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내면을 그립니다. 시즌2 -엄마의 작업실]
이 치유의 공간은 제법 오랫동안 나를 지탱해주었다.
글쓰기, 그림의 몰입을 도와주었던 이곳은 이제 앉기만 해도 바로 집중되는 힘이 생겼다. 정말 작은 이 방에서의 소소한 기적을 맞이하면서 일상도 살아야 한다. 사실 기적과 일상의 조화가 나에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방에서도 그런 균형 잡기를 연습하기 딱 좋은 곳이라 여긴다.
나는 어릴 적부터 우리의 앞날이 너무나 궁금하고 불안한 나머지 엄마 손을 붙잡고 그렇게 스님들께 사주를 보러 많이 다녔다. 그리고 그런 엄마를 속으로 비판하면서도 결국 나 역시도 20대에 앞이 도저히 보이지 않았을 때는 딱히 누군가를 찾아가고 싶어 졌다. 내면 깊은 곳에서의 불안함을 하루빨리 해소하고 싶었다. 그 불안함을 내보내면 내가 좀 더 자유롭지 않을까? 막연히 생각했다.
그런 내가 한 가정의 엄마가 되자 나 역시도 한 치 앞을 볼 수 없다는 막막함에 의지심이 최대치를 찍게 되었다.
그렇지만 마땅히 갈 곳이 없었다. 그리고 갈 수도 없었다. 불어난 내 모습을 인정할 수 없었고 푸석한 내 피부도 더 자신이 없었다. 그런데 외모에 대한 열등감보다 더 심한 내면의 수난시대는 엄마들끼리만 알 뿐 그걸 해결할 방법은 없었다. 난 20대 때 수없이 기부했던 수많은 타로카드, 점집에서의 작은 코멘트는 작은 위로였을 뿐 내면이 단단해지는 것을 채워주지는 못했다.
주택 담보 대출을 갚기 위해 한껏 생활비를 줄이면서 살아갔을 때, 내 마음을 치유하려고 찾아가야 하는 것도 부담이 되었다. 돈도 시간도 안되었다. 그리고 그곳도 검증할 수 없었다. 이건 이전의 아픔의 기억이 연결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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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나를 치유하는 여러 가지 도구들을 스스로 마련했다.
그 치유의 방식이 좀 세련되어야 했다. 그리고 나만의 감정적 바운더리를 정했다.
자기 주도적 일 것
변화무쌍할 것
타인에게 알려도 무방할 것
내면의 기준을 가질 것
세상의 매체를 보면 친구에게 털어두라고 하지만 친구도 친구만의 사정이 있다. 그리고 친구도 사람인지라 필터를 장착하고 그 일이 끝나 도 나는 그 필터링된 나를 계속 보이게 된다. 난 그게 참 어려운 것 같았다. 그리고 서로의 입장이 다르기 때문에 서로 도와준 조언이 현실적으로 내게 적용하기가 어려웠다.
그리고 가장 큰 외적인 이유는 남편의 잦은 이직과 잦은 이사가 나를 가장 외롭게 했다. 기댈만한 친구가 조금만 생겨도 금방 끊어지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나를 좀 담금질한다는 마음으로 나 스스로 아주 천천히 일상을 돌아보게 되었다. 나 스스로 고독력을 다시 길러야 하는 시간이 왔다.
철저히 나만의 기준으로 보았다.
나는 한숨 쉴 곳이 필요했다. 나는 눈물 흘릴 곳이 필요했다. 그렇지만 누군가에게 보이는 것은 더더욱 불편했다. 그래서 몰래 울만한 곳, 임금님 귀가 당나귀 귀라고 소리칠만한 곳이 필요했다. 직관의 대가, 신기율 작가님은 화장실에서 감정을 배출하는 곳으로 만들라고 하셨다. 그런데 나는 엄마다. 심지어 일주일에 5일을 24시간 독점 육아를 해야 하는 나는 화장실이 우는 곳이 되기에는 너무 짧았다. 감정이 잘 올라오지 않았다. 감정을 참는 연습을 많이 해서 응어리를 불릴 시간이 필요했다. 아마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문고리를 잡고 '엄마, 엄마' 찾아오는 아이를 위해서도 화장실은 내게 편하지는 않았다. 뭔가 토로할 만한 곳이 필요했다. 그러면서 나의 작업실을 갖게 되었다.
나는 이곳에서는 글도 쓰고 그림을 그리면서 감정을 승화시킬 수도 있다. 작년에 아이가 만 두 살이 안되었을 때 아주 작은 상을 펼쳐 놓고 드로잉을 시작했던 게 작은 시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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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숨 쉴 특정한 '공간'이 필요했다. 절박하게 찾았던 이 평면의 작은 공간에서 살기 위해 그림 치유를 했던 나의 습관은 점점 싹이 자라나 전시를 앞두게 되었다. 전시 준비의 과정 하나마다 질문을 해대는 완전 초보 그림 작가가 되었다.
그런 나는 애초에 전시를 하려는 목적대로 누군가에게 이런 치유의 과정을 설명하고 내면의 힘을 키우는 방법으로서 소개하는 스터디 그룹을 시작했다. 그러면서 또 모든 과정이 내게 공부가 되어주고 있다. 내가 대면했던 수많은 아픔의 조각들이 참 평균치라고 믿다가도 어쩔 땐 그 평균의 수위를 넘기기도 하는 그런 아픔들이 내게 누군가에게 치유할 수 있는 마음의 힘과 약을 만들 기회를 주었다.
그리고 그렇게 그림을 그리면서 조각 글을 모으다가 글을 쓰게 되었다. 글을 쓰면서 답답했던 마음을 토로하듯 쓰면서 나만의 자각이 여러 번 일어났다.
아이가 잠들면 나는 고요히 눈을 감고 나의 깊은 감정을 살펴보았다.
나는 이 곳에서 만큼은 감정적으로 힘든 나 자신을 위해 아주 편하게 멍하게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정말 편하게 울기도 한다. 눈이 시뻘게 질만큼 끅끅 소리가 터지는 눈물을 쏟아내고 나면 가볍게 웃을 수 있었다. 나의 감정을 대면하는 곳, 이 곳이 엄마의 작업실의 용도다.
그러면서 나 스스로 깨닫게 된 진짜 내 마음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런 것들을 나누기로 글을 다시 써보기로 했다. 올해는 나의 큰 테마는 '공부'이다. 결과를 내는 시점이 아니다. 올 한 해 욕심 내지 않고 전시도 앞으로 또 도전할 공모도 나의 또 다른 '공부'의 일부가 될 것이다.
오늘도 나는 작업실로 숨을 쉬러 간다. 내가 만나게 될 앞서간 선배님들과 선생님들을 만나게 되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