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 도민에게 제주는 낭만? 그것은 환상!
코로나 시기에 잠시 한국에 들어왔다 중국으로 돌아가는 국경이 닫혀 반년간 제주에 머문 적이 있다. 병원이나 식당, 키즈카페 등지에서는 중국에서 온 손님을 무척 꺼려했고, 친정에 신세를 지는 것도 하루 이틀이라 잠시 거처를 두기 위해 제주 한 달살이를 택했다. 체류 기간이 길어지면서 부부의 재택근무와 아이들의 온라인 수업이 같은 공간에서 동시에 가동되어 힘들었지만, 화순과 애월에 3개월씩 머물며 찐 로컬 맛에 흠뻑 빠져들어 중국으로 돌아가기 직전에는 아이들과 눈물 바람으로 짐을 싼 기억이 난다.
그렇게 여행지만 같았던 그리운 제주였건만, 지난 해 여름 설레는 가슴을 안고 면사무소에서 주민등록증에 도민임을 인증한 그날 이후부터는 예상 치 못한 리얼리티 휴먼다큐가 펼쳐진다.
한여름 습하기로는 그 어디에도 뒤지지 않는 광둥 지방에서 무려 6년 넘게 살며 생존력을 길렀건만, 하루가 멀다하고 스멀스멀 올라오는 화장실 곰팡이와 사투를 벌이며 하루에도 여러 번 제습기에 가득 찬 물을 비우는 것에 지쳐갔다. 아이들에게 샤워한 후에는 꼭 스크래퍼로 물기를 정리하고 화장실 문 앞에 제습기를 틀도록 했는데, 학부모 모임에 갔더니 다들 사정이 같았다. 에어컨을 24시간 가동하자니 전기세가 걱정되어 제습기를 번갈아 틀며 신경이 잔뜩 곤두선채 지난한 여름을 났더랬다.
쓰레기 처리는 또 어떨까…. 중국 심천은 고용 창출 차원에서 분리수거인이 따로 있어 쓰레기를 한꺼번에 내놓으면 그분들이 알아서 분리해 처리해 주곤 했다. 그렇게 쉬이 쓰레기를 버렸던 습관 탓인지, 집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크린하우스에 가서 매서운 삼춘들의 눈치를 보며 꼼꼼히 분리해 버리는 것이 꽤나 낯설었다. 표선 지역은 날씨가 척박하기로 유명한데, 센 바람이 부는 날이면 쓰레기 가방 안에 잔뜩 든 쓰레기가 바람에 흩날리기도, 가방 채 날아가 주우러 뛰어가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한다. 장대비가 오는 날이면, 남편과 누가 쓰레기를 버리러 갈 것인지 눈치작전을 펼친다는….
표선리는 서귀포 구시가지와 40분, 제주시와는 50분 이상 떨어져 있는 외딴 ‘촌’이다. 스타벅스는 20분을 운전해야 만날 수 있고, 읍내에서 좀 떨어진 주택에 산다면 배달 음식은 꿈같은 이야기다. 최근 쿠팡 프레시가 가능해지면서 엄마들의 삶은 조금 나아졌지만, 자주 애용하는 한살림은 월요일과 금요일 딱 2번 배송을, 오아시스는 주문 후 족히 일주일은 기다려야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종종 집 근처 유드림마트와 하나로농협에서 장을 보게 되고, 사 온 것들로 직접 음식을 해 먹게 된다. 요리 실력이 나날이 늘어 좋기도 하지만, 집에 재고가 떨어지지 않게 부지런을 떨어야한다는 점이 매우 귀찮을 때가 있다.
제주는 시내를 제외하고는 보통 도시가스가 아닌 개인가스업체를 이용해 난방과 온수를 사용하는데, 유난히 추웠던 올 2월에는 온 식구가 양말과 내복을 착용하고 추위를 났음에도 가스비가 30만원이 넘게 나와 보일러를 아예 꺼버린 적도 있다. 서울에서 아무 생각 없이 지글지글 방바닥을 데우며 반팔을 입고 뒹굴었던 것을 생각하니 그땐 참 사치스러웠다. 변덕 부리는 날씨는 얄궂기까지 하다. 등굣길은 화창해서 아이들에게 우산을 안 챙겨줬는데, 하굣길에 비를 쫄딱 맞아 현관을 젖히길 여러 번…. 흠뻑 젖은 책가방과 신발을 빨아 말리는 일에 익숙해지기까지 꽤 여러 달이 걸렸다. 빗줄기가 바람을 타고 세차게 옆으로 쏟아져 우산은 소용없기에 아이들은 이제 그냥 마음 편히 비를 맞고 온다.
이렇게 짖궂은 날씨와 소소한(?) 불편함을 푸념하며, 도시인에서 시골인으로 변모해 가고 있다. 하지만, 아침에 눈을 떠 맑은 하늘을 눈치 챈 아이가, “엄마! 오늘 날씨가 너무 좋아요!” 라고 한다던가 지독했던 비염을 떨쳐내고 건강하게 지내는 우리 네 식구를 볼 때면, 이 일상에 안도감과 안정감을 느끼곤 한다.
입도한 지 얼마 안 된 신입 도민을 위한 섬 생활 정착 교육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주변 곳곳에서 들려오는 알아들을 수 없는 제주어를 비롯해, 아직 문 앞에 귤 한 상자 두고 가는 이웃 한 명 없는 이 신입을 구해 줄 사람은 없을까? 이맘때쯤이면 너도나도 고사리 따러 간다는데, 행여나 산에서 길을 잃을까 아직 도전해 보지 못했다.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곳곳을 산책하기도 바쁜데, 사계절 곳곳에 숨은 찐 재미를 언제 다 경험해본담? 앞으로 남은 수많은 날이 설렘으로 가득 찬다는 건 그래도 이 곳의 삶에 낭만이 있다는 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