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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라코알라 Feb 28. 2022

잘하는 것 하나가 첫발이다

'꼴찌가 1등처럼 살아보기'를 시청하고


2015년 제작된 다큐멘터리의 조회수와 댓글이 최근 들어 쭉쭉 상승 중입니다. 종영된 드라마 '그 해 우리는'의 실제 모델이 되었다는 규민이와 도윤이, EBS 다큐 [꼴찌가 1등처럼 살아보기]이야기입니다. 설거지하면서 자주 즐겨보는 <유 퀴즈 온 더 블록>에 이 두 친구가 출현했습니다. 24살이 된 이들이 17살 때 찍은 영상의 비하인드 스토리와 현재의 모습을 진솔하게 털어놓는 바람에 무척 재미있게 시청했습니다.




공부 말고는 다 잘하는 규민이, 공부도 잘하는 도윤이는 각각 꼴찌와 1등으로 출현합니다. 규민이가 공부에 흥미를 잃었던 때는 중2였다네요. 제가 강의에서 만났던 친구들이 공부에 어려움을 느꼈던 시기는 대체로 일치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수학의 '큰 수', 초등학교 5학년 '혼합 계산'과 이어지는 '약수와 배수', 그리고 중학교 2학년. 이렇게 비슷한 주기가 있다는 것이 신기합니다. 왜 그럴까요? 그 이유는 낯선 개념의 등장 때문입니다. 특히 큰 수는 '0'하나를 더 붙이고, 덜 붙이는 것에 따라 자릿수가 달라지고, 배의 도 커지면서 학생들이 어렵게 느끼는 것이죠. 또 주의력이 조금만 부족해도 틀린 문제가 수두룩하게 나오는 파트입니다. 제가 초등학교 학부모를 대상으로 학습과 관련한 강의를 할 때는 '큰 수' 단원은 많이 틀려도 절대 뭐라고 하지 말라고 당부합니다. 왜냐하면 이후 다시는 교과에 나오지 않을 내용이니까요. 심지어 초등과정 중에는 그런 단원들이 몇 개 있습니다. 우스갯소리로 집 계약할 때나 필요한 단위라고, 소수점 이하의 작은 수를 앞으로 더 많이 다루게 될 거라며 불안한 부모님들을 안심시킵니다. 아이들은 공부에 대한 자신감이 한 번 떨어지면 쉽게 회복하지 못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님이 교과과정을 미리 파악해서 덜 중요한 단원과 반드시 알고 넘어가야 하는 단원, 다음 학년에 어떤 단원과 연계되는지를 아는 것이 자녀의 학습코칭에 큰 도움이 됩니다.




중학생의 경우 1학년 자유학년제 시행으로 시험 없이 1년을 보냅니다. 겉핥기식 진로 체험은 학생들 사이에 노는 시간이라는 인식이 깊고, 한정된 시간과 예산 때문에 학교와 지역에 따라 체험의 질은 상당한 차이를 보이는 것이 현실입니다. 여하튼 성취도에 'P'가 잔뜩 찍힌 성적표를 받아 들고 부모나 아이나 시험이 없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2학년이 되면 상황은 급반전 됩니다. 초등학생 때도 단원평가 시험이 고작이던 학생들에게 일단 많은 양의 시험범위는 15년 인생 중 가장 무거운 부담입니다. 잘하고 싶지만 무엇부터 어떻게 공부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합니다. 계획은 세우지만 실천하지 못하는 자신의 의지와 나약함에 저주를 쏟아붓습니다. 그래서 중학교 학부모 대상의 강의에서는 학습에 대한 내용 보다 습관의 중요성, 자존감 사춘기의 뇌, 관계의 개선에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모르면 불안하기 마련이고, 그러다 보면 자녀를 더 닦달하게 되니 지금부터라도 진학에 대한 판을 읽으라고 주문합니다.




그럼 공부에 대한 자신감은 어디서 출발할까요? 저는 아이가 잘하는 것이 그 첫발이 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작은 아이와 대화를 나누다 저는 "요즘 가장 좋아하는 과목 뭐야?" 하고 자주 물었습니다. 그런데 좋아하는 과목이 매번 바뀌더라고요. 왜 그런지 이유를 들어보니 단원평가를 잘 봤기 때문이랍니다. 시험을 잘 보면 그 과목이 좋아지냐고 물었더니 같은 반 친구들이 자기를 보는 눈이 달라진다고 했습니다. 이것을 「공부를 공부하다」의 저자 박재원 소장은 '사회적 동기'라고 명명했습니다.


그러고보니 큰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 운동회 날, 계주 선수로 나가서 큰 격차를 좁혔던 일이 기억납니다. 이긴 것도 아니고 앞선 선수와의 거리를 좁힌 것뿐인데 박수와 응원이 쏟아졌던 그날, 이기지 못해 혹시나 속상한 마음이 있는건 아닐까 하여 과장 한 스푼과 칭찬 두 스푼을 더해 아이에게 그 순간 일어났던 주변의 반응을 자세히 전했습니다. 아이는 아주 뿌듯한 마음이 되어 그날 낮에 있었던 일을 아빠에게 신나게 자랑하고,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복도를 지나가는데 친구들이 자기를 알아보고, 이전과 자신을 대하는 반응이 달라졌다고 했습니다. 그때부터 아이는 시키지도 않았는데 놀이터에 나가서 줄넘기 2단 뛰기와 달리기 연습을 했습니다. 비록 오랜 시간이 걸려 2단 뛰기를 성공했지만 그 불씨는 다른 것으로 금방 옮겨 붙었습니다.


아마도 무엇을 잘하기 위해 혹은 자신이 잘하던 것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달리기에서 시작된 첫발은 영어 단어 시험을 다 맞기 위해 전날 엄마랑 단어 테스트를 몇 번씩 하는 노력으로 이어졌고, 점차 다른 과목으로까지 확대되었습니다. 작은 아이의 경우 5학년 때 미술 학원을 다니면서 소묘를 하게 되었는데, 그때 수학의 비례를 알면 그림을 좀 더 쉽게 그릴 수 있다는걸 느꼈다고 했습니다. 제가 말해주지 않아도 학문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걸 깨달은 아이가 기특해 감탄사를 연발했던 기억이 있네요.




1등 도윤이도 공부가 재밌지는 않다고 했습니다. 그저 열심히 해야 하니까 한 것뿐이고, 다만 자신은 감사하게도 공부에 작은 재능이 있었을 뿐이라고 했습니다. 오히려 자신은 규민이의 그림을 보고 너무 놀랐고, 사람은 저마다 다른 재능을 갖고 태어났구나 생각했다고 인터뷰에서 밝혔습니다. 자신이 가장 잘하는 것에서 재미를 느끼고, 그것을 더 잘하기 위해 연습하고 노력하는 그 모든 과정에서 스스로 의미를 찾을 수 있다면 조금 늦더라도, 조금 돌아가도 괜찮다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전역을 앞둔 규민이는 아직 꿈이 없다고 했습니다. 여전히 진로를 고민 중이라고 했습니다. 가끔 댓글을 보며 자신에 대한 사람들의 응원에 힘을 얻고, 꿈을 찾아갈 용기를 얻는다는 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우리 아이에게 첫 번째 응원의 댓글과 용기의 댓글을 다는 존재가 '부모'이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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