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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목민 Jul 31. 2019

연필, 뇌를 긁는 소리

나는 사무실에서 연필을 주로 쓴다.

볼펜과 다르게 연필은 독특한 느낌이 있다.

연필은 사용하면 심이 뭉퉁해져서 연필깍이로 깍아주고 관리해줘야 한다.

깍아내면서 연필의 길이도 줄어든다.

줄어든 연필을 보면, 듣고 보고 생각한 나의 시간들을 대변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

연필 하나를 다 사용했다는 것은 그만큼 내가 성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연필이 종이에 맞닿으며 내는 소리

"사각 사각 사각 슥슥"

이 소리는 생각의 과정을 즐겁게 만들어준다.

아주 조용한 곳에서 깊은 생각을 할 때면, 그 소리가 한층 더 증폭된다.

그 소리가 나를 더 집중하게 만들기도 한다.

소리를 듣다보면 그 사각거리는 소리가 마치 나의 뇌 표피를 슬쩍슬쩍 긁어내면서

나의 생각의 조각들을 끄집어 내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들게 한다.

생각이 잘 정리가 될때면, 흑심이 종이에 맞닿으며 내는 소리가 그렇게 시원할수가 없다.

흔적없이 지울 수 있다는 것도 연필의 매력이다.

삶은, 그리고 흘러간 시간은 지울 수없다.

그러나 연필이 남긴 생각의 기억은 꽁다리에 달린 작은 지우개로 슬며시 지울 수 있다.

지울 수 있다라는 기능만으로도 연필을 잡고 자유롭게 생각을 휘갈기 좋다.

연필깍이에 들어갔다 나온 연필은 마치 목욕하고 나온 사람마냥 새롭고 상쾌하다.

그리고 깎인 연필들을 보고 있으면, 빨리 사용하고 다시 깎고 싶은 욕구가 생겨난다.


연필깍이를 보면 어릴 적 나에게 연필깍이를 사주셨던 이름모를 할아버지가 기억난다.


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 1, 2학년정도였던 때다.어느날 학교마치고 집에 돌아오는데, 현관 쪽에서 나이드신 할아버지가 나를 불러 세우셨다.

나이가 지긋하셔서 거동이 불편하신데도 몹시 급하셨던 것 같다.

그리고 나를 집에 데려가 달라고 하셨다. 그리곤 화장실을 사용하셨다.

거동이 불편하였기에 뒷처리도 깔끔하지 않았다.

지팡이를 쥐지 않으면 거동이 불편할 정도셨으니, 화장실의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부모님은 바쁜 장사일로 집에 혼자 있었기에, 내가 더러워진 화장실을 정리했다.


말도 어눌하고 지팡이 집고 간신히 걸어다니셨던 할아버지는 나를 데리고 천천히 지팡이 걸음으로 동네 앞 문방구로 가셨다. 그리고 연필깍이 하나를 들어 나에게 주셨다. 초록색 무당벌레 모양의 연필깍이였다. 펑퍼짐한 하얀 바지 안쪽에서 꼬깃한 지폐를 문방구 사장님에게 건네시며 알아듣지 못하게 말씀하셨던 것도 기억이 난다. 

그때 나는 왜 연필깍이를 주시는지 잘 이해하지 못하고 그 선물을 받아 집에 돌아왔는데 나중에 부모님이 그 사실을 알게되고 흐뭇하게 바라보며 칭찬해주셨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그 연필깍이는 내가 중학교 들어가고 뾰족한 심이 연달아 나오는 샤프를 사용한 이후에도 책상위에 한자리를 차지했다. 지금도 연필깍이를 볼때마다, 그 할아버지와 화장실과 초록색 무당벌레 연필깍이가 기억에서 되살아나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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