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한한 시간에 갇힌 우리
인간은 유한한 시간에 갇혀 있다.
삶은 어떤 면에서 한때의 사건에 지나지 않는다.
모든 인간은 지구라는 생명의 바다에서
죽음이라는 육지를 향해 헤엄쳐 나아간다.
저마다 그 속도만 다를 뿐이다.
이기주 작가의 산문집 <보편의 단어> 마지막 편 <죽음, 유한한 시간에 갇힌 존재>에 나온 글귀가 죽음에 대해 자주 생각하는 요즘의 나와 정면으로 마주했다.
지난해 말 시어머니가 간암 말기 진단을 받으신 후 투병한 지 반년이 지나가고 있다. 평소처럼 시어머니와 신나게 웃고 떠들다가도 전화기 너머로 여느 때와 다른 가쁜 숨이 느껴지거나 팔등에 자리 잡은 백반증이 커진 걸 보면 마음이 덜컥 내려앉으며 마음속 깊은 곳에 묻어 두었던 겁이 기어이 올라온다. 6번의 항암 주사를 맞으시는 동안 차도가 있기를 두 손 모아 기도했건만, 항암 주사를 중단하게 되신 이후 내 마음은 더더욱 그러하다. 최근에 아들내외와 손주들이 있는 제주에 다녀가고는 너무 좋으셨던지 매일같이 안부를 물으시고 잘 살아달라 당부하시고, 그래서 나는 오늘 목구멍 뒤로 쓴 물을 넘기며 결국 사랑한다고 말했다.
주변엔 몸과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있다. 수면제가 없으면 심장이 튀어나올 듯 불안감에 휩싸여 잠을 이루지 못하는 첫 직장 동료, 시청에서 일할 때 극심한 민원으로 대인기피증을 겪은 후 줄곧 우울감을 호소하며 정신과 치료를 받는 동갑내기 친구, 위암 항암 치료 후 시시때때로 찾아오는 고통과 고군분투 중인 띠동갑 동네 언니를 비롯해. 우리는 각자 다른 유한한 시간 안에서 삶이라는 이벤트를 위해 매일을 애쓰며 살아가고 있다.
가끔 그가 좋아하는 그림책을 선물하고, 따뜻한 죽 한 그릇을 드리 밀어주고, 사랑한데이 라고 지나치듯 고백이라도 하면 우리네 삶의 이벤트가 조금은 행복해질까. 죽음에 깃든 쓸쓸함과 두려움을 조금이라도 덜려면 사랑이 필요하고, 오직 그 사랑만이 삶의 유한성에서 비롯되는 허무와 공포를 사그라들게 할 수 있다면.
그래, 오늘도 사랑이다. 마음을 다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