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이 건네는 위로
27킬로 부근에 고갯마루가 있고, 그것을 넘으면 마라톤 산이 얼핏 보이기 시작한다. 코스의 3분의 2를 달려온 셈이다. 스플릿 타임을 머릿속에서 계산해보니 이대로 가면 3시간 30분 정도의 기록으로 완주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러나 그렇게 마음먹은 대로 되지는 않는다.
35킬로 지점을 통과한다. 여기서부터는 나에게 있어 '미지의 땅'이다. 나는 태어나서 이제까지 35킬로 이상의 거리를 달린 적이 한 번도 없는 것이다.
37킬로 부근에서 모든 것이 싫증 나버린다. 아, 이제 지겹다. 더 이상 달리고 싶지 않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체내의 에너지가 완전히 바닥난 것 같았다. 텅 빈 가솔린 탱크를 안고 계속 달리는 자동차가 된 기분이다. 물을 마시고 싶다. 하지만 여기서 달리기를 멈추고 물을 마시게 되면 그대로 더 이상 달릴 수 없게 되어버릴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목이 마르다. 그러나 물을 마시는 데 필요한 에너지조차 남아 있지 않다. 그렇게 생각하니 슬슬 화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한다.
40킬로를 넘어선다. "이제 2킬로 남았어요. 힘내세요!" 하고 차에서 편집자가 밝은 목소리로 말을 걸어온다. '말로 하는 건 쉽지'라고 대꾸하고 싶지만 생각뿐 목소리는 나오지 않는다. 벌거벗은 태양이 너무나 강렬하다.
한 자가 넘는 여름 풀 너머로 결승점이 조그맣게 보이기 시작한다. 마라톤 마을 입구에 있는 마라톤 기념비이다. 그것이 진짜 결승점인지 아닌지 처음에는 잘 판단할 수 없었다. 물론 종착점이 보이는 것은 기쁜 일이지만 그 갑작스러움에 대해 까닭 없이 화가 치밀어 오른다.
드디어 결승점에 다다랐다. 성취 같은 것은 어디에도 없다. 내 머릿속에는 '이제 더 이상 달리지 않아도 좋다'라는 안도감뿐이다.
사정을 들은 주유소의 아저씨가 화분의 꽃을 꺾어서 작은 꽃다발을 만들어 나에게 건네준다. "수고했어요. 축하합니다!" 이국 사람들의 그런 작은 마음 씀씀이에 가슴이 뭉클하다.
아테네에서 마라톤까지의 소요 시간은 3시간 51분. 좋은 기록이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아무튼 나는 혼자서 마라톤 코스를 주파한 것이다. 교통지옥과 상상을 초월하는 더위와 격렬한 갈증을 극복하고, 이만하면 나 스스로도 자랑스럽게 생각해도 좋을 듯하다. 그러나 그런 일은 지금 이 순간 아무래도 좋다. 아무튼 더 이상 한 발짝도 달릴 필요가 없다. 뭐라고 해도 그것이 가장 기쁘다. 아아, 이제 더 이상 달리지 않아도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