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에 대한 장악력과 결과를 책임지는 자세.
올 해로 직장생활 12년 차이다.
20대 중반부터 시작한 직장생활이 어느 덧 10년을 훌쩍 넘겨버렸다. 짧은 기간은 아니지만 경력에 비해 여러 부서를 다녔다. 휴직과 복직을 반복하며 생기는 발령, 근무지역을 몇 번 옮기면서 의도치 않게 새 일을 접할 기회가 많았다. 부서를 옮길 때마다 내 안에서 그 자리에 안주하고 싶은 마음과 새로운 일에 대한 호기심이 항상 충돌했다. 새 일은 약간의 설레임과 잘 해낼 수 있을지에 대한 불안이 동반되는 모험이니까.
어쩌다 보니 상급부서로 발령을 받게 됐다. 아무래도 맡은 일의 종류 많고, 양도 많아서 일에 치일 때가 많았다. 너무 직장에 몰입해 있으면 그 일을 오래할 수 없는 법.
나는 칼퇴근을 위해 그 날의 종착지를 향해 쉬지 않고 달리는 기차처럼 부지런히 하루하루 일의 분량을 정해놓고 쳐내기식 업무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내가 '어떤 태도로 일을 대하고 있는지, 하는 일에 대한 얼마나 깊게 고민하고 있는지'에 대한 물음이 생겼다.
물음 후 멈칫했다. 나의 물음에 스스로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아, 나는 일에 대한 철학과 깊은 고민이 없었구나. 그 동안 별탈없이 일을 잘 마치는 것에 초첨을 뒀었구나. 년차는 자꾸 쌓여가는데 그런 태도로 계속해 나간다면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동안의 방식을 고수해오다 상급부서로 오면서 힘들어 지는 상황이 몇번 생겼기 때문이다. 자리에 따라, 상황에 따라 신중하기도 때론 유연하기도 해야했다.
결재를 받아야 할 상급자들이 많아졌고, 내 문서로 인해 움직여야 할 사람들이 생겼다. 지금까지는 내가 물어보고 자문을 구하는 입장이였다면, 이제는 내가 명확한 답을 해줘야 하는 위치가 된 것이다.
그만큼 내 판단과 결정이 중요해졌다. 일에 따른 책임도 물런 커졌다. 상사에게 물어 시키는 대로 한다면 쉽고 빠른 지름길이라 편할 수는 있지만,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능력은 기르기 어렵다.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이라는 책의 한 부분이 생각난다.
'그런데 선생님, '자기다움'을 애써 드러내지 않고 '민짜'로 그저 착실하게 살고 싶은 사람도 있지 않을까요"
"모르는 소리! 들어보게, 착실한 노예가 있었어. 시키는 대로 해도 되니 이 노예는 행복했다네. 하루 지나면 해 뜨고 밥 먹고 열심히 일하고. 생각할 필요가 없으니 '세상에 이렇게 편한 삶이 다 있나' 좋아했지. 주인의 명령에 따라 감자 씨를 뿌리고, 거두고, 쌓았어. 그러다 어느날 주인이 큰 감자는 오른쪽 구덩이에 넣고, 작은 감자는 왼쪽 구덩이에 넣으라고 일을 시켰지. 그런데 그 노예는 해가 떨어져도 돌아오지 못하고 엉엉 우는거야. 주인이 물었지."
"성실한 자네가 이런 쉬운 일을 못하고 울고 있느냐"
"주인님 감자를 잡을 때마가 이걸 큰 감자로 넣을지 작은 감자로 넣을지, 도무지 판단할 수가 없습니다. 너무 힘이 들어요. 앞으로는 이런 일은 시키지 마세요. "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책의 성실한 노예의 딜레마 중-'
이어령은 정해진 길을 가지 말고, 자기만의 길을 가라며 길 잃은 양이 되보는 것이 자기 만의 '큰 감자와 작은감자'에 대한 기준을 만드는 일이라고 한다. 일도 자기 생각이 들어가 있고, 성취의 기준이 있어야 한다고. 그 때 비로소 '그림자 노동'에서 벗어나게 된다고 한다.
'그림자 노동'이라는 말에서 잠시 멈칫했다. 그 간 주로 지시를 받아 수동적으로 일 한 적이 많고, 내 일의 주인이 되지 못 했으니 장악력도 약할 수 밖에 없었다. 스스로 그림자 노동에서 자유로웠다고 말하기 어려웠다.
책임을 져야할 일이 생기면 내가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찾아서 빠져나갈 구멍을 찾기 바뻤다. 아직도 일의 무게와 파장을 종종 잊을 때가 많다.
'수처작주' 내가 머무는 곳에서의 주인이 되라. 회사에서, 가정에서 내가 있는 자리의 주인이 되어야 맡은 일을 진두지휘하는 장악력이 생긴다. 일에 대한 책임이 결과에 대한 것이라면, 일에 대한 장악력은 일을 진행하는 과정에 해당한다. 내가 일의 핵심을 명확히 파악하고 진행할 때 장악력이 생긴다.
여러번 읽고, 일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혜안을 가지게 되는 것. 일단 그 일을 하는 이유를 고민해 보고, 일이 미칠 효과까지 내다볼 줄 알아야 한다.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자기 만의 해석이 꼭 필요하다. 그 해석을 바탕으로 결정하고 판단해야 한다.
최근 내가 결정해야 할 사안을 다른 사람에게 조심스레 질문한 적이 있었다.
당연하지! 당연한 걸 왜 물어!'라는 식의 답변을 듣고 자존심이 상했었다. 답을 해준 사람의 나보다 권위있는 자였고, 나는 그 답변을 그대로 수용해버렸다. 질문하기 전에 더 진지하게 고민했어야 하는데 그 전에 먼저 수화기를 들고 있었다. 나만의 주관과 판단이 있었나? 내가 그렇게 판단한 근거는 무엇일까? 반대 의견에 대항할 논리가 있었는가? 라고 생각해야 한다.
나보다 권위있는 자에게 판단을 유보하지 말자. 그것은 상사의 업무 지시하고는 다르다. 어떤 사안을 가지고 어떻게 할까요? 라고 물으면 물을 수록 상사는 피곤해진다. 그래서 어쩌라고? 나한테 판단해 달라는 거야? 라고 생각하며 보고자를 자기 주관이 없는 사람으로 보게된다.
직장생활 12년차를 맞아서 일하는 태도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 먼저 내 일에 대한 끈임없는 공부와 이해로 일에 대해 장악력을 행사하는 것, 내 손을 떠난 일에 대한 결과를 책임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일을 잘하는 사람이라는 것은 다른 사람에 의한 평가이므로 일 잘하는 사람이 되지 말고, 스스로의 일에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을 목표로 삼자. 고민하면 할 수록 더 나은 내가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일을대하는태도#장악력#상사에게묻지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