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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라코알라 Aug 12. 2022

오컴의 면도날

성적이 낮은 가장 단순한 이유


당신의 타이어에 펑크가 났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a) 타이어에 못이 박혔기 때문이다.
(b) 누군가 주차장에 들어와 타이어에 구멍을 내고 달아났기 때문이다.

눈앞에 새까맣게 그을린 나무가 있습니다. 어쩌다가 나무는 그렇게 되었을까요?
(a) 나무가 벼락에 맞았기 때문이다.
(b) 누군가 장치를 이용해서 나무를 적절히 그을린 다음 자신의 흔적을 없앤 것이다.

고속도로에 인접한 아파트 내에서 한 주민이 굉음을 들었습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a) 고속도로에서 자동차 사고가 일어났다.
(b) 적군의 비행기가 폭탄을 떨어뜨렸다.


혹시 위의 질문에 대한 답으로 (b)를 선택한 분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사람마다 생각은 다를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오컴의 면도날 원리로 설명하면 답은 (a)가 될 것입니다.


14세기 영국의 작은 마을 오컴 출신의 스콜라 철학자이며 논리학자인 윌리엄(William)은 어떤 현상의 인과관계를 설정할 때 불필요한 가정을 삼가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흔히 경제성의 원리(The priciple of economy) 또는 논리절약의 원칙(The principle of parsimony)로 알려져 있죠. 그의 저서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등장한다고 합니다.

너무 많은 것들을
필요 없이 가정해서는 안 된다.
더 적은 수의 논리로 설명이 가능한 경우,
많은 수의 논리를 세우지 말라.


제한된 정보로 진실을 논할 때, 불필요한 가정을 최대한 줄여야 판단 오류의 가능성을 낮출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단순한 것이 최고다'라는 유명한 문구는 그에게서 나온 말일 수도 있겠네요.


이것을 공부에도 한 번 적용해 볼까요?

어떤 학생이 경제학 과목에서 F를 받았다고 합시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a) 이 학생이 충실히 공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b) 수업 태도가 불량한 학생이라 교수가 일부러 점수를 낮게 주었기 때문이다.


「1만 시간의 재발견」이라는 책의 저자, 에릭슨 교수는 탁월한 바이올린 연주자가 되기 위해서는 수천 시간의 연습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시간을 단축해 주는 지름길 같은 것은 없으며, 비교적 적은 연습량만으로 전문가 수준에 도달한 '천재' 없다고도 했죠. 설령 탁월한 재능이 있다는 연주자들 사이에서도 기술 연마에 상당히 많은 시간을 들인 사람의 평균 성적이 연습 시간이 적은 사람에 비해 좋았다고 이 책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어디 음악에만 한정된 얘기일까요? 김연아 선수, 박지성 선수, 강수진 발레리나도 모두 지독한 연습벌레들이었습니다. 아인슈타인도 본인은 머리가 좋은 게 아니라 하나의 문제를 남들보다 더 오래 생각했을 뿐이라고 했죠. 모든 것들은 어느 정도의 임계점 돌파가 필요합니다. 초반에는 누구나 힘듭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수준에 올라서면 그 일 능숙해지고, 더 잘하게 되었던 경험, 한 번쯤 있지 않나요? 아이들은 그 경험을 공부로 하지 못한 것뿐입니다.


오컴의 면도날로 돌아와 볼까요? 내가 만약 기대하는 만큼의 성적이 나오지 않았다면 한 번쯤 생각해 봐야 합니다. '나의 절대 공부량이 부족했던 것은 아닐까?'하고 말이죠. 불필요한 가정을 최대한 줄이면 나의 문제점이 보일 수 있습니다.


덧. "나는 왜 공부를 못하지?"라고 생각하는 작은 아이를 위해 이 글을 적습니다. 핸드폰 노트북을 끼고 하루를 꽉 채우면서 이런 고민을 하는 작은 아이가 살짝 얄밉지만.... 그래도 아이에게 이 글을 읽히지는 않을 겁니다. 제 잔소리가 임계점을 돌파했기 때문이죠(아이는 수차례 들어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 입단속은 실패에 가까웠지만, 방학 마지막까지 노력해 보고자 스터디 카페로 도망쳐와 이 글을 고 있습니다. ^^;;;

한 주만 잘 지켜진 9시 기상, 만원 먹튀의 흔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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