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편지
모닝, 잘 잤나요? 새벽은 요가하고 명상했어요. 이제 일어나다 창틀에 서서 환희합니다. 어제 비바람이 사사롭지 않아 결실을 예감했어요. 나무 위로 소복한 눈을, 바닥에 이불처럼 덮인 눈송이를 마치 처음 발견한 사람처럼 바라봅니다.
이 집은 새시가 두터워요. 창 세 개를 열어젖히고 눈꽃에 손을 내밀었어요. 변하는 마음을, 겨울을 실감해요.
아침에 요가원을 갔는데 옆에 사람이 마라톤을 달리는 마냥 헉헉댔어요. 제가 하는 요가는 아쉬탕가예요. 험한 자세에서 버티고 누르려면 힘이 들긴 합니다. 어려서 기합 받을 때를 떠올려 보세요. 유독 앓는 소리를 내는 친구가 있잖아요. 그래, 오늘은 그 이야길 해볼까요.
엄살을 제가 잘 못해요,라고 말하신다면 엄살이 싫은 게 분명해요. 아마 남이 앓는 소리를 내도 썩 듣기 좋아하지 않을 겁니다. 제가 그랬어요. 지금이라고 크게 바뀐 건 아니지만요. 하루 만에 풍경이 이토록 달라진 것처럼, 저도 달라지고 있습니다.
하려는 이야긴 주변에 힘들다, 아프다고 말하지 않는 점에 대해서예요. 삶에 대한 책임감이 강해서라고 우리는 생각하기 쉬운데요. 실제 앓는 소리를 내지 않는 분이라면, 문제를 혼자 해결하려 애쓸 때가 많을 거예요. 무인도에 가도 살 것 같다는 이야기, 저만 들은 거 아니잖아요.ㅎㅎ
재밌는 건 나 자신조차 내가 타인을 배려하고 있다고 속기 쉽다는 거예요. 아무도 그러라고 하지 않았는데 피해망상에 빠진 셈입니다. 정작 힘들다고 말하지 않는 이유는 민폐가 돼서 미움받기 싫어섭니다. 미움받는 건 나지, 상대가 아니잖아요. 나는 누굴 위해가 아니라 '나'를 위해 앓는 소리를 하지 않는 셈이에요.
사람은 버려질 수 없고, 버릴 수도 없어요. 백날 누굴 버려보세요. 버린다는 건 어디까지나 '생각'이지, 각자 어떻든 살아갑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버림받을까 봐 늘 두려워요. 곁에 가족, 친구, 불특정 다수에게조차 인정을(사랑을) 받고 싶은 겁니다.
먼저 그런 내 마음을 알고 인정해야 해요. 그럼 좀 앓든 않든 편안합니다. 마음 한편에 피해 의식이 들면 가해자를 처단하거나 보상받으려는 마음이 생겨요. 이제 삶은 뺏거나 빼앗기는 무엇이 됩니다. 지옥이 멀지 않아요.
눈부신 만큼 미끄러울 거예요. 찬찬히 다니시길.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