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정신분석가 비온(Bion)은 '부모란 무엇이든 담아주는 그릇 같은 존재여야 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이 문장을 읽으면서 이 그릇에 예쁘고 먹음직스러운 음식이 담긴다면 좋겠지만, 꽁초와 쓰레기가 담긴다면 어떨까 생각해 봤습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김현수 박사가 쓴 「중2병의 비밀」이라는 책에서도 비슷하게 자녀의 성장과정에서 일어나는 실망과 상실을 부모가 품어주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대안학교를 운영하는 그는 다양한 청소년들을 상담해 본 결과 인터넷 중독, 은둔형 외톨이, 학습 부진, 그밖에 우울감이 높아 자해를 하는 청소년들의 뒤에는 언제나 문제의 부모가 있다고 했죠. 부모에게는 모진 말처럼 들릴 수 있겠지만 자녀가 토해낸 감정의 쓰레기를 부모가 스스로 비워내야 한다는 취지의 내용도 담고 있습니다.꽁초와 쓰레기도 담을 수 있는 그릇이어야 한다는 거겠죠.
참 어렵습니다. 부모 되기는 쉽지만 부모답기는 어렵다는 말은 제가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몸소 느낀 진리니까요. 하지만 이 세상에 '완벽한 부모'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설령 있다 하더라도 이런 부모는 자녀에게 완벽함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부모의 요구에는 민감할 수 있지만 정작 자신의 요구에는 둔감한 자녀로 성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완벽한 부모'는 포기했습니다. 대신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서 나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깊이 생각해 봤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평소 남편과도 자주 이야기를 나눴고요. 그렇게 제가 생각하는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한 방법을 정리한 글들이 잘하는 것 하나가 첫발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 실수와 실패를 통해 배움을 경험하게 돕는 것, 선택과 결정의 주도권을 서서히 자녀에게 넘기는 것, 관점을 바꾸는 것 등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적고 보니 최성애, 조벽 교수가 쓴 「청소년 감정코칭」이라는 책에 소개된 회복탄력성이 높은 아이들의 특징과도 상당 부분 겹칩니다. 결국 '좋은 부모'가 된다는 것은 온갖 어려움과 문제 상황을 피하거나 부인하지 않고 그 상황 속에서 더 좋은 선택을 하기 위해 고민하고, 좋은 점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회복탄력성이 높은 부모'가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오늘 저의 감사 일기에는 브런치 조회수 2,000회 돌파가 적혔습니다. 그동안 제가 쓴 글들을 돌아보니 부모답기 위해, 무엇이든 담아주는 그릇이 되기 위해 스스로를 다독이고, 때론 설득하고, 때론 권유하는 글들이었다는 걸 느끼게 됩니다. 거기에 함께 공감하고 댓글 달아주시는 여러 작가님과 독자님들 덕분에 더 힘낼 수 있었고요.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