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둘 칼람은 무소속으로 출마해 인도의 대통령이 된 유명한 과학자입니다. 연결이 쉽지 않죠? 평생 독신으로 청렴한 삶을 살았던 그가 2015년 어느 날, 하늘의 별로 사라졌다는 신문 기사를 접하기 전까지 저는 그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문장들은 이후 제 강의에서 자주 인용되곤 했습니다.
이 나라에서 가장 빛날 사람이 교실 맨 뒷자리에 앉아있을 수도 있다.
꿈이란 잠잘 때 꾸는 것이 아니다. 당신을 잠들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많이 들어보셨죠?
그중에서도 아래의 글귀는메모해 놓고 제가 자주 읊조리는 말입니다.
FAIL means First Attempt In Learning.
이 문장은 때때로 제게 위로가 되기도 하고, 희망이 되기도 했습니다. 처음으로 아이와 함께 습관을 만들다가 끝을 맺지 못하고 흐지부지 되어버렸을 때, 처음으로 학부모 강의를 마치고 아쉬움 가득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왔을 때, 아이와 함께 첫 플래너를 쓰고도 별 효과를 거두지 못했을 때... 숱한 크고 작은 실패를 '그럴 수 있지, 다음엔 더 잘해보자, 그러려면 뭘 바꿔야 하지?'로 생각을 전환하게 만들어준 문장이니까요. 배움에 있어 첫 번째 시도는 실패로 끝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초등 시기에는 완벽을 기대하지 말라는 말을 참 많이 듣지만, 현실은...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특히 친하게 지내는 학부모 중에 고등학생 자녀를 둔 엄마의 말은 거의 신의 목소리와 같습니다. "고등학교 가면 해야 될 게 얼마나 많은데... 미리미리 해놔서 나쁠 거 없잖아" 이런 말이 또 얼마나 불안을 부추기는지요.
"3학년에는 영어, 수학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시기야", "늦어도 4학년에는 수학 선행을 나가야 안 늦어", "5학년에는 역사 시작이니까 애들끼리 묶어서 미리 한국사 한 번 돌리고, 논술도 같이 하자고", "6학년에는 영문법 정리 한 번 휙 하고, 중학교 수학 마무리하면 되겠네"
그런데 이런 부모님의 큰 그림은 중학교에 들어가기도 전에 아이들을 그만 지쳐버리게 만듭니다. 초등학교는 중, 고등학교 시기에 자기주도학습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야 하는 시기여야 합니다. 공부의 기본을 다지는 시기이며, 좋은 습관을 들이는 경험을 해보도록 도와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전환기 학년을 경험해 본 학부모님들은 쉽게 공감하실 만한 얘기일 텐데, 좋은 습관을 들여도 환경이 바뀌니 '제로 세팅' 되더라는 말씀을 많이 하십니다. 당연합니다. 초등 시기, 중등 시기, 고등 시기별로 필요한 것, 중요한 것이 달라지는걸요. 게다가 호르몬과 사춘기의 영향, 거기에 주변 환경과 친구들까지 모두 바뀌어 버리니 잘 지켜오던 습관마저 한 순간에 사라지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좋은 습관을 들이기 위한 수고를 굳이 할 필요가 있을까 궁금해질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좋은 습관을 들이는 것 보다는 '습관을 들이는 경.험.'을 하도록 돕자고말씀드립니다. 습관은 좋은 것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쁜 것도 습관이 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좋은 습관에 비해 나쁜 습관은 빨리, 쉽게, 큰 노력 없이도 만들어집니다.
개학을 일주일 앞두고 저희 집 작은 아이와 7시 기상을 약속했습니다. '스몰 스텝'으로 가기에는 개학이 얼마 남지 않은 까닭에 평소 10시~11시에 눈뜨던 일상을 한순간에 바꿔버린 것입니다. 사실 아이는 별생각이 없어 보였지만 일주일 만이라도 미리 일찍 일어나는 습관을 들이면 좀비 상태로 학교에 앉아 있는 상태는 면하겠지 싶은 엄마의 걱정이 약속을 하게 만든 것입니다.
