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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침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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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민혜 Oct 14. 2024

치우다 보면 어느새

아침편지

안녕요. 작은 아이가 잠에 깨서 침실에 다녀왔어요. 아이 숨이 가득한 방에 머물고 보니 거실에 한기가 느껴지네요. 팔 위로 오소소 소름이 돋습니다. 


특별히 추운 날은 아닌데 햇볕이 적으려나요. 노랗게 물들어야 할 구석이 희뿌옇습니다. 비냄새는 나지 않아요.


간밤 꿈에 처음 사업자를 냈던 가게가 나왔어요. 쉽고 어렵게 자리한 신촌의 바(bar)예요. 단골 중에 삐쩍 마르고 긴 사람이 있었는데요. 이곳저곳 가게를 늘리면 늘 다녀가 주셨어요. 쪽 늘어진 눈만큼이나 정이 많으신 분이에요. 띄엄띄엄 뵈었는데요. 오래 대화를 나눈 적은 없지만 특유의 말투를 기억합니다.


툭, 툭 던지는 조언은 촌철살인인 경우가 많았어요. 설렁거리던 시기엔 그걸 또 알아보셔서요. 남들은 살기 아니면 죽기로 하는데, 느긋하니 경쟁이 되겠냐는 게 요지였어요. 


그땐 운전대를 잡으면 나도 모르게 신촌에 도착하는 일이 잦았어요. 대개 문을 여닫거나 급히 해결해야 할 일이 있었으니까요. 실제 거길 가려던 게 대부분이긴 해요. 꿈에서도 그곳에 도착해 있었어요. 가게 간판 위로 허연 눈이 소복합니다. 2층에 올라가 삽이랑 빗자루를 가져와 연신 밀고 쓸어요. 겨울바람이 젖은 이마를 스칩니다.


쏟아진 눈처럼 마음을 아래 두었어요. 한참 바닥만 보는데 진한 밤색 구두가 삽 옆으로 멈춰 섭니다. 고개를 들고 보니 바로 그 단골손님이 아니겠어요. "안녕하세요!"


"이걸 다 치울 수 있겠나, 할 수 있어요?"


"네. 할 수 있어요."


"맨날 물어보면 다 할 수 있다고 말하네요?!"


뜨끔합니다. 꿈속에서 데자뷔를 느꼈어요. 그 말을 다른 날, 다른 곳에서 들은 적이 있어요. 매번 할 수 있다고 말하는 제 모습이 낯설지 않아요. 어려서 자란 환경이 그랬을까요. 유전도 있을 겁니다. 최악의 상황이라도 먼저 할 수 있다고 말해요. 어떻든 해결합니다. 바라는 모양은 아닐 때도 있지만요.


나만 그럴까요. 그대도 그래요. 속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다.'라고 단정 지었더라도, 나자빠지든 주변의 도움이었든 '그 일'을 지나왔어요. 


2024년은 요란한 한 해입니다. 거센 파도는 물론이고 바람도 수선스러워요. 그럼에도 할 수 있습니다. 살아있음이 증거이지요. 해내왔고 헤쳐 나갈 것을 알아요. 


눈 덮인 길목이 차게만 느껴지지 않았어요. 미끄러운 데다 흙이 섞여 지저분해도, 그마저 씻길 테고 밀려갑니다. 10월의 중간이에요. 활기차게 한 주 시작할게요.^^ 덕분이에요.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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