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알라코알라 Nov 22. 2022

말년 병장, 중3들아

도장판이 뭐라고 이리 열심이란 말이냐


글 독촉을 두 번째로 받았습니다. 글쓰기에 진심이고, 또한 꾸준히 유지하고 싶지만 올해 하반기는 일복이 터졌나 봅니다. 이 모든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며, 우선순위에 따라 하나씩 제 앞에 놓인 일들을 처리하다 보니 강제나 제약이 따르지 않는 브런치를 자꾸만 미루게 되네요. 신기한 것은 '쓰기'뿐만 아니라 '읽기'도 그렇게 되더라고요. (글벗님들의 글을 읽고 댓글로 소통하는 재미를 다시 곧 찾겠습니다)


중3 전환기 수업을 시작했습니다. 학교 선생님들도 '말년 병장'에 빗대어 말씀하시는 그야말로 무서울 게 없는 중3. 저는 군대를 경험해 본 적은 없지만 간부들도 건드리지 않는다는 것쯤은 알고 있습니다. 수업을 들어가기 전 연세 지긋하신 진로 담당 선생님께서 걱정이 한가득이십니다. "우리 애들이 원래 착해요. 어디 나오는 것처럼 선생님한테 폭력을 휘두르거나 그런 애들은 진짜 한 명도 없어요. 그런데 시험도 끝나고... 특성화고 원서 쓰는 시기이기도 해서 좀 어수선하고...... 지금 한참 그럴 때라......"


줄임표에는 다하지 못한 강사에 대한 미안함과 수업에 대한 염려가 살짝 묻어 있습니다. 본인들도 반쯤 포기하고 들어간다는 중3의 교실. 저희도 여러 번 해봐서 익히 알고 있습니다. 코로나로 강화물(영원불멸 마이쭈)을 주는 것도 금지여서 이번에는 '도장판'을 준비했습니다. 31개의 포도알이 그려진 '도장판'이요.


노트북을 설치하고 있는데 여학생 한 명이 조용히 제게 다가와서 말합니다.

학생: 선생님, 저희 오늘 놀면 안 돼요?

나: 선생님이 오늘 놀러 온 건 아닌데... 하지만 재밌게 해볼게.

학생: 그래요? 알겠어요. 뭐 도와드릴 거 없어요?

나: 이따가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는 거??

학생: 알겠어요~~

강사도 사람이라 이런 학생 참 예뻐요.


학교마다 교실마다 노트북이나 컴퓨터사양이며 환경설정이 모두 다른 탓에 정보부장 학생에게 도움을 받는 사이 간단한 고등학교 진학 수요 조사를 해봤습니다. 28명 중에 특성화고 4명, 특목/자사고 3명, 나머지는 일반고 진학. 고등학생이 된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는 듯 무표정하고 멍한 얼굴들입니다. 이 분위기 어쩔... 바꿔봐야죠. 전 조용한 교실이 싫습니다. 교실은 자고로 시끄럽고, 활기 넘쳐야죠.


학생들이 제 이름을 유추할 수 있도록 간단한 '아재개그'로 시작하고(이름을 밝히는 순간 '와~~'하는 탄성이... 좀 즐깁니다 ㅋㅋ), 난이도를 훅 낮춰서 쉬운 알파벳 게임으로 긴장을 풀고 다양한 답이 나올 수 있도록 유도합니다. 틀린 답을 얘기해도 하하하~ 웃을 수 있게, 부끄럽지 않게 만드는 게 목적이지요. 덕분에 무표정 얼굴에서 기대감이 묻어 나옵니다. 이어서 각자 공부를 왜 하는지, 나에게 공부란 무엇인지 나누고, 자신의 진로와 학습의 고민들을 털어놓게 합니다. 학생들이 잘 따라오냐고요? 그럼요. 우리에겐 도장판이 있잖아요.


