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작가는 한때 한예종 교수로 임용되어 학생들을 가르친 적이 있습니다. 에세이「오래 준비해온 대답」에서 그는 당시를 회상하며, 본인은 선생으로서 재능이 없는 편이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자신이 생각하는 좋은 선생은 지식은 기본이며, 거기에 친화력, 학생에 대한 애정, 그리고 알고 있는 것을 잘 표현하여 전달하는 능력도 갖추고 있어야 한다고 했죠. 그리고무엇보다 자신이 가르치는 것에 대해 확신이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자신에겐 그 확신이 없었기 때문에 학생들에게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따라서 이것을 왜제대로 배워야 하는지에 대한 신념을 주지 못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렇습니다. 가르치는 사람은 내가 왜 이것을 가르쳐야 하는지,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이것을 배우는 학생들은 어디에 써먹을 수 있는지, 누구에게 이로운지를 생각하고, 스스로납득되어야 비로소 좋은 강의를 할 수 있고, 학생들을 집중할 수 있도록 이끌 수 있는 것이죠.
오랜만에 학습자의 모드로 매.일. 오후 4시간씩 강의를 들으러 다니고 있습니다. 출강하는 학교의 강의 일정은 변경이 어려워서 어쩔 수 없이 그날은 결석을 해야 하지만, 그 밖의강의들은 희한하게도 제 사정을 알고 있는 것처럼 오전으로 요청하거나 일정이 미뤄지는 등 충실한 배움을 이어갈 수 있도록 주변이 저를 돕고 있습니다. 덕분에 220시간의 과정 중 절반을 들을 수 있었죠(요즘 이것 때문에 글을 쓰지 못했고, 글 독촉의 메일도 받았습니다).
솔직히 누군가의 강의를 듣고 엄청난 도움을 받을 시기는 지난 것 같습니다. 무언가를 깊이 공부할수록 부족함을 느끼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을 몇 시간의강의로 채우는 것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음을 확실히 깨닫고 있습니다. 애초의 목적도 강의 콘텐츠 보강이었기 때문에... 절반이 지난 이 시점에서 배움에 시간을 투자하는 것 자체로 만족하며 이왕 시작한 과정을 끝까지 마칠 것인지 아니면 절반의 과정이 남았지만 이쯤에서 그만두는 것이 현명한 것인지 선택이 필요했죠. 그때 우연히 '컬러테라피' 클래스가 눈에 들어왔고, 즉흥적으로 신청해서 듣게 되었습니다.
위의 10가지 기본 컬러 중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혹은 끌리는 순서대로 세 가지를 골라보라고 하더군요. 각각의 색들은 현재 추구하는 나의 가치관과 강점, 지금 느끼고 있는 나의 감정과 욕구, 그리고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나아가고 싶은지를 설명해 준다고 했습니다. 저는 첫 번째 컬러로 마젠타, 두 번째로는 터콰이즈, 마지막으로 블루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두 번째로 꼽은 '터콰이즈'가 제게 조용히 말을 건넵니다. 요즘 자기 자신 혹은 타인과 자유롭게 감정을 잘 소통하고 있는지, 나의 감정들이 자유롭게 표현되고 있는지를 말이죠(글쓰기, 음악, 그림 그리기와 같이 창조적인 일로 자신을 표현하는 게 필요하다고 했어요. 제 생각엔 작가님들 글을 읽고 공감의 댓글을 달지 못해서 이런 결과가 나온 게 아닐까 생각했답니다).
며칠 전 메일로 출간 제의도 받았습니다. 솔직히 메일을 받은 그날 저녁은 몹시 들떴습니다. 제가 교육 에세이 작가를 꿈꿨었기 때문이죠. 겨울방학 동안 틈틈이 써두었던 글들을 여러 차례 엎었습니다.끝을 보지 못한 원고들은 새로운 동력이 필요했고, 그래서 써두었던 글들을 조금 손봐브런치에 작가 신청을 하게 된게 올봄이었습니다. '학습'이라는 주제로 시작한 글이다 보니 제 주요 독자층은 아마도 학부모님들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그런데 메일의 내용을 읽어 내려가면서 설렘은 금세 걱정으로 바뀌었습니다. 주제도, 독자층도 제가 생각해 보지 못했던, 그러나 분명 학생들에게는 도움이 될만한 도전적인 제안이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가르치는 것에 대해 확신을 가져야 하는 선생님처럼 책을 출간하자는 제안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저 스스로를 설득하는 작업이 필요했습니다. 과연 나에게 글을 쓸 역량이 있는지, 책이 되어 나왔을 때 누구에게 도움이 될 것인지, 내가 지향하는 가치와 맞는지, 내가 글을 쓰는 동안 양보하고 감내해야 하는 것들에는 무엇이 있을지 등을 스스로에게 묻고 답하며 납득하는 과정에 있습니다.
제가 두 번째로 선택한 컬러 '터콰이즈'는 저에게 새로운 변화를 잘 흘러가게 두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다음 주 중으로 결정해야 하는 이 대단한 결심에 제 마음은 뭐라고 말하는지, 그 신호들을 조금 더 면밀히 지켜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