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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희 Dec 11. 2022

’다나까‘ 후배

후배에게 배운다.

170을 훌쩍 넘는 키에 늘씬한 몸, 짙은 눈썹과 크고 선한 눈매, 잔머리 한 올 없이 정갈하게 넘겨 묶은 머리, 화장기 없이도 윤이 나는 얼굴을 가진 후배가 있었다.


화사한 외모와 달리 옷차림은 수수했다. 늘 어두운 계통의 바지를 입고, 회사에서 주는 갈색 점퍼를 걸치고 다녔다. 선배들은 후배의 차림새에 젊음과 곱상한 외모가 가려지는 것 같아 아쉬웠다.


아주 가끔 후배가 검은 머리를 흩날리며 회사 점퍼가 아닌 옷을 입은 날이면 우리는 평소에 이렇게 다니면 외모가 빛을 바라겠다며 과한 칭찬을 했다. 오지랖에 선을 넘는 관심이었다.


‘안녕하십니까!‘, ’ 괜찮습니다!‘, ‘그렇습니까?'

그 후배의 말은 항상 ‘다나까’로 끝났다.

스튜어디스를 연상시키는 외모와 달리 후배가 입을 열면 군기가 잔뜩 들어간 여군이 불쑥 튀어나왔다. 사회초년생 특유의 긴장이 풀리길 기다렸지만 일 년이, 이년이 지나도 후배는 그대로였다.


어느 날은 후배에게 메신저가 왔다. ‘몇 가지 궁금한 것이 있는데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업무 문의를 하는 내용을 보고 나는 잠시 멍했다. 첫째,둘째, 셋째로 나열된 질문사항들.. 끝맺음은 역시나 다나까였다.

메신저에서 후배의 말투가 글에서 고스란히 느껴졌고,마치 나에게 따박따박 따지는 것 같아 서운했다. 돌이켜보면 후배의 개성있는 말투가 귀엽다고 생각할 수 있었을 텐데,,, 그때의 나는 지금보다 더 미숙했다.


옷차림, 말투, 행동까지 후배는 자기만의 세계가 확고했다.  겉과 속이 투명해서 때로는 상대방을 당황하게 하기도 했고, 고집스러운 모습은 아집으로 비춰지기도했다.


한 번은 후배의 동생이 자전거를 도난당한 적이 있었다. 도난 신고를 하면 피해자들은 간이 진술서를 작성하게 된다. 후배는 동생을 대신해 파출소에 신고했고, 진술서도 대신 작성했다.

진술서에 피해품 가격을 적는 항목이 있는데, 보통의 피해자들은 구매 값을 적거나 중고 시세를 감안해 피해품의 적정 가격을 적는다.


‘값을 매길 수 없는 소중한 물건’

후배가 적은 피해품의 시가이다.

삼십만 원, 오십만 원도 아니고, 값을 매길 수 없다고? 처음엔 장난인 줄 알았다. 자기가 다니는 직장에 직접 신고하는 것도 어려운 일일 텐데, 왜 그렇게 적었을까?그때도 나는 후배를 이해하지 못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월급을 아껴모아 큰맘 먹고 동생에게 선물한 자전거였다고ㅠ 한다.


후배의 형편이 썩 좋지 못하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형편이 좋든 나쁘든 후배가 값을 매길 수 없다는 건 어떤 의미였을까? 미숙했던 내가 장난이라고 생각한 그 표현은 후배에게는 진심이었고, 용기였다. 문자 뒤에 숨은 의미를 내가 읽어내지 못한 것이다.


처음 봤을 때 자신은 ‘범죄 수사’가 꼭 하고 싶다고 당차게 이야기하던 후배가 생각난다. 이후 후배는 수사 부서에 들어갔고, 새 업무의 적응이 쉽지 않았다고 한다. 고집 있는 모습은 융통성 없다는 말로, 상사의 지시도 꺾을 정도의 아집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후배는 그 어떤 말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다나까의 말투를 바꾸지 않은 것처럼.


3년간 한 부서에서 일하던 후배는 상급 관청 수사부서로 발령을 받았다. 주변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걸어온 후배의 뚝심이 소기의 성과를 거둔 셈이다.


그때, 나는 버티는 힘에 대해 생각했다. 자신이 가고자 하는 삶의 방향이 확실했기 때문에 고난의 과정을 견딜 수 있었을 것이다. 언젠가 그 힘이 크게 빛을 발하는 날이 그녀에게 올 것 같다.


누가 뭐라고 해도 자기만의 스타일과 말투를 바꾸려고하지 않는 그녀는 정말 개성 있는 동료이자 후배이다.

흔들리지 않는 중심, 자기만의 고집, 힘들어도 버텨내는 후배가 나는 부럽다.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잘 지내셨습니까!? 다시 만나내게 말 걸어올 그날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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