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온도
언어의 온도 (이기주, 말글터)
이 책의 온도는 점점 높아지는데, 독자의 온도는 점점 낮아지는 책
‘언어의 온도’라는 제목만큼 이 책 안에는 감성을 흔드는 문장이 많다. 전자책으로 읽었는데, 다 읽고 밑줄 기능 모아보기에 들어가니 밑줄 그은 문장이 매우 많았다. 하지만 이 책을 정독할 때는 읽을수록 내 감정의 온도가 식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문장 한 줄 한 줄, 좋은 문장은 많았지만, 에피소드는 뒤로 갈수록 ‘아무말대잔치’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가볍게 읽기에는 좋은 에세이인데, ‘언어의 온도’라는 제목이 주는 기대감이 너무 커서 그런지 약간 실망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언어의 온도’라는 제목에 충실하게 온도가 높은 문장, 표현이 많다. 그리고 내가 이 책을 산 결정적인 이유는, ‘저러한 소소한 일상에서 어떻게 저렇게 따뜻한 감정을 느낄 수 있지?’란 생각이 들어서였다. 이 책을 읽으면 나도 이 책의 작가처럼 정말 소소한 일상에서 특별한 감정을 느낄 수 있는 훈련이 될 거 같았다.
에피소드를 보면 이 작가는 모든 상황에서 촉수를 세우고 느끼려 하고, 일상에서 듣는 사소한 말, 지나가는 풍경, 떠오르는 생각들을 놓치지 않고 적은 거 같다. 지하철 맞은편에 앉은 할머니와 손녀의 모습, 어머니를 마중 나가면서 어머니와 나눴던 대화에서 느낀 감정 등 소소한 에피소드들이 이 책에 온도 높은 언어로 담겨 있다.
나도 이 작가처럼 매사에 촉수를 세우고 내 일상에서 어떤 언어, 어떤 감정을 건져 올릴지 노력하면, ‘언어의 온도’ 같은 책을 쓸 수 있을 것 같은 환상에 잠시 빠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 작가처럼 감정의 온도를 높여주는 문장, 밑줄을 긋고 SNS에 올리고 싶은 문장들은 쓰지 못할 거 같다. 이게 이 책의 매력이자, 이 작가의 무기라고 본다.
이 책을 베스트셀러에 올려놓은 이 책의 매력, 언어의 온도가 느껴지는 문장을 몇 개 소개하고 이 글을 마친다.
(손녀가 할머니께 자신이 아픈지 어떻게 아느냐고 물어보자 할머니께서 하시는 말)
“아픈 사람을 알아보는 건, 더 아픈 사람이란다…”
(석탑을 보고 주지 스님께서 하시는 말)
“탑이 너무 빽빽하거나 오밀조밀하면 비바람을 견디지 못하고 폭삭 내려앉아. 어디 탑만 그렇겠나. 뭐든 틈이 있어야 튼튼한 법이지…”
2017. 07. 16. mini1023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