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를 몰아보느라 글쓰기가 제 마음에 자리할 곳이 없었습니다. 제 마음속 부동의 1위 '나의 아저씨' 보다 밝고, 몽글몽글... (10화까지밖에 못 봐서 그런 걸까요?) 아직 몇 편 정도 봐야 할 것이 남아있다는 사실마저 너무 설레고 기분 좋습니다. 하지만 이틀 이상 글을 쓰지 않으면 그다음엔 서너 날글을 쓰지 않고도 제 마음에 거리낄 것이 없을 거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드라마를 멈추고, 책상 앞에 앉았습니다.
'공부는 체력이죠'라는 제 글이 조회수 9000을 돌파했다는 알림을 받았습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분명 전체 조회수가 3000을 넘지 못했는데 말입니다. 참으로 신기한 경험이었습니다. 아마도 제가 다른 것에 정신이 팔려 글쓰기를 소홀히 할까봐 미리 조회수로 경고를 보내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여하튼 많은 분들이 제 글을 읽어주셨다는 사실에 놀랍기도 하고 또 살짝 부끄럽기도 하네요.
오늘은 야간 자율학습을 마친 딸아이와 모처럼 드라이브를 하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창문을 활짝 내리고 봄밤의 공기를 느끼며 '존재만으로'('스물다섯 스물하나'에 나오는데 원슈타인 목소리가 너무 좋아서요)라는 노래를 들었습니다. 교과 선생님과 반 친구들 이야기, 오늘 봤다던 음악 수행 평가 이야기로 한창 즐겁게 대화를 나누던 중, 갑자기 딸아이가 "엄마, 이건 상의가 아니고 일종의 통보야. 그래도 괜찮지?"라며 영어학원을 그만두겠다고 했습니다. 자기 대신 내일 학원에 가서 남은 강의에 대해 환불을 받아달라고 하더군요.
그동안 영어 학원에 시간과 돈을 쓰는 것이 너무 아까웠지만 그만두기를 망설였던 것은 자신에 대한 믿음이 부족했기 때문이랍니다. 다른 친구들에 비해 비교적 학원을 늦게 다니기 시작한 편에 속하긴 했지만 학원을 다니기 시작한 후부터는 자기주도적이던 아이도 별 수없이 학원 의존형의 아이로 바뀌더군요. 아마도 학원을 그만두면 당장 기대하는 만큼의 성취를 얻지 못할 수도 있고, 성적이 불안정하게 흔들리거나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저는 딸아이가 '혼자 공부해도 충분할거야'하는 자신에 대한 믿음과 확신이 단단해진 것 같아서 그것이 너무나 기특하고 대견했습니다. 그래서 운전하는 동안 자꾸만 딸아이를 바라봤습니다.
딸아이가 공부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실천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저 아이는 자신이 어느 정도 노력했을 때 어느 만큼의 성과를 거둘지에 대한 감각을 갖고 있구나' 알 수 있습니다. 가뜩이나 피곤하고 바쁜 고등학교 생활에 학원까지 다니는 것이 여간 무리지 싶어 속으로는 학원을 그만두었으면 했지만 그것을 입 밖으로 꺼낼 수는 없었습니다. 딸아이의 불안이 너무 높았기 때문입니다. 학원 하나 그만두는 것이 뭐 그리 대단한 결심일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는 그 결심을 하기까지 저 혼자 수없이 테스트했고, 영어과 선생님께 상담을 요청해서 자신이 정리한 문법 노트와 공부법에 대해 자문도 받았다고 했습니다. 자신에 대한 불안을 믿음과 확신으로 바꾸어가는 동안 엄마로서 해준 게 별로 없는 것 같아 갑자기 미안한 생각이 듭니다.
'존재만으로'의 노래 가사가 자꾸만 입안에서 맴맴거립니다. 커가는 딸아이의 존재가 제 글의 조회수만큼이나 힘이 되는 밤입니다.
Bless you 너 없이 빈 하루가 가네 듬성하게 빈 공간 속에는 채워지네 너만의 모습으로 But I 네 생각으로 힘이 나네 방금 전에 널 본 것처럼 하늘의 별이 반짝이네 내 마음 아는 것처럼 넌 나를 빛나게 해 존재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