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생활 속에서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 사회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일을 찾아 기꺼이 자원봉사하는 성숙한 문화를 가진 대표적인 나라 중 하나가 캐나다입니다. 자원봉사의 개수만도 18만 개에 달할 정도라고 하네요. 그중 15세에서 24세 미만의 청소년 자원봉사 활동 참여가 매우 활발하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봉사 누적 시간이 입시에 영향을 미쳤던 불과 3년 전까지만 해도 학생들은 봉사시간을 채우기 위해 토요일까지 무척 바빴습니다. 공부하기만도 시간이 빠듯한 고등학생에게 봉사까지 시키느냐는 부모들의 볼멘소리가 극에 달할 때쯤 코로나가 시작되고, 대면 상황 자체가 여의치 않게 되자 대학들은 봉사활동을 평가에서 제외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전형에 따라 혹은 모집 학과에 따라 정성적인 평가가 이루어지는 경우는 조금 다르지만요.
아이들이 유치원을 다니기 전부터 저는 지역 어린이 도서관의 문턱이 닳아빠지도록 드나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아이를 데리고 여기저기 놀이터를 전전하다가 그것도 힘에 부치면 잠시 쉴 곳이 필요해서 도서관을 찾았죠. 화장실도 있고, 정수기도 있고,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했던 도서관. 글자를 읽지 못하던 아이는 분홍색 표지의 책이란 책은 모두 뽑아와서 제 무릎 위에 앉아 펼쳐 들면 저는 몇 권이고 그 책들을 읽어주었습니다. 그럼 주변에 아이들이 하나 둘 몰려들었죠. 도서관 사서 선생님이 제 목소리를 듣고 계시다가 책을 읽어주는 봉사를 제안하신 것이 제가 봉사활동에 발을 들이게 된 첫 시작이었습니다.
한 달에 한 번, 영어 책을 읽어주고 연관된 활동을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마음의 부담이 적기로는 한글 책이 그만이었지만 봉사를 시작할 즈음, 저는 아이를 데리고 '메이플 베어 Mom & Tots' 프로그램을 신청해서 다니고 있었어요. 아이가 첫 영어를 조금이라도 재미있고, 친근하게 느꼈으면 하는 바람이 극성으로 이어졌던 것이죠. 덕분에 외벌이 가정의 형편은 더 안 좋아졌습니다(48개월까지만 다닐 수 있었던 것이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릅니다). 아이는 간식 먹는 재미로, 저는 원어민과 수다를 떨며 잃어버렸던 영어의 감을 찾는 재미로... 생각해 보면 제 만족을 위해 다녔던 것 같습니다.
'메이플 베어'를 다니면서 주워들은 영어 동요, 참여를 요구하는 다양한 활동, 관련 워크 시트 등은 영어책 읽어주기 자원봉사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자원봉사를 빙자한 영어 수업은 차츰 입소문이 나서 아이들이 다닥다닥 붙어 앉아야 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죠. 할로윈 데이에는 마법사 복장을 하고 할로윈을 주제로 한 책을 읽어주었고, 크리스마스에는 도서관을 장식하고 크리스마스를 주제로 한 책을 읽어주었죠. 제게는 가르치는 일이 적성에 맞다고 생각하게 됐던 두 번째 계기였습니다.
봉사활동을 통해 저는 나눔의 즐거움, 생활의 활력, 뿌듯한 감정 같은 것을 느꼈습니다. 아이들도 엄마가 선생님(?)이 되어 책을 읽어주는 것이 싫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낯가림이 유난했던 큰 아이는 유치원을 다니기 전이라 또래 아이들을 만날 기회가 많지 않아서 그랬는지, 엄마를 빼앗긴 것 같이 느껴져서 그랬는지 봉사를 마치고 나면 제 품에 파고들기 바빴지만 몇 달 만에 적응하였죠. 그리고 나중에는 모르는 친구에게 "저 사람이 우리 엄마야." 하고 이야기 하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아이 때문에 시작한 봉사활동은 이후 4년가량 지속되었고, 참여하는 아이들도 우리 아이들과 함께 자랐죠.
구립 어린이 도서관 자원봉사는 지역 교육 봉사, 지역 작은 도서관 봉사, 지역 독거 어르신 안부 확인 봉사까지 이어졌습니다.지역 독거 어르신을 위한 간식 나눔과 이야기 나눔 봉사에는 저희 아이들도 함께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 활동도 벌써 4년째 이어오고 있으니까 우리 가족의 봉사 누적 시간만도 꽤 되겠네요. 덕분에 작은 아이는 1학년이 끝나는 학기 말에 난생처음 '자율활동 우수학생 표창'도 받았습니다. 중학생이 되어 처음으로 받는 상장에 무척 기뻐하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네요. 큰아이는 이것 말고도 지역 사회 아동들에게 영어 멘토링 자원봉사까지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을 만나기 전 교재를 고르고, 자료를 찾고, PPT를 만들면서 너무 떨리고 긴장된다며 호들갑을 떨던 모습이 얼마나 귀여운지... 묘한 기대감이 기쁨과 보람으로 빛날 수 있길 바라봅니다.
캐나다는 지역 사회의 이벤트나 축제의 진행요원 80~90%가 자원봉사자라고 합니다. 행사 안내나 뒷정리 같은 소소한 일부터 기업, 단체 등의 장기적인 활동까지 봉사활동의 종류도 무척 다양하고, 무엇보다 회사에서 하는 자원봉사는 일종의 인턴과 비슷한 효과를 발휘해서 졸업 후 우선 채용의 기회도 얻을 수 있다고 하네요.저 역시도 자원봉사를 하며 적성을 찾았고, 경력 단절 이후의 제 커리어를 전환하는 데 크게 기여한 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모든 것들을 차치하고라도 봉사 자체가 주는 도움, 긍정, 감사, 겸손, 배려, 나눔, 존중, 책임, 보람과 같은 순수한 가치들을 경험을 통해 얻을 수 있습니다. 또한 각자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봉사활동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달에는 독거 어르신께 간식이 아니라 직접 만든 음식을 전달해 드리려고 합니다. 제육볶음과 쌈장, 쌈 채소까지... 한 끼 반찬으로 손색없겠죠? 카드에 짧은 메세지까지 적고 나니 이 음식을 드시며 미소 지을 어르신들의 얼굴이 보이는 듯합니다.
10년도 더 된 영어책 읽어주기 자원봉사 때의 사진, 마법사 옷을 입은 사진은 부끄러워서 차마...
이번 달에는 독거 어르신 분들이 드실 음식을 직접 만들었어요
1365 자원봉사포털에서 이렇게 봉사 누계 시간을 확인할 수 있고, 봉사 실적은 NEIS(교육행정정보시스템)에도 연계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