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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들과 어울려 살 것인가?

친구에서 벗으로

by 제주로컬조이
인생은 결국 함께 일하고, 존경하는 친구들과
같은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어 있다.


100세를 얼마 앞두고 최근 은퇴한 워런 버핏의 짧은 영상에 여운이 남아 그의 발언에 대한 내 생각을 정리해 보고 싶었다. 최근 몇 년간 세상을 떠난 몇몇 사람들은 그보다 몇 만배 작은 일을 하더라고 꼭 같이 하고 싶은 사람들이었고, 그 사람들이랑 있으면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고 소회를 말했다. 그는 자신보다 똑똑한 사람들과 함께 하며 더 많은 것을 배우고, 돈이 필요 없어도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이 되고자 했다고 한다. 남들은 넘볼 수 없는 부를 가진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나잘났다 자만할 법도 한데 한 세기를 살면서도 놓지 않는 그의 일관된 인생철학이 그저 놀랍다.


마흔 중반 즈음 되니 공적으로 사적으로 만나온 사람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고, 연락이 끊기거나 연락하기 싫은 사람들이 연락처 리스트에 차고 넘칠 때쯤이면 습관처럼 한 번씩 정리하게 된다. 마치 다시 열어보지 않고 한쪽 폴더에 쌓아둔 오래된 이메일을 휴지통에 끌어당겨 놓듯 말이다. 그렇게 만남과 정리를 거쳐오는 동안 일정하게 관계를 유지하는 관계가 생기고, 요즘은 대부분 SNS를 통해 안부를 확인하지만, 그중에서도 따로 연락해서 얼굴을 보며 생사를 확인하는 더 특별한 사이가 정해진다. 이젠 처음 만나는 사람과 반 시간쯤 대화를 하다 보면 계속 관계를 이어갈 사이인지 아닌지 육감적으로 알 수 있다. 그만큼 인간관계의 생성과 정리에 능숙해진 지금이지만, 나의 관계 속에 정말 편하고 배우고 싶은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이 있는지 나의 인생은 그들과 어느 방향으로 함께 흘러가길 원하는지 돌아보게 된다.


나는 개인의 사사로운 일상과 생각을 존중해 주는 사람이 편하다. 대화 중에 본인이 갖은 물질적 풍요를 풍기는 사람보다는 자신의 생각을 솔직히 표현하고 영적인 행복을 드러내는 사람이 좋다. 내게 강요스러운 조언이나 부정적인 말보다는 진심 어린 응원과 용기를 주는 사람에게 더 끌린다. 연공서열과 상관없이 예의 있게 대하고 어느 정도의 선을 지켜주는 사람이 편하다. 본인이 하는 일이 작든 크든 상관없이 진정과 열의를 다 하는 사람이 존경스럽고, 사람인지라 사사로운 개인의 욕심을 버릴 수는 없겠지만 그것을 솔직히 드러내는 사람과 함께 일하고 싶어진다. 운 좋게도 주변에 그런 사람들이 나의 곁에 있음을 종종 느낀다. 그런데 이런 관계의 정의도 어쩌면 나의 일방적인 정리를 통해 좁아진 덜 유연한 세계관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지 경계의 끈을 놓을 순 없다.


친구는 마음을 서로 나누는 사이이고, 벗은 가치관이나 인생관, 학문, 사업등의 견해를 같이 공유하고 고민하는 사이라 한다. 친구를 두루두루 사귀면 좋았을 젊은 시절에서 벗어나 이제는 같은 방향으로 가야 할 인생의 벗들과 동행해야 할 시기라고 생각한다. 나의 존재 자체가 그들에게 도움과 의지가 되고, 그들이 내 인생의 길잡이가 되어 줄 그런 사이. 어쩌면 지금 살고 있는 이 제주에서 그런 사람들과 날실과 씨실로 엮여 하나의 아름다운 그림 같은 인생을 펼쳐낼 순간이 올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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