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방학 동안 아이들과 뒹굴뒹굴하며 책을 쓰겠다고 선언한지도 두 달이 넘어갑니다. 한글 창을 띄우고 하루에 한 장씩 꼬박꼬박 쓰겠다던 다짐으로 스무 장을 넘길 즈음, 엎었습니다. 애초의 목차를 수정하겠다고 말이죠. 바뀐 목차에 따라 글을 쓰기 시작한 지 보름쯤 지나자 하루 한 장의 다짐이 힘을 잃어 글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계속 제자리였습니다. 새로운 동기와 자극이 없으면 거기서 그냥 멈출 것 같았죠. '자기주도학습'과 관련한 책은 이미 시중에 너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내 이야기는 좀 다를 거라며 고집스럽게 시작한 탓입니다.
꺼져가는 의지와 추진력에 불을 붙이는 것이 급했던 저는 우선 써놓은 글의 일부를 고쳐 브런치 작가를 신청했습니다. 2월 11일 오후 4시 17분, 브런치 작가가 된 것을 축하한다는 메일을 받았으니 미처 한 달이 되지 않았네요.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단 한 번의 지원으로 '작가'라는 이름표를 갖게 된 저는 행운아였습니다.
첫 글에 첫 라이킷을 달아준 '엘프화가' 작가님께 무척 감사드려요. 저는 라이킷이 뭔지도 몰랐거든요. 그리고 글을 올린 그날 10 라이킷을 돌파했다며 알림이 왔습니다. '이런 것도 알려주는구나...' 신기한 것 투성이었습니다. 누군가 내 글을 읽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다음 글은 무엇을 쓸까 고민하는 것마저 설레고, 좋았습니다. 저는 브런치 덕분에 글을 쓰는 즐거움을 알아가는 중입니다.
스무 장 남짓의 글을 쓸 때에도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던 생각은 '누가 내 글을 읽어줄까?', '누가 내 책을 사서 볼까?'였습니다. 그런데 이젠 그런 생각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첫 응원의 댓글을 달아준 '집공부' 작가님과 '아시시' 작가님 덕분입니다. 댓글의 가치를 알고부터는 저도 다른 분들의 글을 읽고 댓글을 달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저에게는 조회수 1,000회도 의미 있는 기록입니다. 데이터가 제게 주는 메시지는 다양한데, 그중 하나는 시즌에 관련된 글이 유입과 조회수에서 단연 높았다는 것입니다. 특히 신학기를 맞아 '담임선생님', '상담', '선생님께 바라는 점' 같은 단어들에 제 글이 조회되고, 또 많이 읽으신 걸 보면 부모님들의 요구를 넘어 갈급함 마저 느껴집니다. 사소한 것 같지만 바로 적용이 가능한 도구들과 개인적인 경험들을 이전에는 강의를 통해 나누었지만, 시간과 대상의 제약 없이 누구와도 나눌 수 있는 글의 힘을 브런치를 통해 알게 되었으니 앞으로도 더 많은 내용을 공유해 보려고 합니다.
글 랭킹 상위에 올라온 글들을 보니 내 자녀를 잘 키우고 싶은 부모의 마음이 고스란히 제게 전달되는 것 같습니다. 내 아들과 딸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희생할 수 있는 부모는 마치 '데미타세'와 같습니다. 크기도 작고, 잡기에도 불편한 에스프레소 잔, 데미타세 말입니다.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 두껍게 만들어졌고, 바닥의 한기를 막기 위해 잔에 굽이 있다지요. 찻잔을 받치는 이유도, 잔 안의 동글동글한 곡선도 모두 커피의 온도와 향기를 보존하기 위함인 걸 아셨나요?
어린 자녀의 눈에는 부모가 슈퍼맨처럼 대단한 존재로 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춘기의 터널을 통과하고 어느 만큼 자란 자녀의 눈에는 전만큼 부모가 대단해 보이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부모는 잘 알고 있습니다. 때로는 작고, 창피해서 숨기고 싶은 존재로 느껴질 때도 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부모가 자식을 바라보는 마음은 변함없이 한결같다는 것을 부모가 되고, 아이가 자라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다만 그 마음을 적절하게, 세련되게 표현하지 못할 뿐....
부모가 그렇게 만들어진 것은 데미타세가 그렇게 만들어진 이유와 같습니다. 자녀의 온도와 향기를 품을 수 있는 부모가 되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살아가는 세상의 모든 부모님께 존경의 마음을 담아 이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