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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라코알라 Feb 24. 2022

「대화」를 읽고

교육이 이렇게 바뀌었으면...


그런 손자를 가까이 두고 매일 보지 못하고 먼 산골로 보내고 말았으니 그 그리움이 사무쳐 병이 될 지경이었다. 나는 애초에 그 중학교에 가는 것을 영 못마땅히 생각했었다. 그러나 자식의 공부 문제는 엄마 아빠의 소관이지 할머니 할아버지가 나설 일이 아니라는 아내의 제지 앞에서 나는 일차 주춤했다. 그 다음은 당사자인 재면이의 의사였다. 야속하게도 녀석이 그 학교에 가고 싶어 한다는 것이었다. 할아버지에게 배신을 때리다니!
아 그런데 고등학생이 되자 더 고약한 일이 벌어졌다. 가평에서 용인으로 거리가 절반으로 줄어들어 자주 만나게 되리라 잔뜩 기대하고 있었던 터였다. 그러나 그 기대는 무참하고 참담하게 깨어지고 말았다. 현실 감각 무딘 할아버지는 고등학교 공부가 대학 입시를 향하여 1학년 때부터 얼마나 치열하고 광적으로 전개되는지를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거리는 가까워졌는데 만남은 더 멀어졌으니 할아버지의 절절한 그리움은 더욱 애타게 사무칠 뿐이었다.
그 못된 교육 제도 때문에 이렇게 속절없이 손자를 빼앗겨야 하다니... 내가 복수하는 방법은 병 들고 탈 많은 우리나라 교육에 대해서 쓰려고 하는 소설 「풀꽃도 꽃이다」를 더욱 잘 쓰는 수밖에 없다고 다짐하는 것뿐이었다.


이 짧은 글에서도 손자에 대한 끝도 모를 사랑이 느껴집니다. 부모의 사랑과는 또 다른 종류인 것 같네요. 그리워하는 마음, 야속한 마음이 사랑의 다른 말이 되어 절절합니다. 이 글에서 '나'는 작가 조정래입니다. 청심국제중에 들어간 손자가 졸업을 하고, 용인외고에 들어간 후 할아버지가 스크랩한 사설을 읽고 자신의 생각을 글로 적으면 할아버지가 첨삭을 해주는 형태의 대화, 할아버지도 같은 주제를 자신의 관점에서 글로 쓰고 그것들을 엮은 책입니다. 단지 제목에 끌렸던 것도 있고, 신문인지 블로그인지 정확하진 않지만 언젠가 기회가 되면 빌려서 읽어야겠다고 캡처해 놓았던 책이라 도서관에 간 김에 빌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제가 이 책을 읽고 든 첫 번째 생각은 부러움이었습니다. '할아버지가 유명한 작가라서... 할아버지가 스크랩한 사설을 읽고 손자가 쓴 글을 첨삭도 해주고... 게다가 책까지 내고...'




신문을 구독해서 읽은 지 10년이 되어갑니다. '엄마 아빠가 신문을 읽으면 아이도 옆에서 따라 읽겠지'하는 마음이 그 시작이었고, TV로 보는 뉴스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풍부한 정보와 밀도 있는 글에 마음을 뺏겨 지금껏 '신문 읽기'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저도 조정래 작가처럼 아이를 위해 신문을 스크랩하고, 문단별로 주제 문장을 뽑는 연습을 하곤 했습니다. 기사가 '고인돌'과 관련된 내용이면 글을 읽다가 옆길로 새서 가족들과 함께 박물관에서 본 고인돌 이야기며, 선생님한테서 들은 이야기 등 추억이 방울방울, 웃음 가득 즐거운 대화를 나누곤 했죠. 그런데 아이에게 스마트폰이 생기자 책도, 신문도 한순간에 숙제가 되었습니다. 즐겁게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대신, 억지로 읽고 끝나자마자 손을 높이 쳐들고 환호하는 아이를 보고 '아이와 함께 신문 읽기'는 그만두었습니다.




최근 외고 입학을 앞둔 큰 아이의 방학숙제로 사설을 요약하고, 자신의 생각을 글로 써서 내는 숙제를 계기로 예전에 읽었던 이 책이 다시 생각났습니다. 생각을 글로 쓴다는 것은 자신의 생각을 뒷받침할 만한 정보를 추려 논리에 맞게 구조화하고 읽는 사람에게 잘 전달되도록 다듬고 정리하는 과정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말은 내용도 중요하지만 태도와 제스처, 어투와 표정 같은 비언어적 요소로 많은 것들을 커버할 수 있죠. 하지만 글은 오로지 글만으로 사고와 논리를 입증해야 하기 때문에 휘발되어버리고 마는 말과는 차원이 다른 인출이라고 생각합니다.


미래사회를 살아가는데 우리 아이들에게 필요한 핵심 역량 중 하나가 비판적 사고능력(Critical Thinking)과 창의력(Creativity)이라고 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비판적 사고는 현상에 대한 단순한 부정이 아니라, 체계적이고 논리적으로 자신의 결론에 도달할 수 있는 것, 창의력은 같은 것을 보고도 다르게 생각하는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지식을 배우고, 암기하고, 시험을 치는 것만으로는 키워지기 어려운 능력이죠.


조정래 작가는 대학 입시를 향하여 고1부터 얼마나 치열하게 광적으로 전개되는지를 모르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 못된 교육 제도 때문에 속절없이 손자를 빼앗겼다고도 했습니다. 작가도 어쩌지 못하는 입시를 내 손으로는 바꾸기 어렵고, 막상 내 아이가 고등학교에 들어갈 시기가 되니 어떻게든 3년을 잘 버텨서 아이가 만족하는 결과를 얻었으면 하는 바람도 슬그머니 고개를 듭니다.


그런 생각에 이르니 공부를 할 수 있는 힘을 길러내는 교육이 학교에서 이루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더 간절해집니다. 배운 지식을 세상과 연결시킬 수 있는 '책 읽기'와 '신문 읽기', '에세이 쓰기'가 부모의 몫이 되지 않도록, 평가와 입시의 수단이 되지 않도록, 1년에 단 한 권이라도 좋으니 친구들과 함께 즐겁게 책 읽고, 이야기 나누고, 글로 써서 서로 공유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제 바람이 너무 큰 욕심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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