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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이처럼 느린 열차가 성장시킨 마을, 하코네

일본 소도시 여행의 명분

by 작은공원

오다큐선을 타고 당일치기로 가마쿠라를 다녀온 다음날, 나는 도쿄를 하루 동안 완전히 벗어나기로 했다. 도쿄에서 일주일이라는 시간을 보내다 보니 인사이트의 시선이 무뎌지고 쇼핑의 유혹을 참지 못했기 때문이다. (쇼핑의 도시도 하나의 인사이트이긴 하지만.. 조금 더 새로운 시선을 담기 위한 리프레시 시간을 가져보았다)


행선지는 도쿄인들이 사랑하는 온천 마을 '하코네'였다. 하코네 온천 마을은 임진왜란을 일으킨 우리에겐 숙적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자주 찾았던 곳으로 일본 전역에 알려졌다. 그 후 일본의 수많은 온천 마을 중에 5대 온천으로 꼽혔고, 도쿄에서 빠르고 편하게 갈 수 있는 교통편도 만들어지며 그 인기가 나날이 높아졌다. 실제로, 하코네는 찰리 채플린, 윈스턴 처칠, 헬렌 켈러, 존 레넌 등 세계 유명 인사도 찾았던 곳이다. 이러한 유명세에 힘입어 하코네에는 온천뿐만 아니라 테마파크, 미술관 등 다양한 문화 시설이 들어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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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에서 하코네까지 이동은 생각보다 편했다. 시부야에 도착해 로만스카(특급열차)를 타니 약 1시간 30분 만에 하코네유모토역에 도착했다. 하코네유모토역은 하코네에서 나름 시내로 불리는 곳이며, 하코네 여행을 시작하는 장소다. 여행의 시작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바로 이곳에서 등산열차가 출발하기 때문이다. 나도 역 근처의 숙소에 빠르게 짐을 맡긴 후 등산열차에 몸을 실었다. 등산열차는 2량으로 되어 있는 작은 열차다. 1919년에 운행을 시작한 매우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는데, 역사만큼 더 매력적인 것은 등산열차라는 이름처럼 80퍼밀의 경사를 올라가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것이다. 한 번에 올라가는 것은 아니고, 경사를 지그제그로 올라가는데 이를 위해 중간중간(데야마 신호장, 오히라다이역, 가미오히라다이 신호장)에 멈춰서 운전사와 차장을 교체한다. 나는 제일 앞칸에 타 교대 장면을 생생하게 보았는데 만화의 한 장면처럼 재미있게 다가왔다.



한참을 올라갔을까, 지그제그 등산열차에서 내려 가파른 경사를 모노레일처럼 올라가는 열차로 환승했다. 이 열차는 고라역에서 탑승해 소운잔역까지 올라가는데 상당히 높은 경사를 천천히 직선으로 올라간다. 그렇게 도착한 소운잔역에서 다시 한번 환승했는데, 정말 재미있는 경험을 했다. 바로 케이블카(로프웨이)를 탄 것이다. 하코네산 정상인 오다쿠다니까지 올라가는 교통수단 안에 케이블카도 함께 포함되어 있다니 우리나라에서는 케이블카는 항상 별도의 이동 수단인데, 이곳에서는 열차와 같은 교통수단으로 이어져 있는 것이 참신했다.


그렇게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간 오다쿠다니는 정말 장관이었다. 유황 화산 활동의 모습을 생생히 볼 수 있었는데, 이 모습이 바로 일본 자연 그 자체인 것 같았다. 이뿐만 아니라 날씨가 좋으면 후지산도 볼 수 있는데, 아쉽게도 내가 갔을 때에는 날씨가 흐려서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정상 투어를 마치고 내려가기 위해 루트를 보니 케이블카는 도겐다이항까지 이어져있었다. 그곳에서 해적선이라 불리는 배를 탈 수 있는데, 이것 역시 교통수단 중 하나로 연결되어 있었다. '열차-케이블카-배'로 이어진 교통수단을 한 번에 경험할 수 있는 것이 하코네의 큰 매력 중 하나이다.


아무튼 나는 숙소가 하코네유모토 주변을 더 둘러보기 위해 아쉽지만 해적선을 타기 위한 루트는 뒤로하고 올라왔던 루트 그대로 내려왔다. 내려오다 보니 하코네만의 매력으로 만든 맥주를 파는 양조장이 보여 이곳을 방문했다. 그곳은 '고라 브루어리'였는데, 알고 보니 맥주를 100% 하코네의 천연수로 만들고 있었고, 세계 대회에서 금상까지 받을 만큼 퀄리티가 좋았다. 이런 곳을 보고 바로 갈 수 있었던 것도 30km가 채 되지 않은 아주 느리게 가는 등산열차를 타고 이동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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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하자면, 과연 하코네의 교통수단들이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것들이라면 그리고 하나도만 되어 있었더라면 과연 매력이 있었을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느리고 복잡하게 이동하면서 정말 많은 것을 볼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나에게 끌리는 장소로 갈 수 있는 곳이 '하코네'가 가진 매력이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는 항상 빨리빨리 문화로 무엇이든 빠르게 이동하는 것이 최고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가끔은 느리게 보고 경험하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쿠키영상! 케이블카에서 본 오다쿠다니의 절경은 실제로 보는 것을 가장 추천하지만,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 찍어온 영상을 넣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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