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hn Berger, <Ways of Seeing>
예술인들에게는 어찌 보면 익숙한 비평가, 소설가이자 화가인 사람이 있다. 바로 존 버거 (John Berger)이다. 그는 런던 태생으로 미술평론가로 시작해 점차 영역을 넓혀 예술, 인문, 사회 전반에 영향을 준 사람이다.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는 <Ways of Seeing>이다. 어떤 자는 이 책을 자신의 예술 교과서라고도 부르기도 할 정도로 예술인들에게는 친숙한 책이다. 한국어 제목은 <다른 방식으로 보기>이다. 내가 보유한 책은 원서이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이 책은 존 버거, 스벤 블룸버그, 크리스 폭스, 마이클 딥, 그리고 리처드 홀리스가 비비시 (BBC) 텔레비전 시리즈 <Ways of Seeing>에 담겨있는 생각들을 확장시켜 만들어진 책이다. 이 책은 총 7개의 번호로 매겨진 에세이로 이루어져 있다. 특이한 점은 2, 4, 6 장은 이미지들로만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나는 대학교 1학년 때 처음 읽어보았고, 그리고 주기적으로 한 번씩 다시 읽어본다. 나의 관심사도 크게는 해마다 작게는 날마다 바뀌는 판이니, 읽을 때마다 생경하다. 사실 시각예술을 하는 사람으로서 그의 글은, 어찌 보면 때로는 그야말로 ‘알고 있던 내용’이다. 그의 글은 어렵지 않고 읽는 대상이 예술 전공자로 국한되어 있지도 않다. 그러니 난해한 전문용어들도 타 도서보다 적은 편이라 말할 수 있다. 미술을 전공하지 않았던 나로 이 책을 읽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사실 어느 정도까지 이 책이 독자들에게 소화될지는 단정 지어 말할 수 없지만, 이 책의 끝에는 이미지들을 ‘다른 방식으로’ 보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책이다.
우리는 ‘알고 있는’ 내용이 많다 - 혹은 ‘알고 있다’고 생각되는 내용이 많다. 그 내용들은 머리를 떠돌기도 하며, 무의식에 나타나기도 하며, 자기 전에 나타나기도 하는 것들이다. 그것의 옳고 틀림에 상관없이 우리는 많은 정보를 ‘알고 있다’. 우리는 정보의 시대에 살고 있지 않은가? 드 넓고 인적이 드문 대자연에 가면 현기증이 오는 그런 인간이 되어가는 아이러니한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는 ‘알고 있는’것에 대한 관심사가 짙어지는 시기를 거치면서 전문성을 갖춘 정보들을 습득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들을 다지고 곱씹고 소화시키면서 우리는 더 ‘깊은 정보’ 속으로 향한다.
나에게는 - 그리고 존 버거에게도 - 예술이란 분야가 그렇다. 갤러리, 뮤지엄, 혹은 핸드폰 화면으로 보는 가공된 이미지들을 보는 순간에도 나는 내가 ‘알고 있던’ 것들을 접한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이 떠오르고 어느 순간 이미지를 해석하고 소화시킨다. ‘알고 있는’ 내용들이기 때문이다 - 또는 그렇다 믿고 있거나.
내가 한 수업중 가장 어려운 수업은 미취학 아동에게 2 + 2 가 왜 4 인지 설명하는 수업이었다. 나는 2와 2가 더해지면 4라는 걸 안지 너무 오래되었다. 그것은 항상 나의 무의식 속에 존재하고 있었고, 의심 없이 받아들여진 상태였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과 꽤 오랜 시간을 지내 왔던 것이다. 학생의 호기심 가득한 표정과 아직 많이 찌푸려진 적이 없어서 주름이 없는 미간이 순간 나를 당황시켰다. 나는 연필 4자루를 2자루 2자루씩 나누어 설명을 해주었고, 학생은 그제야 2 + 2 = 4 임을 이해한 듯 보였다. ‘아 이런 게 눈높이 교육이라는 건가?’ 나에게는 너무 당연한 것들이 다른 사람에게는 그렇지 않다. 이 생각이 사실 너무 뻔하고 뻔한데 새롭게 느껴졌다. 여담이지만 그 순간 나에게 진정한 ‘배움’을 준 선생님들의 얼굴이 많이 스쳐 지나가기도 했다.
존 버거에게도 <Ways of Seeing>을 써 나간다는 것은 그런 의미가 아녔을까? 그가 이미 너무 잘 ‘알고 있던 내용’들을 끄집어내어서 남들이 ‘알 수 있게’ 표현했던 그의 길은 어땠을까 생각해 보았다. 그는 그가 ‘사유’하고 있던 생각들을 글로 ‘표현’ 하였다. 작은 것도 간과하지 않고 글을 써 내려간 ‘다른 방식으로 보는 법’ 이 더 잘 와 닿았던 이유도 아마 자신이 ‘알고 있던’ 내용을 완벽히 숙지한 상태로 쉽게 ‘알려줬기’ 때문이지 않을까....?
( + 자신의 생각을 ‘잘’ 표현하는 일은 쉬운 일은 아님이 분명하다. 나도 신나게 붓을 잡고 그리다가 작품이 마무리가 되어 갈 때쯤이면 무슨 그림이라고 설명해야 나의 의도를 가장 명확하게 보여줄까 라는 덫에 매 작품마다 빠진다. 그럴 때마다 내가 말하고자 함이 무엇인지 머릿속을 뒤집어 헤치며 다니면서 알맞은 것을 찾으러 다닌다. 현기증과 답답함, 짜증 등은 기본이다.)
++ 그의 작품 중 <A가 X에게, 편지로 씌여진 소설>도 추천한다! 연애소설이긴 하나 그렇고 그런 연애소설 이라기보다는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에 나오는 사랑이야기처럼 저릿저릿한 연애편지 이야기다. 강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