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희 Dec 04. 2022

시댁, 수동성의 장

애들 진로 이야기, 건강 이야기 등 더 잘 먹고 잘 사는 방법에 관한 이야기가 아침 드라마처럼 매번 재생산된다. 한참을 듣고 있으면 세상이 낯설어진다. 애들 공부보다 내 공부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나로서는 뭔가 내가 잘못 살고 있는 것 같아 불안하기도 하다.

나 혼자 덩그마니 초라하다. 외로웠다. 대관절 나는 크게 하는 일도 없는데 명절이 왜 피곤한가 했는데 이번에 알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고, 섞을 수 있는 말이 없어서 그런 것 같다. 수동성의 장에 던져진 채 '의욕하지 않기' '행하지 않기'로 시간을 보내야 하니 극도의 피로감이 밀려올 수밖에

- 은유의 <올드 걸의 시집> -


시어머님은 정말 바지런하시다.

시댁 행사가 있는 날이면 웬만한 음식을 먼저 다 해 놓고 우리를 기다리신다. 나는 어머니가 재워놓은 불고기를 볶는다던지, 음식을 데우고 상을 차리는 자잘한 일을 맡는다. 주방 보조를 하는 동안 어머니는 내게 요리 프로그램에서 본 비법들을 쉴 새 없이 전수해 주신다.

미역국을 끓일 때 고기를 한번 데쳐야 국물이 맑다는 것, 볶음 요리할 때 야채 넣는 순서 같은 것들을 끊임없이 알려주신다. 대부분 유튜브나 요리책을 통해 나도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이지만 그냥 모른 척하고 적절한 호응을 보인다. 주방에서 음식 이야기를 하는 것이 우리의 소통 방법이기 때문이다.


시댁에서 내가 하는 일도, 할 수 있는 일도 많지 않지만 다녀오면 늘 피곤하다. 결혼한 지 14년이 다 되어가 니시댁, 친정을 불문하고 내 집이 가장 편한 것이 사실이다.  남편 하나만 보고 한 결혼과 동시에 나는 한 집의 며느리가 되었고, 시댁에 가면 은연중에 행동을 조심하게 된다.


내 안에 규정된 며느리에 대한 편견이 있는 걸까. 어머님이 주방에 혼자 있으면 마음이 편치 않고, 밥을 먹고 나면 형님들을 제처 두고 내가 설거지를 해야 될 것 같은 부담이 있다. 딸은 친정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쉬어가는 휴식처라면, 며느리에게 시댁은 일터인 것이다.


시부모님은 자식들을 위해 희생과 헌신을 서슴지 않는 분들이다. 어떤 부탁을 해도 한 번의 거절 없이 흔쾌히 받아주신다. 그래서인지 일하다 애들 돌봄이 다급할 때는 친정보다 시댁에 긴급호출을 하는 게 편하다. 아들 보약을 챙길 때도 혹여 며느리 서운할 까 봐 늘 내 것도 챙겨주신다.


그런데도 나는 시댁이 아직도 낯설까. 그 이유를 은유의 올드 걸의 시집을 보고 알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고, 섞을 수 있는 말이 없는 '수동성의 장'이기 때문이었다. 내 살림, 내 공간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어머님의 영역이기 때문에 허락을 받아야 하고, 허락을 구하기 민망해 먼저 나서지 않게 된다. 시댁 식구들이 다 같이 모인 자리에서 대화를 나눌 때에도 자연스럽게 섞을 수 있는 말이 많지 않다. 나에게 물어오는 말에 대답하고 맞장구치고, 궁금한 것을 묻는 정도다.


친정에 가면 이상하게 남편을 칭찬하게 된다. 딸이 썩 괜찮은 남자와 살고 있다는 것을 부모님께 말해주고 싶은 가보다. 그런데 시댁에서는 반대다. 막상 남편과 살아보니, 성격이 워낙 달라서 부딪힐 때가 많았다. 깔끔한 성격에 청소를 도 맡아 하지만, 자기만의 깔끔함을 유지하기 위한 피곤함이 내게 전이될 때, 항상 청결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나만의 고충이 있다.


어느 날은 어머니와 형님들과 둘러앉아 있을 때 남편에게 서운했던 점을 토로한 적 있다. 실컷 말해 놓고 나니 다들 내 말에 어떻게 동조해야 할지 몰라 잠시 침묵했다. 그때의 어색함과 냉랭함이란..


형님들은 ‘그래도'로 시작하는 말로 동생을 변호했다. 시부모님은 소극적이나마 내 편을 들어주셨지만 얼굴에 내심 서운한 기색이 비쳤다. ‘그래도 남편은 착하다. 잔소리만 하고 살림을 도와주지 않는 사람보다는 훨씬 낫다’며  나를 달래신다.

‘지당하신 말씀이시긴 한데… 제가 어디 가서 남편 흉을 못 보니 여기 홈 그라운드에서라도 들어주시면 안 될까요!?’라고 반기를 들고 싶었지만 나는 침묵했다. 내가 친정에서 남편 자랑을 하는 것과 같이 아들이, 형님들은 동생네 부부가 잘 살았으면 하는 마음에서였을까.


형님이 3년 간의 미국 생활을 끝내고 귀국한 것을 환송하는 저녁 모임 자리였다. 함께 다과를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며느리는 나 혼자여서 조용히 식구들 말을 들었다.  시간이 지나며 피곤함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거실에 다 같이 동그랗게 둘러앉아 있었지만 나만 원 밖에 있는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편하고 자연스러운 대화를 나누기에 뭔가 조심해야 할 것 같고, 행동을 낮추고, 나 자신을 잠시 내려놓아 며느리라는 신분에 맞게 처신을 해야 한다는 강박이 나를 불편하게 한다.  결혼으로 인해 우리는 상대방의 새로운 가족의 테두리 안에 속하게 되지만, 그 안에서 이방인이 되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명목상 가족이지만, 온전히 그 안에서 수용될 수 없는 채로.


형님은 아이들 교육에 시행착오를 거쳤다며 이제는 아이들을 잘 가르칠 자신이 있다고 했다. 그 자신감의 바탕에는 해외에서 보고 경험한 것, 아이들의 영어실력이 바탕이 되니 근거 없는 자신감은 아닌 것 같다.

학원 보내고 숙제 봐주고 한 정도로는 아이들을 바보 만들 뻔했다고 한다. 그럼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학원 숙제도 제대로 봐주지 못하고 있는 나는 순간 불안해졌다. 나만 직장을 핑계로 아이 공부에 열정을 쏟지 않는 것 같았다. 아이들이 클수록 공부 격차가 생기고, 내 아이가 잘하냐 못하냐에 따라 시댁에서마저도 왠지 등급이 매겨질 것 같은 슬픔 예감이 든다.


작가의 이전글 일을 대하는 태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