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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라코알라 May 05. 2022

이대로 괜찮은 걸까요?

성적표를 받아보기 전까지는 알 수 없는 나의 등급


큰아이의 첫 번째 중간고사도 무사히 끝났습니다. 나흘에 걸쳐 하루 두 과목씩 치른 시험은 주말을 끼고 있었죠. 그 기간 동안 혹시 아프지 않을까, 코로나 확진이라도 되면 큰일인데 하며 마음을 졸였습니다. 마지막 시험이 있던 날, 자고 일어난 딸애가 인후가 따갑고 부은 느낌이라고 하더라고요. 체온을 여러 번 재도 37.5도를 웃돌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자가 키트 결과도 음성이었고요. 그래서 마지막 시험을 치르고 오라며 학교를 보냈습니다. 그래도 딸아이는 좀 찝찝했는지 담임선생님께 말씀을 드리고, 코로나 자가격리는 끝났지만 위험군이라 판단된 친구, 선배들과 함께 따로 시험을 치렀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러길 참 잘했네요. 그날 밤, 큰 아이는 자가 키트의 선명한 두 줄을 보고야 말았습니다.




시험을 모두 마치고 아파서 그나마 다행이다 싶은 건 엄마의 마음이고, 앞으로 일주일간 격리를 해야 해서 학교를 못 간다고 생각하니 딸아이는 답답한 모양입니다. 여하튼 병원에서 지은 약을 먹고 열도 내리고, 특별한 증상 없이 목만 아픈 상태니 이 또한 다행스러운 일이지요. 시험을 마친 큰아이에게 하고 싶은 것이 없냐고 물었더니 특별히 없다고 했습니다. 중학교 때는 시험을 마치고 나면 보고 싶은 마음을 참고 미루었던 영화나 드라마를 몰아서 본다거나 친구들을 만나 실컷 수다를 떨고 오는 식으로 나름의 시험 종료 의식(?)을 치렀던 것과 비교하면 참으로 큰 변화입니다.


시험이 끝났으니 시원한 해방감 같은 것을 느낄 만도 한데... 큰아이에게 중간고사에 대한 소회를 물으니 무언가 찜찜한 느낌이 든다고 했습니다. 왜일까요? 중학교 때는 시험을 마치고, 가채점을 하고 나면 목표한 점수만큼 실제 점수가 나왔을 때 '뭐 이 정도면 만족'이라는 느낌이 들어서 시원한 기분을 느꼈다고 했습니다. 목표 점수와 실제 점수의 차이를 통해서 자신을 모니터링할 수도 있었고요. 그런데 고등학교는 시험을 마치고 가채점을 해도 이 점수가 잘 한 건지, 이 점수로 몇 등급이 나올지 알 수 없으니 좌불안석이라고 하네요. 틀린 문제가 무엇인지, 왜 틀렸는지 살펴보는 것은 뒷전이 되었고... 심지어 진짜 내 실력으로 맞혔는지 찍어서 맞혔는지도 중요하지 않다고 했습니다.


우리 아이가 왜 이렇게 변한 걸까요? 중간고사를 준비하고, 시험을 치르면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배우고 익힌 것을 점검하고, 보다 나은 실력을 갖추기 위해 노력할 부분에 초점을 두는 것은 이제 영영 불가능한 일이 되어버린 걸까요? 딸아이는 내가 맞은 문제를 친구도 맞았다고 하는데 힘이 빠지는 기분이었답니다. 내가 망친 시험이라면 다른 친구들도 다 망쳤기를 조용히 바라게 되는 이상한 마음도 갖게 되었다고 말하더군요. 중학교 때와는 시험을 대하는 태도가 완전히 달라졌다고 했습니다. 모의고사 때만 해도 그러지 않았는데... 중학교에는 모의고사라는 시험 제도가 없어서 그랬던 걸까요?




아이가 하는 말을 듣고 있으니 걱정이 됩니다. 50분을 끙끙거리며 힘들게 문제를 풀어서 맞힌 친구가 운 좋게 찍어서 문제를 맞힌 친구를 바라볼 때 어떤 기분일지... 또 반대의 경우는 어떨지... 결점이 없는 평가 제도는 없겠지만... 저는 상대평가가 맞는가, 절대평가가 맞는가, 정시가 옳은가, 학종이 옳은가를 묻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학교라는 공간에서 평가로 줄을 세우고, 대학이라는 좁은 문을 통과하기 위해 벌이는 이 경쟁에서 우리 아이들이 잃는 것이 더 많은지, 얻는 것이 더 많은지를 한 번쯤 사회에 물어야 할 때가 온 것 같아 이 글을 적습니다. 시험이 없는 나라는 없습니다. 평가가 없는 나라도 없지요. 다만 그 결과로 아이들이 이상한 열패감, 이상한 우월감을 느끼는 일은 덜하길 바랄 뿐입니다.


오늘따라 제 글에 말 줄임표가 유난히 많네요. 할 말을 잃었습니다. (먼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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