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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라코알라 Apr 21. 2022

아침마다 "집중"을 외쳤던 엄마는...

감정과 느낌 단어로 소통하는 방법


어떤 말을 하느냐보다 어떻게 말하느냐가 중요하고, 어떻게 말하느냐보다 때론 어떤 말을 하지 않느냐가 더 중요한 법이다.

「언어의 온도」 중에서


글은 말에 비해 정제될 기회를 비교적 많이 갖고 있습니다. 반면 말은 그렇지 않죠. 제가 느낀 대로 함부로 흘렸다가는 주워 담지 못해 후회하는 순간들이 많이 생길 가능성이 높습니다. 특히 사춘기 소녀와의 관계에서는 더욱 그렇죠.




가방을 메고 집을 나서는 아이들에게 저는 매일 아침 "집중"을 외쳤습니다. 사회학자 머튼(R. Merton)이 처음 사용했다던 '자성예언'처럼 학교에서 아이들이 수업에 집중하길 바라는 저의 기대가 투영된 이 한 마디를 문간에 서서 꼭 외쳐야만 엄마의 도리를 다 한 것 같은 이 기분.(몇 달 전까지만 해도 차에서 내리는 아이들 뒤꼭지에 대고도 "집중"을 외쳤습니다) 간혹 애들 아빠가 아이들 등교 시간에 집에 있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남편은 "재밌게 놀고 와"라는 말을 했죠. 그럼 저는 기어코 한 마디를 하고 맙니다. "학교는 노는 곳이 아니거든"


이랬던 제가 아이들에게 더 이상 "집중"을 외치지 않습니다. 작은 아이가 학교에 돌아오자마자 가방을 내팽개치고, 소파에 드러눕는 것은 하루 종일 학교에서 지나치게 '집중'한 탓이라는 것을... 모든 에너지를 학교에 쏟아붓고 돌아온 아이에게 엄마가 하는 말의 무게는 생각보다 무겁다는 것을 안 것은 아이와 감정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부터였습니다.




방학에 심심해하길래 딸아이와 일명 '감정 월드컵' 놀이를 했습니다. 기쁨, 슬픔, 혐오, 놀람, 분노, 공포 같은 기본 감정뿐만 아니라 즐거움, 고마움, 따뜻함, 뿌듯함, 편안함, 평화로움, 흥미로움, 황홀함, 설렘, 불안함, 혼란스러움, 걱정스러움, 무서움, 불편함, 서운함, 외로움, 우울함, 두려움, 어색함, 지루함, 피곤함, 혐오스러움, 화남 등 느낌을 나열한 종이를 아이에게 건넸습니다. 단어를 곰곰이 살펴보길래 이 중에서 최근 자주 느끼는 감정이나 느낌을 10개만 고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중에서 5개, 3개를 단계적으로 추려보게 했죠. 그랬더니 마지막으로 남은 1개의 단어는 다름 아닌 '불안함'이었습니다.


1학년 때 친했던 단짝 친구들과 헤어질 것이 두렵고, 담임선생님이랑 헤어지는 것은 슬프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겨울방학을 진짜, 제대로 놀아야 된다고도 했습니다. 집중을 계속하지 않아도 되는 지금이 가장 편하다고 했습니다. 2학년 담임 선생님은 어떤 분일까 기대 반, 흥분 반이라고도 했습니다.(친구들에 대한 기대는 별로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작은 아이가 여기에 왜 '귀찮음'은 없냐고 묻길래 "네가 직접 적어 넣으면 되겠네" 했습니다. 그밖에도 2학년이 되면 시험처음 보는 거라 생각만해도 떨린다고 했습니다. 혼란과 당황스러움을 아우르는 부정의 떨림이라는 것은 말하지 않아도 말투와 눈빛에서 충분히 알아차릴 수 있었습니다.




작은 녀석이 오늘과 내일, 이틀에 걸쳐 생애 첫 중간고사를 봅니다. 겉으로 표현을 많이 해서 즉각 알아차리고 함께 공감하는 것이 가능한 큰아이와 달리, 작은 아이는 입안이 다 헤져서 물조차 빨대로 먹을지언정 엄마에게 시험을 못 볼까 봐 걱정이 된다거나 시험공부가 많아서 힘들다는 얘기 입 밖으로 꺼내지 않습니다. 밖으로 뱉어내지 못한 말들이 몸 안에 쌓여 여기저기 아픈 것은 아닐까 생각될 정도였지요.


그래서 오늘 아침엔 그냥 말없이 조용히 가는 편을 택했습니다. 불안은 기본적으로 잘하고 싶은 욕망에서 비롯됩니다. 못하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은 잘하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욕망의 또 다른 말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엄마의 괜한 말로 아이의 불안을 부추기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저 아이가 노력한 만큼 실력을 발휘할 수 있기를 마음속으로 조용히 바랄 뿐입니다.




얼마 전부터 딸아이가 차에서 내릴 때 "집중" 대신 "사랑해"를 외칩니다. 처음에는 차에서 내리던 아이가 "뭐라고?" 하며 다시 묻더군요. 자신이 잘못 들었다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그래서 제가 "사랑해" 하고 다시 말하니, 아이가 무척 수줍은 얼굴로 "나도" 하고 차 문을 닫는 게 아니겠어요. 뱉지 못한 수많은 말들로 시끄럽고 복잡했던 제 마음이 순수하고 꾸밈없는 딸아이의 수줍은 얼굴 덕분에 위안받고, 치유되는 순간이었습니다.(몇 주가 흘렀지만 딸아이는 지금도 엄청 쑥스러워하고, 수줍어합니다)


그동안 "집중"을 외치던 엄마는 지나치게 완벽한 아이를 기대하고 바랐던 것 같습니다. 완벽한 아이를 바라는 순간 중요한 것을 놓치고 부차적인 것에 집중하게 되는 이 모순. '그러지 말아야지', '그럼 안되지' 하면서도 내 아이라서 잘 내려놓지 못했던 마음을 요즘은 "사랑해"라는 말로 단단히 묶어 놓습니다. 학생이기 이전에 자식이니까, 내 딸이니까 그 어떤 순간에도 온 마음을 다해 조건 없는 사랑으로 키워야겠다고 매일 다짐하게 됩니다. "사랑해" 한 마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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