나에게 공부는 '열쇠''디딤돌'이라고 하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벌레''', ''에 비유하는 친구들도 있습니다. 진로나 학습에 대한 고민들 중에는 당장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의견이 많네요. 저는 공부를 산을 오르는 것에 곧잘 비유합니다. 산 아래에서는 보이지 않 것들이 산 정상에 서면 보이고, 눈앞에 펼쳐진 풍경도 다르고, 훨씬 멀리까지 보이잖아요. 물론 산을 오르는 일은 무척 힘겨워서 때론 쉬어가기도 해야 하고, 도와주는 사람이 있으면 힘든 고비를 잘 견뎌 끝까지 오르기도 하요. 산을 처음 오르는 사람에겐 정상이라는 목표가 까마득하게 느껴지기도 할 겁니다. 하지만 오름의 과정이 반복되면 산을 쉽게 오르는 요령도 생기고 근육도 붙고, 장비도 갖추게 되면서 산을 오르는 게 전처럼 어렵지 않게 느껴지는 것처럼 공부도 마찬가지니 힘을 내보자고요. 원래 공부를 안 했던 사람에게 공부는 다 어렵기 마련이라며 지금부터라도 힘을 내서 나만의 산을 올라보자고 침을 튀깁니다. 좀 진지했나요?


모둠별로 앉아 있는 학생들은 이제부터 팀별 점수 따기에 들어갑니다. 미래 핵심기술을 키워드로 던져서 첫 번째 키워드에서 맞추는 팀에는 도장 3개, 두 번째 키워드에서 맞추는 팀에는 도장 2개... 불꽃튀는 신경전이 벌어지지만 의외로 정답은 교묘하게 피해 가는 친구들. '4차산업혁명'이다 뭐다 말들은 참 많이 듣지만, 정작 정확히 아는 친구들은 많지 않다는 것을 게임을 통해 알게 됩니다.


이번에는 중3 학생들이 귀 쫑긋하는 학과 계열에 대해 살펴보기로 합니다. 특성화고 친구들 중에는 졸업 후 대학으로 진로를 선택하는 친구들도 제법 많고, 졸업 후 3년 직장 생활 뒤 재직자 특별 전형으로 대학을 진학하는 친구들도 많아서 함께 활동해 보기로 했습니다. 글벗님들도 학과가 많은 순서대로 TOP3 계열을 꼽아볼까요?

정답은 맨 아래에서 만나요~

생각보다 계열 살펴보기에서 시간이 제법 많이 소요됐습니다. 학생들도 자신들이 이 정도로 몰랐나 싶었답니다. 일방적으로 주는 정보에만 익숙해져 있던 친구들은 자기들끼리 머리를 맞대고, 의견을 나누었던 이 시간을 통해 메타인지가 생긴 것입니다. 막연하게 알고 있던 계열과 학과에 대한 정보를 이렇게 친구들과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얻었으니 쉽게 잊지는 못할 겁니다.


대학의 이색학과도 살펴보았습니다. 이번에는 개인전 입니다. 1번, 2번, 3번, 4번, 5번 자리를 정해놓고 자신이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곳으로 이동합니다. 학생들이 엄청 재미있어 했습니다. 어차피 답은 다 모르겠고... 소신껏, 눈치껏 답을 맞히기 위해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분위기가 후끈 달아올랐습니다. 학생들 반응은 '이런 학과가 진짜 있어?'입니다. 그럼 있다마다... '어디가' 사이트에서 찾아보렴 하고 일러두었습니다.

학생들의 2/3는 계약학과를 맞히더군요. 아마도 부모님께 이야기를 많이 들은 모양입니다.

쉬는 시간에 우르르 학생들이 몰려와서 한 마디씩 합니다.

"선생님, 머리를 너무 써서 현기증 나요. 그런데 완전 재미있어요."

"선생님, 사회계열 학과가 제일 많은 거 아니었어요?"

"선생님, 열나요. 교실이 완전 후끈해요."


쉬는 시간에 잠깐 들른 담임선생님도 교실 환기 좀 하라고 야단입니다.

'고맙구나. 선생님이 밤새워 고민한 보람이 있네'

이다음엔 시간관리와 플래닝이야!!



(두구두구 답안공개)

-빅데이터(첫 번째에 맞힌 팀은 없었습니다)

-1.공학 / 2.예체능 / 3.사회 (의외로 예체능은 전혀 생각을 못하더라고요)

-자동차딜러과(나머지는 4년제 대학에 있는 학과입니다)

-한양대 미래자동차공학과 (참고로 한양대 미래모빌리티공학과 대학원 과정은 현대자동차 연구원이 보장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23학번 될 준비 됐나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