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점 2. 불안

그래, 그냥 뭐든 하자

by Life like Joy

나는 ‘불안’할 때 주변을 정리하거나, 책을 읽는다.


하기 싫은 일을 꼭 해야만 하는 상황에 닥쳐 입술을 깨물고 오른쪽 다리를 떨 지경이 되면, 미뤄둔 설거지와 빨래를 해치우고 책상에 쌓인 문서와 늘어놓은 물건들을 정리한다. 이렇게 눈에 보이는 주변이 깨끗해지면, ‘그래, 이제 그냥 하자!’라는 마음이 들면서 해야 할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상태가 된다. 그게 콘텐츠 제작이 되었던,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거절을 하거나 싫은 소리를 들어야 할 때이든 말이다.


오랜만에 싱가포르에 거주하는 후배와 통화를 하는데, 원화 가치가 떨어지고, 앞으로의 시장 상황이 안개 속이라 집 한 채를 제외한 모든 자산을 해외 주식과 달러로 전환했다고 한다. AI가 범람하는 시대에 어떻게 아이를 키워야 할지 고민이 되고, 지금 잘 살고 있는지 걱정이 많다고 덧붙였다. 이 얘기를 듣는 도중 나도 갑자기 내 자산 상태가 걱정이 되면서 아이들을 잘 키우고는 있는지 자문하게 되었다. 우울도 전염이라더니 불안도 전염인 게 분명하다. 그날 저녁 몇 개의 경제 유튜브를 시청하고 신문을 들척이면서 내 통장을 점검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문득 든 생각이 ‘그래, 자산 걱정도 일단 돈이 많아야 하는 거지.’ ‘7세 아이를 벌써 걱정하면 고1 키우는 나는 어쩌라는 거지...’ 라며 서서히 불안을 놓아주기 시작했다. 아니, 그러고만 싶었다.


여동생이 최근 아이와 함께 개인적인 일로 한 달여간 심리 상담을 받게 되었다. 엄마의 기저에 불안이 있어 아이 양육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고, 최근에 겪은 일도 있으니 엄마에게는 추가로 150만 원짜리 심리 상담 프로그램을, 아이도 별도의 프로그램을 권유했다고 한다. 그녀와 불안에 대해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렸을 때 아버지 사업으로 인해 집안 형편이 어려워졌을 때 부모님의 잦은 말다툼이 그 불안의 시작이 되었던 것 같다. 같은 집에서 함께 자랐는데, 그녀가 받은 영향이 나보다 더 컸나 보다. 그 이후로 성인이 되어서도 매체에 보도되는 화재 사고나 바이러스 전염 소식에도 불안해지고 아이에게도 주의를 당부하게 되었다고 한다. 나는 오히려 그 상황을 벗어나려고 무척 애썼던 것 같다. 물리적으로 도망치던 책 속으로 도망치던 말이다. 그녀와의 대화를 통해 불안을 느끼는 크기와 대응하는 방법에도 성향 차이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주변을 정리하거나, 책을 읽는 건 불안감을 해소하는 방법일 것이다.


그럼 왜 불안한 감정이 들까? 그건 ‘인생은 늘 불확실성의 연속이기 때문’이라고 여러 분야의 작가들이 했던 뻔한 대답들이 기억난다. 어떤 상황에 놓였을 때, 그 끝이 무엇인지 알기 어렵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행동을 취했을 때 미칠 영향에 대해 예측 불가능하기 때문이라고.


그러고 보니 며칠 전 4개월째 서비스를 진행하고 있는 고객사가 더 이상 같이 일할 수 없다고 하면 어떡하지라며 불안에 떨던 경험이 있다. 창업 이후 첫 고객이라 너무 잘하려고 애써서일까. 늘 마음 한편에 부담이 있었는지 며칠째 자다가도 꿈에 나타나는 지경이 되었다. 고객과 통화를 해야 하는 몇 번의 상황을 미루다, 결국 self-reflection이라는 이름을 단 빈 페이지를 하나 만들어 내 불안의 근원을 들여다보고,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차례대로 나열해 보기 시작했다. 모든 고객을 만족시킬 수 없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도 그 어떤 이유로 인해 서비스가 중단된다면 그건 나의 컨트롤 영역 밖이니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결론을 맞이했다. 최선을 다할 수 있는 2개의 방법을 찾고, 고객이 이탈해도 지속적으로 사업이 유지될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을 고민하기로 하면서 마음이 한 결 가벼워졌다. 이렇게 self-reflection (여기서 반성이라는 단어를 쓰면 나 스스로를 혼내는 것만 같아 굳이 영어 표현을 고집하기로 했다.)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본능적으로 생존을 위해 뇌 기억 저장소 어딘가에서 작동 버튼이 눌러진 게 아닐까 싶다.


오늘도 많은 눈 예보가 있는 날씨에 불안하고, 피부과에서 큰 아이에게 처방해 준 약이 성장을 저해하지 않을지 불안하고, 자동차 타이어 공기압 센서에 불이 들어왔는데 센서 교체 시기를 놓치면 어쩌지 불안하고, 슬로 시티 제주에 계속 살면 시대에 뒤처지지 않을지 불안하고, 지금 당장 둘째 아이가 수학 과외라도 받지 않으면 학교 내신에 크나큰 문제가 생기지 않을지 불안하다. 이렇게 불안한 일들이 태산인 인생에서 그래도 스스로를 위안하자면, 이 불안을 겪어내고 이겨내는 과정에서 나는 오늘도 어제보다 조금씩 모든 면에서 나아지고 있을지 모른다는 것.


불안이 나의 성장 동력이 된다면, ‘그래, 나답게 그냥 뭐든 하자.’

작가의 이전글관점 1. 효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