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이 이렇게 바뀌었으면...
그런 손자를 가까이 두고 매일 보지 못하고 먼 산골로 보내고 말았으니 그 그리움이 사무쳐 병이 될 지경이었다. 나는 애초에 그 중학교에 가는 것을 영 못마땅히 생각했었다. 그러나 자식의 공부 문제는 엄마 아빠의 소관이지 할머니 할아버지가 나설 일이 아니라는 아내의 제지 앞에서 나는 일차 주춤했다. 그 다음은 당사자인 재면이의 의사였다. 야속하게도 녀석이 그 학교에 가고 싶어 한다는 것이었다. 할아버지에게 배신을 때리다니!
아 그런데 고등학생이 되자 더 고약한 일이 벌어졌다. 가평에서 용인으로 거리가 절반으로 줄어들어 자주 만나게 되리라 잔뜩 기대하고 있었던 터였다. 그러나 그 기대는 무참하고 참담하게 깨어지고 말았다. 현실 감각 무딘 할아버지는 고등학교 공부가 대학 입시를 향하여 1학년 때부터 얼마나 치열하고 광적으로 전개되는지를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거리는 가까워졌는데 만남은 더 멀어졌으니 할아버지의 절절한 그리움은 더욱 애타게 사무칠 뿐이었다.
그 못된 교육 제도 때문에 이렇게 속절없이 손자를 빼앗겨야 하다니... 내가 복수하는 방법은 병 들고 탈 많은 우리나라 교육에 대해서 쓰려고 하는 소설 「풀꽃도 꽃이다」를 더욱 잘 쓰는 수밖에 없다고 다짐하는 것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