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시멜로 실험에 대해 들어본 사람은 많을 것입니다. 익히 알려진 이야기이며, 수많은 자기계발서에 자주 인용되기도 했죠. 첫 번째 마시멜로 실험은 1966년, 월터 미셸(Walter Mischel)이라는 미국 스탠퍼드대 심리학 교수가 4살 어린이 653명을 대상으로 하게 됩니다. 눈앞에 보이는 마시멜로를 먹지 않고, 15분 동안 잘 기다리면 돌아왔을 때 하나를 더 주겠다는 약속을 지킨 어린이와 참지 못하고 먹어버린 어린이를 15년 후 조사하여 SAT(미국 수능에 해당하는 시험) 성적을 비교했다는 그 실험 말입니다. 두 그룹의 점수 차이는 무려 210점. 이후 '만족의 지연', 즉 자기 절제력이 인생의 성공 비결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나 이후 이 실험은 설계부터 의심을 받는 지경에 이릅니다.
1989년, 두 번째 마시멜로 실험도 알고 계신가요? 이번에는 마시멜로를 병에 넣고 뚜껑을 닫아둡니다. 그리고 마시멜로가 먹고 싶을 때 참는 방법도 알려주지요. 예를 들면 마시멜로가 먹고 싶은 마음이 들면 다른 재미있는 생각을 한다거나, 저건 마시멜로가 아니라 구름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랬더니 아이들이 더 오래 참았다는 겁니다. 이 실험을 통해 만족의 지연은 개인의 의지보다는 환경의 차이와 방법을 아느냐 모르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결론을 내놓게 됩니다.
세 번째 마시멜로 실험은 2013년, 로체스터 대학교에서 28명의 아이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실시하게 됩니다. 크레용이 놓인 책상에 앉았을 때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잠깐만 기다리라며, 더 재미있게 놀 수 있도록 나가서 종이 찰흙과 색종이를 가져온다고 하고 나갑니다. 잠시 후 한 그룹은 약속한 것을 가져다주고, 다른 그룹에게는 약속한 것을 가져다주지 않고 빈손으로 가게 되죠. 그리고 다시 한번 작은 스티커를 이용해 유사한 실험을 합니다. 조금만 기다리면 더 크고 멋진 스티커를 주겠다고 약속한 것이죠. 그런 다음 마시멜로 실험을 했습니다. 그 결과 선생님이 약속을 지킨 그룹의 아이들은 14명 중 9명이 마시멜로를 먹지 않고 기다렸고, 두 번 모두 선생님이 약속을 지키지 않은 그룹의 아이들은 1명을 뺀 13명 모두가 마시멜로를 먹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이 실험은 '만족 지연 능력'이 개인의 의지가 아니라 흔들리지 않는 서로에 대한 신뢰 관계에 달려있다는 새로운 주장의 근거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흔히 공부를 어려워하고, 힘들어하는 학생들에게 '노오력'이 부족하다거나 '의지' 혹은 '참을성' 또는 '끈기'가 부족하다고 단정 짓습니다.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만 노력이나 의지, 참을성, 끈기는 눈에 보이거나 정량적으로 평가하기 힘든 요소입니다. 오직 개인의 경험과 느낌에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결국 결과로 아이의 가능성, 절제력을 재단해버리는 실수를 하게 되는 것이죠.
제가 강의를 하게 된 데는 두 번째 마시멜로 실험의 결과처럼 공부하는 방법을 아느냐 모르느냐, 집중을 방해하는 것들을 차단할 수 있는 환경에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만족을 지연하는 행동에 영향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학생들에게 학습법을 가르치러 다니고 있는 것이죠. 저의 신념을 응원해 준 사람이 스탠퍼드대 교육대학원 부학장 폴 김(Paul Kim) 교수입니다. 그의 책에는 한국에서 절대 가르치지 않는 두 가지 중 하나가 '공부 방법', 즉 공부 기술이라고 소개한 바 있습니다.
주 1~2회, 길게는 서너 달, 짧게는 몇 주에 걸쳐 학생들은 만납니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수업 시간은 언제인지, 자투리 시간에는 주로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지, 어떤 말이 나를 가장 기분 좋게 하는지, 각자의 미래를 이야기하고 학습 목표와 연결 지어 봅니다. 잘하는 과목의 공부 방법을 친구들에게 공유해 보기도 하고, 보충이 필요한 과목을 스스로 정해보기도 합니다. 적절한 공부 시간을 각자 생각해 보고, 어떻게 공부할지 구체적으로 계획하기도 하죠. 그밖에 수업은 어떻게 듣는 것이 효과적인지, 예습과 복습의 방법을 교과서를 중심으로 가르쳐 줍니다. 다양한 암기법과 시험전략을 알려주고, 자기 평가에 대한 피드백도 원하면 개별적으로 해주기도 합니다. 짧은 기간이지만 강사는 아이들에 대해 제법 많은 것들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수업에 관심이 없던 학생들이 서서히 수업에 참여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큰 보람입니다. 하지만 과정을 모두 마치고, 학생들이 가르쳐 준 방법들을 지속적으로 적용하고 실천하면서 자기만의 공부 방법을 찾아가는지는 사실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부모교육을 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되었습니다.
<알쓸신잡 시즌 1>에서 정재승 박사도 마시멜로 실험에 대해 소개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도 다른 잡학 박사들의 이견과 저항이 만만치 않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당시 정재승 박사는 어떻게 해야 자기 절제를 즐기면서 할 수 있느냐에 대한 미셸의 또 다른 실험을 소개했죠. 종이 위에 구름을 그린 다음 구름 위에 마시멜로를 올려두고 아이들에게 기다리라고 했답니다. 그랬더니 마시멜로를 구름으로 인식한 아이들이 훨씬 더 잘 기다렸다면서 아이가 어떤 것을 처음 받아들일 때의 감정에 신경을 써야 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여러 마시멜로 실험들에 대해 옳고 그름을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모든 연구와 실험은 변수에 대한 조작이 얼마든지 가능하며, 자신의 가설을 뒷받침할 만한 적절한 근거를 찾아 증명하기 마련입니다. 다만 아이가 무언가를 처음 접할 때 부모의 말 한마디가 얼마나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지는 경험을 통해 확실히 알고 있습니다. 가령 신학기가 되어 선생님이 바뀌었을 때 "새 담임 선생님이 이상하네." 대신 "새 담임 선생님, 열정이 넘치시네."라고 이야기하면 아이들은 부모의 말 한마디에 그날부터 우리 담임 선생님은 1년 동안 내가 믿고 갈 수 있는 멋진 선생님이 되는 것입니다. 새 친구를 사귈 때도, 새 문제집을 고를 때도, 새 학원으로 옮길 때도, 첫 실패를 했을 때도 부모는 긍정적인 피드백을 해주셔야 합니다. 대상에 대한 아이의 좋은 감정에 부모의 피드백만큼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은 없으니까요.
공부는 자녀가 합니다. 다만 자녀가 지금 하고 있는 공부에 대해 흔들리거나 자신이 없을 때, 이게 과연 미래에 만족할 만한 결과로 이어질까에 대해 의심할 때 흔들리지 않는 신뢰관계를 형성한 부모님이 옆에서 긍정의 피드백을 살짝살짝 보태준다면 자녀는 자신의 숨은 능력을 꺼내어 발휘할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자녀의 자기주도학습을 돕고 싶다면 먼저 좋은 관계를 만들어 보세요. 자녀의 학습 코칭은 결코 특별하거나 대단한 스킬을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