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분이 없어서 그랬어요
아침 7:00, 알람이 울리기 전 평소보다 20분 일찍 눈을 떴다.
예전에 알람 없이 눈뜨면 “아 지각인가?” 였는데 나이가 들고 아침 잠이 확실히 줄었다.
머리를 감으면서 트리트먼트에 손을 뻗는다.
평소에는 샴푸까지만 하는데 “오늘은 여유 있으니까~” 하며 머리 끝에 하얗고 무거운 질감을 도포한다.
유튜브에서 본 “부자들은 머릿결이랑 신발을 관리한대”는 말을 떠올리며.
출근할 옷을 고른다.
전날 미리 정해두면 아침이 훨씬 여유롭다는걸 알면서도,
옷을 미리 고를 정도로 출근이 설레진 않는다.
원래는 부랴부랴 어제 입었던 옷을 떠올리며 대충 고르는데, 여유가 있으니 이 옷 저 옷을 입어봤다.
이제 출근을 하려는데 시야에 연체된 책이 들어온다.
알랭드 보통-낭만적 연애와 그 이후의 일상, 원제는 The Curse of Love
볼때마다 “원제가 더 와닿는데” 라고 생각하며,
한번 연장하여 더 이상 연장도 불가한 덜 읽은 책을 챙긴다.
“그냥 이번에 반납하고 다음에 다시 빌리지 뭐.”
서울대 입구 1번 출구,
델리만쥬를 파는 곳에서 구운계란 3입도 같이 판다.
평소에는 사먹어 봐야지 생각만 하며 지나치기 바빴는데 아침으로 사 본다.
문래역 3번 출구,
이 많은 사람들이 어디로 출근하는지 모르겠는데 항상 붐빈다.
여유 없게 나온 날에는 사람들이 길을 막고 있으면 짜증이 불쑥 불쑥 솟는다.
하지만 오늘은 일찍 나왔으니까,
사람들이 길을 막아도 지각은 없다. 짜증이 안 난다.
출구를 나와 3월에 눈이 오는 미친 날씨에 할머니가 곱은 손으로 전단지를 나눠준다.
평소에는 받지 않는 전단지를 받아 간다.
내가 머릿결이 푸석했던 이유는, 마음에 안 드는 옷을 입고 하루종일 기분이 언짢았던 이유는, 두번이나 연체된 책을 제때 반납하지 못했던 이유는, 길막하는 사람한테 짜증났던 이유는, 할머니가 건내는 전단지를 받지 못했던 이유는, 아침에 단 20분의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