데다 허술한 경우가 많아요. 이리저리 머리 굴리며 묘안을 제시하는데요. 수가 통해도 손해가 막심하지요. 


그 뒤로 몇 번 더 통화했어요. 얼굴도 입도 무거운 아저씨가 끝에 '죄송합니다.'라고 말하십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대답했어요. 또 서글퍼집니다. 핸드폰을 만지셨을까요. 며칠 잠을 주무셨을까요. 힘들게 배달해 돈을 이렇게 쓰려니 말이에요. 


저라면 살며 겪는 일을 '사고'라 여깁니다. 태어난 일도 취직도 결혼도 의도하지 않았으나 일어났기 때문인데요. 딴짓을 하고 앞을 보지 않은 건 아저씨의 결정이었으나, 사고는 아저씨 뜻이 아닙니다. 남자와 커피 한 잔 마신 건 내 선택이었지만 식장에 들어갈 것을 의도하진 않았어요. 


도로 위를 다니다 보면 사고가 일어나지요. 삶을 살면서도 마찬가지예요. 결혼할 수 있고 이혼할 수 있어요. 승진할 수 있고 퇴사할 수도 있겠죠. 모든 게 사고라면 결국 누구 하나 의도가 없었다는 게 진실이에요. 내 뜻대로 됐다고 말한 일조차 실은 내 뜻이 아닌 겁니다. 의도를 품고 살되 어깃장을 놓을 필요는 없다는 말이에요. 


중요한 건 내가 겪은 사고, 그러니까 내게 벌어진 인생을 받아들이고 대처해 나가는 일이지 않을까요. 원인이 뭣이 중합니까. 내가 고통받는 일이라면 함께 사고를 겪은 상대도 고통스러운 법이에요. 발악하는 사람이라면 더 많이 아픈 겁니다. 나쁜 게 아니라 아픈 거예요.


글로 쓰다 4기를 열었어요. 늦은 밤 줌에서 OT 했습니다.(깜빡해 사진 찍지 않았네요.) 한 주 시작을 함께해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안전 운전하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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