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 1, 2학년정도였던 때다.어느날 학교마치고 집에 돌아오는데, 현관 쪽에서 나이드신 할아버지가 나를 불러 세우셨다.
나이가 지긋하셔서 거동이 불편하신데도 몹시 급하셨던 것 같다.
그리고 나를 집에 데려가 달라고 하셨다. 그리곤 화장실을 사용하셨다.
거동이 불편하였기에 뒷처리도 깔끔하지 않았다.
지팡이를 쥐지 않으면 거동이 불편할 정도셨으니, 화장실의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부모님은 바쁜 장사일로 집에 혼자 있었기에, 내가 더러워진 화장실을 정리했다.
말도 어눌하고 지팡이 집고 간신히 걸어다니셨던 할아버지는 나를 데리고 천천히 지팡이 걸음으로 동네 앞 문방구로 가셨다. 그리고 연필깍이 하나를 들어 나에게 주셨다. 초록색 무당벌레 모양의 연필깍이였다. 펑퍼짐한 하얀 바지 안쪽에서 꼬깃한 지폐를 문방구 사장님에게 건네시며 알아듣지 못하게 말씀하셨던 것도 기억이 난다.
그때 나는 왜 연필깍이를 주시는지 잘 이해하지 못하고 그 선물을 받아 집에 돌아왔는데 나중에 부모님이 그 사실을 알게되고 흐뭇하게 바라보며 칭찬해주셨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그 연필깍이는 내가 중학교 들어가고 뾰족한 심이 연달아 나오는 샤프를 사용한 이후에도 책상위에 한자리를 차지했다. 지금도 연필깍이를 볼때마다, 그 할아버지와 화장실과 초록색 무당벌레 연필깍이가 기억에서 되살아나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