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에 모 교육지원청 혁신교육지구 공모사업의 서류를 심사하고, 면접관으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평가라는 것이 대상에 가치 판단을 적용하는 일이다 보니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혁신교육지구 사업의 목적과 취지에 합당한지, 분과의 특색은 잘 반영되었는지, 사업 계획과 예산 운용이 적정한지 등을 다각도로 살펴봐야 하기 때문이죠. 평가를 위해서는 공정해야 하고, 그래서 저와 같은 외부인이 종종 평가에 참여하나 봅니다. 물론 외부 평가라고 다 공정한 것은 아닙니다만, 적어도 공모사업에 직간접으로 참여하고 있으면 공정과는 거리가 멀어지니 이렇게라도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겠지요. 공정한 평가를 위해서는 평가자만큼 중요한 것이 평가 기준입니다. 평가 기준이 자의적이지 않으려면 결과가 나오기 전에 미리 그 기준을 명확하게 정해 놓을 필요가 있죠.
큰아이는 시험 후 자기평가, 일명 시험 피드백을 꼭 하도록 도왔습니다. 플래너를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 중1 때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이 말이죠. 그런데 작은 아이는 이게 쉽지 않네요. 첫 중간고사로 국어, 영어, 수학, 과학, 이렇게 네 과목을 봤습니다. 시험공부를 제법 충실하게 한 수학과 영어는 시험이 끝나자마자 쏜살같이 답안을 맞춰보더니 자신이 없는 국어와 과학은 미루고 미뤄서 주말까지도 깜깜이 점수입니다. 결과와는 무관하게 시험을 마쳤다는 홀가분함으로 주말을 행복하게 보낸 작은 아이에게 중간고사 시험 피드백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이 많습니다.
큰아이의 중학시절 시험 피드백
초등학교 때 아이들이 단원평가를 보고 오면 아이들에게 몇 점을 맞았는지, 친구들은 시험을 잘 봤는지, 100점을 맞은 아이가 반에 몇 명이나 되는지 물어보지 않았습니다. 대신 '너는 몇 점이면 만족할 거 같아?', '이번 시험은 몇 개나 맞았을까?', '뭘 틀렸을까? 무엇이 그렇게 헷갈렸을까?' 하고 물었죠. 이전 글에서메타인지를 높이는 도구 중 하나가 테스트(꼭 시험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라고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목표한 점수와 예상한 점수 간의 차이가 클수록 메타인지는 떨어진다고도 했고요.
자기주도학습은 시스템입니다. 시험은 시스템을 점검하는 하나의 수단이 될 수 있고요. 피드백은 시스템의 아주 중요한 단계 중 하나입니다. 시험의 결과가 기대 수준(목표 점수)과 비슷하게 나온 과목이라면 시험 몇 주 전부터 어떤 방식으로 공부했는지, 공부한 것을 어떻게 점검했는지, 취침 시간은 얼마나 됐는지, 컨디션 관리는 어떻게 했는지 등 자기만의 시험 데이터를 만들어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반대로 결과가 좋지 않은 과목들에 대해서는 무엇으로 공부했는지, 나만의 정리가 따로 필요하지는 않았는지, 공부 시간은 적절했는지, 다음 시험 때는 어떻게 하면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을지, 누구에게 어떤 도움을 요청하면 좋은지 생각해 보게 하는 수단으로써 시험이 존재해야만 메타인지의 도구로 온전히 기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단순히 시험 결과가 몇 점인가에서 그치는 질문은 자녀의 가능성과, 잠재력, 실패와 성장에 대한 도구로써 시험이 기능하지 못하는 이유가 될 것입니다.
시험 문항 자체를 분석할 필요도 있습니다. 교과서, 부교재, 프린트물 중 어디에서 출제가 많이 되었는지, 선생님의 추가 설명에서 출제가 많이 된 과목은 무엇인지, 문제 풀이가 시험공부에 도움이 된 과목이 특별히 있었는지, 주관식 문제는 단답형이 많았는지 서술형이 많았는지 등 출제하는 선생님에 따라 달라지는 시험 문항을 학년의 첫 번째 시험에서 파악해 놓으면 이후 세 번의 시험을 준비하는 데는 분명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자녀가 이런 것을 잘 알고 있을 것 같지만 생각보다 두루뭉술하게 느낌만 기억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친구들이 얘기한 것을 자기가 느끼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도 많으니 시험이 끝나면 과목별로 자녀와 이야기를 나눠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시험 기간 중에도 체크할 점이 있습니다. 문제는 다 풀었는지, 풀지 못했다면 시간이 부족해서였는지 문제를 푸는 요령이 부족해서였는지, OMR 카드에 정확히 옮겼는지, 시험을 방해하는 기타 요소들이 있었는지 등을 피드백 항목에 넣을 수 있겠죠. 간혹 시험 감독 선생님의 구두 소리, 앞자리에 앉은 친구의 다리 떨기, 시계의 초침 소리, 향수 냄새 등이 시험의 방해요소로 작용하기도 하니 참고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오늘부터 큰아이가 중간고사입니다. 한 녀석이 끝나니 또 다른 녀석이 시작이고... 제가 해주는 것은 식사와 라이딩밖에 없습니다. 공부는 아이가 하지만 그냥 저도 같이 힘이 쪽쪽 빠지네요. 영어는 그럭저럭 괜찮았는데, 국어 시험이 너무 어려웠다고 푸념하는 큰아이의 목소리가 아득합니다.
시험 결과가 나오기 전에 어떤 기준을 갖고 큰아이와 시험 피드백을 할지 생각해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