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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희 Nov 26. 2022

인간실격


 

'요조, 자네 왜 이런가! 이제 그만 정신 차리고 제대로 살아보게나. 자넨 아직 젊지 않은가'  

언젠가 다시 읽으려고 책장 한편에 고이 꽂아둔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을 꺼냈다. 이번 독서모임의 주제로 선정된 책이기 때문이다.


나는 2주에 한 번씩 독서모임을 하고 있다. 우리의 모임명은 '토독토독토독'.

 '토요일에 열리는 독서모임'의 앞 글자를 따와 나름 귀여운 이름이 탄생했다.  동네 책방지기인 진 선생님의 주선으로 책에 대한 각자의 애정과 함께 읽고 싶다는 마음만을 가지고, 일면식도 없었던 우리가 한데 모여 독서모임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렇게 함께 해온 지 어언 1년.

그동안 우여곡절도 많았다. 두 명의 멤버가 차례로 모임을 나갔고 모임을 계속해야 할지 확신이 서지 않을 때, 책방지기인 진 선생님이 멤버로 들어와 모임을 이끌어 주었다. 이제 좀 안정이 되려나 싶자 모임 장소였던 소중한 책방이 문을 닫아 버렸다.

책방이 닫았다고 독서모임을 그만두기에는 다들 아쉬움이 컸다. 의지만 있다면 장소가 중요하랴. 우리는 모임을 계속 이어나가기로 하고 더 좋은 장소를 발굴했다. 여러 곡절을 넘기고 여지껏 모임을 잘 이어나가는 이유가 뭘까.


그 비결은 자유로움이랄까?

우리 독서모임은 만나는 시간과 장소, 읽을 책만 정해져 있을 뿐, 모임의 규칙이나 별다른 운영방법이 없다. 선정된 책이 가독성이 떨어져 읽기 힘들 때는 솔직하게 완독 하지 못했다!라고 고백한다. 다소 허술하고 느슨해 보이지만 책을 함께 읽고 이야기 나누고 싶은 마음만은 끈끈하다. 그렇게 유지하다 보니 함께 읽은 책이 무려 19권이나 된다. 19권이면 빼곡히 책이 꽂혀있는 책장의 2줄 정도쯤 되지 않을까. 상상하니 뿌듯하다. 우리는 그만큼의 책과 시간을 함께 한 것이다.


이번에 선정된 19번째 책은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 이다. 인간실격의 주인공 요조를 나는 이미 잘 알고있었다. 가수 '요조'가 인간실격 소설 속 '요조'를 소개해 준 셈이다. 가수 요조는 인간실격을 읽고, 요조라는 인물에 동화되어 이름을 따라 짓기에 이른다. 나는 가수 요조에게 동화되어 요조를 좋아하다 인간실격을 읽었다. 독서모임의 인연으로 책 속의 요조를 두 번이나 만나게 되다니.


요조는 불쌍하고 측은한 인간이다. 인간이라면 상처받고, 부서지기 쉬운 나약한 면을 누구나 가지고 있다. 눈치 빠르고 영민한 요조는 어렸을 때부터 자신을 연기하며 ‘익살꾼 노릇’을 한다. 보여지는 자신과 내면의 자신이 다름을 타인에게 들켜버리자 그때부터 요조는 서서히 망가지기 시작한다. 멈출 수 없다. 여자와 술에 빠져 방탕한 생활을 하다 마약에 중독되고, 여러 번의 자살시도 끝에 결국 생을 마감한다.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여자와 술에 의존하며 인간의추함과 추락을 낱낱이 드러내는 요조는 과연 인간 실격자인가? 그렇다면 인간 자격이란 무엇일까? 우리는 인간 자격에 대해 이야기했다.


"인간이라면 악한 감정과 충동, 파괴 본능을 누구나 가지고 있지만, 상황에 맞게 적절히 통제할 줄 알아야 '인간의 자격'이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런 면에서 요조는 불쌍하죠. 가족에게도 결국 버림받고, 믿을 수 있는 친구와 주변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요. 단 한 명이라도 요조를 잡아줄 수 있는 사람이 있었다면 달라질 수도 있었을 텐데요" 오늘 처음 모임에 참석한 멤버이자 나의 직장동료인 송 쌤이 말했다.


"남성의 세계에서 받아들여진 적이 거의 없죠. 인간을 두려워했지만 특히 남성을 두려워했던 것 같아요. 심지어 자기 아내가 강간당하는 것을 보고도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잖아요? 여성에게는 뜬금없이 '키스해줄까?'하고 물어요. 키스할까도 아니고 ‘해줄까’ 잖아요. 당시 여성의 지위가 낮기도 했지만 남성의 세계에서 적응하지 못한 요조가 위안으로 삼았던 수단이 여자와 술이었던 셈이죠."


인간 자격에 대해 송쌤과 내가 비슷한 지점의 생각을 갖고 있었지만 쉽게 정의내리기는 어려웠다. 우리의 이야기는 자연스레 인간 실격자 요조의 자살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갔다. 세 번의 자살을 시도한 요조를 비난할 수 있을까. 더 이상 비루한 삶을 살지 않기 위해 스스로 삶을 마감한 것은, 요조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 아니었을까.


시대와 역사에 조예가 깊은 심선생님은  요조의 '신뢰'에 대해 이야기했다.

“요조의 세 번째 아내인 요시코는 사람을 무한으로 신뢰하잖아요. 요조는 자신이 어떤 모습을 보이더라도 요시코의 신뢰를 받을 수 있다는 믿음과 안정감이 컸던 거죠. 그런데 요시코의 강간 사건을 계기로 요조가 먼저 신뢰를 저버려요. 이때부터 요조는 나락의 길로 떨어지죠. 다시는 돌아올 수 없을 만큼요"


한 인간 안에 여러 면이 존재한다. 타인에게 감추고 싶은 모습을 누구나 갖고 있다. 나와 심선생님은 요조를 보며 나의 한 부분을 보는 것 같다고 했다. 우리는 어떤부분에서 요조에게 공감했을까.

부끄럼이 많은 요조. 다른 사람을 즐겁게 하기 위해 익살을 연기했던 요조. 현실을 잊기 위해 술을 찾는 요조.상대의 의도를 너무 잘 알지만 모른척하며 나를 드러내지 않았던 요조의 모습에 공감했을까.


술을 조금씩 즐기는 나는 요조가 술을 왜 찾는지 이해가 된다. ‘심선생님 혹시 술 좋아하시나요?'라고 물으려다가 말을 꾹 삼켰다. '혹시 여자 부분에서 요조에게 공감하시는 건.. 아니시겠지요?' 혼자 상상하며 웃어본다.


1947년에 쓰인 소설이지만, 마음이 건강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아진 요즘 시대에 한 번쯤 꼭 읽어볼 만한 책이다. 아름답고 좋은 것, 행복과 평온이 있다면 그 반대지점에 우울과 불안, 불행과 추함이 존재한다. 문학을 통해서 우리는 양극단을 넘나들 수 있다. 시대를 관통하는 것이 역시 고전이구나. 우리의 불편한 지점을 건드려줄 수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시간에 걸쳐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혼자 읽었다면 요조의 불쌍함을 탄식하고 말았을텐데, 함께하니 요조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끝날 줄 몰랐다. 인간의 이중성에 대해, 신뢰에 대해, 죽음에 대해, 철학에 대해... 바다로 흘러가는 강물처럼 우리는 이야기의 물길을 끊을 수가 없었다.


#인간실격

#요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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