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세 딸은 당연하게 여기고, 11세 아들은 여자 친구 없다고 억울해하는
딸에게 남자친구가 생겼다.
이제 초등학교 6학년 밖에 안됐는데, 이성교제가 너무빨리 시작됐다. 나는 덜컥 겁이 났다.
요즘 아이들은 워낙 성장이 빨라 이성에 대한 호기심에고 일찍 눈을 뜬다는데, 내 딸만은 예외이길 바랐다.
아주 천천히, 적어도 스무 살이 되기 전까지 남자는 이성이 아닌 ‘just friend’였으면 했다. 그러나 현실은 늘 바람과 다르다.
그 간 여러 전조증상이 있었다.
지난해 같은 반 친구가 수줍게 고백했을 때, 또래 남자아이들은 유치한 어린애 같다며 한 치의 고민도 없이 차버렸다고 했다. 영어학원 친구에게 고백편지를 받았을 때에는 편지를 받자마자, 읽지도 않고 휴지통에 버렸다고 했다.
'딸아 그건 러브레터에 대한 예의가 아니야.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은 소중한 감정이잖아? 그 편지를 쓰기까지 얼마나 고민했겠냐~ 최소한 읽어라도 봐야지.
너무했다야 ~'라고 딸에게 내심 기분 좋은 타박을 했던 적도 있었다.
유치원 때부터 지금까지 받아온 고백들을 손가락으로 세어가며, 자기가 차버린? 남자들의 고백 담을 늘어놓고는 이성교제를 왜 하는지 이해할 수 없어하던 때가 있었다. 딱 작년까지는 그랬다.
누가 나를 좋아한다고 해서 마음을 나눠주는 것보다 좋고 싫음의 감정을 명확히 하는 딸의 태도를 속으로 응원했다. 점점 콧대가 높아지는 딸을 보며 안심했고, 이성에 있어서만은 그런 태도를 유지했으면 하고 내심바랬었다.
그랬던 딸이 변했다. 이번에도 전조증상이 있었다.
인스타에 접속해 있는 시간이 늘었고, 외출도 부쩍 잦아졌다. 평소에 관심도 없던 농구에 흥미를 보이며 경기에 출전한 친구를 응원 갔고, 주말에는 무조건 약속이 있다며 나가 저녁이 다 돼서야 들어왔다.
혹시 남자친구가 생긴 걸까. 나와 남편이 여러 번 캐물었지만 딸은 번번이 부인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는 아니길 바라던 물증을 잡았다.
'너 아빠한테 딱 걸렸어. 솔직히 말해봐'
'아니라니까?'
'너 근데 문자에 왜 하트를 보내냐?
'..........'
'너 ~ 아빠 형사다 형사. 속일 생각 마라~ '
집에서도 저러고 아이들에게 자백을 받아버리는 남편. 딸이 문자 보내는 걸 힐끔 보다가 하트를 발견한 것이다. 딸은 체념한 듯 그렇게 됐다고 얼버무리며 황급히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이렇게나 빨리 딸에게 남자친구가 생기다니.
애들이 그만큼 성장했다는 것이 신기하면서도 귀여운 마음에 우린 마주 보며 잠시 웃다가, 슬슬 표정이 굳어져갔다. 남편의 나직한 한숨소리가 들리고, 나는 더 크게 심호흡을 했다.
좁은 동네에서 사귄다는 소문이 퍼지면 딸에게 좋지 않을 텐데, 혹여라도 공부에 소홀해질까 봐, 이제 성교육도 본격적으로 해야겠다는 여러 생각들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딸의 이성교제를 알게 된 우리는 각자의 불안과 걱정을 달래야 했다.
부모의 근심을 눈치챘는지 딸은 자기 남자 친구를 '잘생기고 착한 데다 운동까지 잘하는 모범생'이라고 소개했다.
남자아이에게 고백을 받았을 때 '거절했다'도 아니고 '차 버렸다'라고 하며 콧대 높은 척할 땐 언제고, 이제는자기 남친이라고 두둔하다니. 약간의 서운함과 묘한 배신감이 겹쳐 들었다. 그래도 어쩌겠나. 남친의 존재를 인정할 수밖에.
부모에게 남친 커밍아웃을 하고 나서 기다렸다는 듯 딸은 카톡 프로필 사진부터 바꿨다. 사진 속에 검정 롱패딩을 입은 두 남녀아이가 나란히 서있다. 다행히 둘의 어깨는 조금의 거리가 있다. 그런데 아래로 내려갈수록 팔이 맞닿아 있다.
이것들이... 설마 손을 맞잡은 걸까.....
카톡 프사를 보고 엄마는 또 걱정부터 앞선다.
남편과 나는 남자친구는 ‘조금 더 친숙하게’ 지내는 사이일 뿐, 어른의 연애를 따라 하면 안 된다고 오늘도 딸에게 신신당부를 한다.
너희들은 'love'가 아니고 'like'라고 관계를 정의해 준다.
딸은 엄마의 마음을 알까. 한 때 나와 한 몸이었던, 너무도 소중한 딸이 나에게서 하나 둘 독립을 해 나가려는 것이 반가우면서도 내심 서운한 마음이 드는 것을.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빨라진 독립의 속도에 엄마가 적응하지 못해 허덕이고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