그럼 다음날부터 시작된 7시 기상의 과정을 한 번 살펴볼까요? 화요일, 첫날은 알람을 맞추고 스스로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다음 날부터는 엄마가 흔들어 깨웠죠. 그나마 시작하기 전 약속한 보상이 있어 그런지 그런대로 일주일은 깨우면 무난하게 잘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일어나는 시간만 목표로 세웠지 일어나서 무엇을 할지에 대한 계획은 세우지 않았으니... 7시에 눈을 떠도 9시가 되도록 소파에 누워있기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다 어떤 날은 다시 잠이 들기도 하고요.
엄마가 일어나 움직이면 꼼짝없이 7시에 눈을 떠야 하지만, 엄마가 조금이라도 더 누워있는 낌새를 보일라치면 자기도 같이 늦게 일어나려고 하는 태도가 눈에 거슬렸습니다. 그래서 엄마가 부지런해져야 했습니다. 말은 아끼고, 행동으로 보여줘야 했으니까요. 여하튼 개학을 하면 등교를 할 것이고, 그러면 7시 기상은 자연스럽게 이어서 갈 수 있는 습관으로 딱이다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개학 다음날부터 비대면 수업이어서 아침 조회 10분 전, 8시 20분 기상으로 생활패턴은 재빠르게 복귀했습니다.
작은 아이의 '7시 기상' 습관은 결과적으로 보면 완전한 실패입니다. 하지만'습관을 들이는 경.험.'의 관점으로 보면 성과가 큽니다. 우선 7시에 일어나기 위해 자는 시간을 스스로 조절했습니다. 새벽 2시까지 깨어있다가 첫날 7시에 일어나는 것이 작은 아이는 무엇보다 괴로웠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잠자리에 드는 시간을 밤 12시로 조절하더군요. 금요일, 4일째 되는 날 아침, 7시에 깼다가 9시쯤 다시 잠이 들어 11시쯤 깼습니다. 스스로도 한심했는지 밥을 먹으면서 다음날은 일어나자마자 뭘 해야겠다고 하더군요. 제가 권유한 독서는 일단 거부(예상했습니다), 아이는 저와 함께 두뇌 훈련 게임을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오케이, 다음 날부터 아침에 일어나서 30분간 두뇌 훈련 게임을 하며 놀았습니다. 잠재되어 있던 승부사 기질이 발동했는지 눈에 불을 켜고 하더라고요. 잠이 좀 깨니 만화책도 보고, 평소보다 일찍 잠든 탓에 미처 끝내지 못한 과제도 알아서 하겠다고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책상에 앉았습니다.
'습관을 들이는 경.험.'을 통해 딸아이는 몇 시에 잠들어야 다음 날 피곤함을 덜 느끼는지를 조절해 봤습니다. 그리고 잘 지켰을 때 얻게 될 보상이 생각보다 엄청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하나의 습관을 들이기 위해서는 그 행동을 유지하기 위한 보다 촘촘한 계획이 있어야 한다는 것도 느꼈겠죠? 두뇌게임은 좀 즉흥적인 면이 있었지만, 그래도 잠을 깨는 데는 꽤 유용했다고 했습니다. 무엇보다 아침에 일어나서 동이 트는 불그스레한 하늘을 바라볼 때 무척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고 했고, 늦게 일어날 때와 비교하면 하루가 엄청 길게 느껴졌다고도 했습니다.
결과로 보면 실패였던 '7시 기상 습관 만들기'였지만 과정 중에 알게 된 사실, 자신이 느낀 감정과 깨달음은 자기 자신에 대한 메타인지를 높이는 좋은 방법이 된 셈입니다. 나는 무엇에 움직이는 사람인지, 나는 어떨 때 뿌듯함을 느끼는지, 나는 얼마나 자기 조절이 어려운 사람인지, 나는 즉흥적인지 계획적인지, 나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은 누구인지 등을 알기에 충분한 '경.험.'이었던 것이죠.
「메타인지 학습법」의 저자 리사손 박사는 빠른 길이 좋다고 여기는 착각, 쉬운 길이 좋다고 여기는 착각, 실패 없는 길이 좋다고 여기는 착각에서 빠져나올 필요가 있다고 말합니다. 무언가를 통해 배움이 일어난다는 것, 나에 대해 알아간다는 것은 수많은 시도와 실패, 관계와 경험 속에서만 얻어질 수 있다는 것을 이렇게 배워갑니다. 어렵다고, 느리다고 멈출 수는 없습니다. 실패로 끝났다는 것은 아직도 배울 것이 많이 남아있다는 뜻일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