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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희 Dec 17. 2022

뭐라고 불러야 되죠?

초등학교 2학년 생의 날카로운 질문

아들이 초등학교 1학년 때의 일이다. 

같은 학교를 다니는 한 학년 위인 형이 있었다. 아들은 태권도 학원에서 알게 된 그 아이를 '형아, 형아'하면서 잘 따랐다. 퇴근 후 학원으로 아이를 데리러 가면 항상 그 형아와 놀고 있었고, 어느새 학원을 넘어 동네 형 동생으로 친한 사이가 되었다.    


그 형아는 나이에 비해 조금은 성숙했다. 부모님이 가게를 운영해 평일엔 집에 혼자있는 시간이 많았고, 주말에는 중학생인 누나와 보내는 날이 많다고 했다. 혼자 라면도 곧잘 끓이고, 학원차를 타지 않고도 씩씩하게 등하원을 혼자 잘 하는 야무진 아이였다.  


어느 날은 그 형아가 우리 집에 놀러 왔다. 

내가 챙겨준 간식을 먹고 둘이 신나게 놀다가, 주방에 있는 내게 쭈볏거리며 다가왔다. 

무언가 할 말이 있나 보다. 

"왜? 뭐 주까?" 내가 먼저 말을 건넸다. 

"어... 어.... 저기요.. 근데.. 요.. " 

잠시 멈칫하다가 다시 말했다. 

"뭐라고 불러야 되죠?"


"응?."

친한 동생의 엄마를 어떻게 불러야 할지 난감해하는 아이를 보며, 나도 당황스러웠다. 

호칭이 애매하다고 해서 아들과 친한 형에게 나를 '이모'라고 부르라고 할 수 없었다.

'아줌마라고 불러'라고 내 입으로 말하기는 싫었다. 내가 스스로 아줌마라 칭하는 것에는 관대하지만, 누가 나를 아줌마라고 불렀을 때 나는 과연 그 호칭에 덤덤하게 대답할 준비가 되어 있을까. 


 "응 ~ 그냥 윤민이 엄마라고 부르면 돼" 

나는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호칭을 말해주었다.  

내가 스스로 칭한 호칭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그 형아는 마뜩잖은 표정을 지으며 호칭을 생략해 버리고, 핸드폰 게임을 같이 해도 되냐고 물어왔다. 


찰나였지만 그 아이의 물음은 내게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주었다. 아이의 입장에서 친구 엄마를 뭐라고 불러야 적합한 호칭일까? 

어렸을 적 나는 친구 엄마들에게 너무나 당연하게 '아줌마'라고 불렀다. 그 때는 아줌마라 부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친척을 제외하고 결혼한 여자는 대부분 아줌마 아니면 할머니라고 불렸다.  

과일을 파는 친구네 엄마는 과일집 아줌마, 집 앞 족발집 친구네 엄마는 족발집 아줌마가 되고, 주부인 친구 엄마들은 혜지 아줌마, 진영이 아줌마하고 친구 이름에 아줌마를 합친 이상한 호칭으로 부르기도 했다. 그때는 그렇게 부르는 게 좋았고, 이상한지 몰랐다. 

 

한 때 내게 다정한 호칭이었던 '아줌마'는 어쩌다 부정적 어감을 갖게 되었을까. 

어렸을 적에 내가 부르고 마주한 수많은 아줌마와 성인이 되고 난 뒤 사회에서 인식하는 보통의 아줌마는 풍기는 분위기와 어감이 달라졌다 

내가 마주했던 아줌마들은 마실을 다니며 먹거리도 나눠먹고, 엄마가 부재할 때 반찬을 챙겨주는 그런 넉넉한 품을 가진 이미지였다면, 지금은 천연덕스럽고 억척스러운 중년 여성의 이미지가 강하게 자리 잡았다. 


실제로 '아줌마'의 사전적 정의는 '아주머니'를 낮추어 부르는 말이다. '아주머니'는 결혼한 여자를 예사롭게 부르는 말이다. 아주머니에서 왜 낮춰 불러야 하나.

'아저씨'는 결혼한 남자를 예사롭게 부르는 말인데 낮추어 부르는 말이 없다. 

넉넉한 동네 아저씨의 인상을 풍기는 성인 남성은 '아저씨 같다'라고 하지만 지하철에서 가방을 던져 자리를 맡을 것 같이 억척스럽고 드센 성인 여성은 '아줌마 같다'라고 한다. 그런데 아저씨는 영화 속 원빈 같은 '아저씨'가 될 수 있다는 이미지 변신을 꽤 하기도 하지만, 아줌마의 이미지 변신은 요원하기만 하다.

그러니 초등 저학년생도 부르기 전에 한번 고민하는 것 아닐까.


'아줌마'로 시작된 호칭어에 대한 생각의 물줄기는 흐르고 흘러 여러 호칭어들을 떠오르게 했다. 

식당에서 나이가 많아 보이는 종업원에게 이모, 많은지 적은 지 애매할 때는 초면에도 단번에 '언니'가 된다. 

아무래도 언니는 아닌 것 같아 '저기요, 여기요~'라고 한참 부르다가, 이제는 어딜 가도 웬만하면 '사장님!'하고 부른다. 부르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이왕이면 기분 좋은 호칭어가 좋지 않은가. 


그런데 도대체 호칭어를 내 멋대로 바꿔 부를 수 없는 영역이 있다. 열 손가락으로 호칭어를 다 세어도 모자란 곳은 바로 시댁이다.  결혼 초에 남편의 누나들에게 '형님'소리가 어찌나 안 나오던지... 결혼하면 한 가족이 된다는데, '언니'라고 부르면 안 되나? 그런데 지내 보면 알 것이다. 형님이라고 부르는 것이 가장 안전한 거리를 유지해 주는 호칭이 된 다는 것을. 그래도 형님이 도련님이나 아가씨라는 호칭어보다는 낫지 않은가...

 

호칭어는 사람 간 대화의 물꼬를 트는 첫 단어이기 때문에 중요하다. 호칭어에 따라 사람 관계가 정립되기도 한다. 외국처럼 이름을 부르는 문화로 서서히 바꿔나가면 어떨까. 복잡한 나이 계산법도 내년부터 '만 나이'로 통일된다고 하던데, 호칭어도 사회적 합의를 거쳐 좀 심플해졌으면 좋겠다. 


한편으로 그 형아의 호칭에 대한 고민이 반가웠다. 호칭에 대한 우리 문화가 조금씩 변하고 있다는 증거다.

외국처럼 나이에 상관없이 이름을 부르는 모습을 잠시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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