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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침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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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민혜 Oct 18. 2024

존재만으로도

아침편지

금요일입니다. 그제 조금 멀리 계신 엄마와 통화하는데 "얘, 시간이 너무 빨라.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라고 빤한 이야길 하셔요. 그나마 결혼이 빨랐던 세대라 엄마 나이가 멀지 않게 느껴집니다. 그래, 나이 들수록 시간이 잘 간다니 어쩐지 서운해요.


이대로 일없이 살아도 되는가, 싶은데 열심히 사는 친구 하나가 말해요. 영어 공부를 시작해 새벽이며 밤마다 줄줄 읊어댄다고요. 바디 프로필을 찍는다며 운동도 열심입니다. 모 커뮤니티에서 사람들보다 한 끗 더 노력하는 자기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해요. 그러면서 사람들은 왜 해도 안되는지를 설명하네요.


누구라도 뒤처지는 것을 좋아하기 어렵지만 친구는 더해요. 세게 밀어붙이면 마음이 좀 낫다는 거예요. 문제라면 그 과정에 몸 마음이 상해서요. 아직 젊은데 '삐-' 신호가 잦아 걱정입니다. 코로나 걸릴 적마다 반 죽음 상태에 빠지고 젊은 나이지만 대사 질환을 앓아 약을 먹어요.


성취가 많은 친구예요. 다닥다닥 자격이 여럿입니다. 획득한 '증'이라야 운전면허증이 전부인 이 사람은 입을 다뭅니다. 무리 중에 튀어 오르면 흐뭇하지요. 나만 그럴 아니라 그게 내 아이라도 마찬가지예요. 인정할 만한 표식이 있다면 그럴싸해요. 나의 성취와 성공은 타인의 그것기반한 비교일 수밖에 없어요


당연한 이야길 하고 있지요. 새벽은 이 우월감을 곰곰 살폈습니다. 도무지 이것이 '존재'를 설명할 수 없다는 결론인데요. 인정받는 기쁨을 모르지 않지만 우위에 선 느낌은 금세 물러갑니다. 계속해 위로 오르려는 방법도 있지만요. 한 번쯤 '존재'를 증명받고 싶어 하는 마음을 살펴보셔도 좋겠어요.


오늘은 어쩐지 오래 운전할 예정이에요. 약속이 그래요. 파주며 서울이며 곳곳을 핥고 다니겠네요. 마침 비가 내린다네요. 차에 떨어지는 빗소리는 제법 근사합니다. 날씨가 그렇듯 한시도 머무른 적 없고 머무를 수 없는 우리지요. 우월하거나 열등할 것 없이 절대적인 존재로서 말입니다.


단테 <신곡> '지옥편' 서평을 쓸 거예요. 시간이 될는지 몰라요. 오후면 이메일 발송하는 밤편지를 써야 하지요. 틈틈이 적어 볼게요. 


말이 나와서요. 천국과 지옥은 글쎄, 지금 여기서 내가 만든다고 합니다. 내가 천국을 만들면 곁에 사람이 나팔 선율이라도 듣지 않으려나, 싶고요. 햇볕이 적은 날은 그대 미소가 절실해요. 한 번이라도 더 미소를 머금는 금요일이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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