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로 같은 사람이 있다.
주변을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사람.
꾸준히 난로로써 자신을 따뜻하게 만드는 것에 집중하면 된다.
주변에서 뭐라 하든
난로를 끄려고 혹은 그 따스함을 자기 자신만 쓰려고 자꾸 이상한 짓을 하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난로의 따스함, 무덤덤하지만 밝은 느낌에 일반적이지 않게 도전을 받는 사람이 있다.
시도 때도 없이 경쟁에 빠지고 우월감과 열등감에 사로잡히는 영혼들은 갑자기 곰이 재주를 부리듯 세상 강한 에고를 들고 오버를 하고 자신이 가진 모든 재주를 보이며 자신이 더 밝음을 더 위대함을 증명하려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쇼도 난로의 불빛이 강할수록 존재의 흔적조차 사라지고 되려 그림자만 깊어질 뿐이다.
난로가 난로가 아닐 수도 있음을 모르는 것이다. 그들의 눈빛에는 그저 난로로 보이지만 존재가 태양의 일부조각인지 알 수 없다. 그런 무지성이 우월감을 더 부풀려 자신이 더 번쩍거리고 있음을 끊임없이 밝힌다.
수없이 반사체를 들고 빛을 반사시키며 자신이 빛남을 증명하지만 그 빛이 어디서부터 왔는지 근원을 물을 깊이가 없고 그마저도 귀찮고 시간이 없어 거울조차 볼 시간이 없다.
그런 존재는 살아도 살아있는 것이 아니기에 무의식적으로 남을 조종하려고 하고 무시하고 자꾸 위에 있으려는 이상한 행태를 보이곤 한다. 그들의 눈엔 난로 같은 사람이 어리숙해 보이고 만만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마치 헬륨가스가 잔뜩 든 풍선이 하늘 위를 날고 있지만 자신이 언제든 터질 수 있음을 잊어버린 모습과 같다. 대체로 난로와 같은 사람들은 열기와 적절한 뜨거움으로 바운더리를 알려주지만 그마저도 알아채지 못한다. 다가올수록 본인이 맞지 않기에 타버린다. 인격이 타든 지 우월감의 본체, 그림자의 원천이 드러나 타버린다. 탈 때는 절대 고소한 냄새가 나거나 은은하지 않다. 맞지 않는 기류가 합쳐지면 온갖 번개와 천둥이 치듯 비슷하다.
세상 그런 불편한 모습과 악취가 나고 만 천하에 자신이 하고 있는 행동을 인지하지 못하고 마구마구 하게 된다. 난로가 한 번도 원한적 없는 자기만의 싸움에 도취되기 마련이다. 결국 난로도 엎고 모든 것을 난장을 하고 나서야 그 난로의 빛마저도 탐했던 탐심만 마주할 뿐이다.
맹목적인 탐심 말이다. 요즘의 카르마타임은 매우 빠른 주기로 돌아온다. 사람들이 기겁하는 그런 타입의 사람들이 지금이 가장 불안한 시기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난로의 빛이 약해지는 지점에는 어쩌면 그런 부류의 어두운 사람들이 있을 수 있는 자리가 있었다.
그러나 난로가 진 자리에 오롯이 견성한 존재만이 있기 마련이다.
수많은 부처와 수많은 중생이 있다.
수많은 중생과 수많은 부처가 서로를 지켜보며 밝음이 더 강하고 넓어지고 커진다.
어쩌면 숨길수도 있었던 여러 가지 회색지대의 상충된 사념들은 이제 점차 사라질 수밖에 없음을 밝힌다.
난로의 역할을 자처했던 사람들의 노력에 세상의 품이라는 연을 맞이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