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내면을 그립니다.
오래된 가면-inner social mask
나쁜 연인의 관계만큼 트라우마가 큰 것은 잘 없는 듯 하다.
친구들은 만나지 않으면 된다. 그리고 우리나라 특성상 시간이 지나면 관계가 매우 좁아진다. 나이가 들면 친구사이를 유지할 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어진다. 시간이 지나면 가족들도 나이가 든 만큼 가끔 보면 된다. 그런데 나쁜 연인은 대체적으로 그 관계가 자신이 주도적으로 선택한 것과 무의식적인 결핍으로 인한 끌림으로 더욱 밀착된다.
나는 수많은 관계 중에 애정결핍으로 인한 아이 같은 자아를 가진 남자와 누군가를 보살피면 안 되는 엄마의 자아를 가진 여자의 관계를 많이 보게 되었다. 그 반대도 많이 보았다. 보통 남자가 사랑이 많아서 여성이 행복한 사랑을 받는 관계가 가장 이상적이고 인기도 많다. 상대적으로 부모님께 질 좋은 사랑을 받은 친구들은 그에 걸 맞는 사람을 빨리 다 만나게 된다. 서로 사랑을 주고받았던 정서적 에너지가 통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직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 모르는 상태로 ‘외로움’이나 ‘호기심’에 만나는 인연들은 생각보다 악연이 많다. 선연보다 악연이 더 끌리는 이유는 잡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외형적으로 매우 매혹적인 경우가 많았다. 그들이 흘리는 가장 강력한 매혹의 방법은 건강한 매력이 아니다. 오히려 불안함을 끊임없이 방사한다. 천진한 아이 같은 ‘순수함’과 ‘모호함’이 무기이다. 바람기 많은 사람은 오히려 구분하기가 쉬웠다.
그런데 내가 말하는 나쁜 관계는 특별히 밖에서 보면 멀쩡한 관계를 말하는 것이다. 양심의 사각지대에서 계속 가스라이팅하는 연인들을 얘기하는 것이다. 평소에도 모호함을 이용할 줄 알았다. 어장관리를 하는 건 아닌 게 확실하지만 특정 사람하고 있을 때만 헷갈리게 만드는 모호함을 가지고 있었다. 자신이 어떤 표정을 지으면 순수해 보이는지 알았다. 그리고 자신의 불행을 극복하려는 용기를 내고 극복하려는 의지를 내는 게 아니라 아주 연민을 자극하는 눈을 하고 세상 다 산 사람처럼 우울하고 어두웠다. 그 모습을 상대에게 들킨다. 아주 작은 문제를 세상을 초월한 듯 한 발언으로 가득 채웠다. 사랑을 머리로만 배운 사람들은 매우 가정적인 흉내도 곧잘 내고 아주 모범적인 행동만 할 때도 있다.
그 ‘모호함’은 사실 어린 아이 같음은 이성적 생각과 공감, 배려 없음이 많다. 어린아이가 천진하고 순수한 것은 본연의 모습이라 너무 잘 어울린다. 그런데 그 생각 없음이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려는 어른이라면 좀 다른 문제다. 특히나 우리나라 같이 아직도 엄연히 존재하는 폐쇄적인 성역할을 가지고 있고 특히나 성적인 관계에 대한 양극화 문화가 있는 곳, 특히 정절문화가 아직도 만연한 이 곳에서는 이중적으로 자신을 수치심을 들게 하고 잘못하고 있다는 식의 마음을 가지게 한다. 그런 연인들은 끊임없이 그렇게 온순하고 순종적이고 착한 연인들을 착취한다. 아주 여러모로 말이다.
나쁜 연인과의 인연을 끊는 가장 큰 핵심은 거리두기이다. 거리두기를 해보면 알 수 있다. 거리를 두면 안달복달 할 것 같지만 오히려 내가 쥐고 있었던 마냥 관계가 풀린다. 애초에 그는 아무에게도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예 대놓고 나쁜 남자들은 이제는 많은 연애서적이나 여러 강의를 찾아서 볼 수 있기 때문에 좀 비켜갈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사랑의 마음을 잘 못 배운 애매한 남성의 사랑은 한번 엮임으로 인해 그 피해가 어마어마하다. 여성의 경우라면 사랑을 받아야 행복하고 자존심 세워진다는 정서가 만연한 우리나라 문화에 괜시리 더 처량하고 외로워진다.
그러면 어떤 것을 하면 좋을까? 어떻게 하면 그런 사랑을 피해갈까?
자신이 사랑으로 똘똘 뭉쳐 있어야 한다. 진정한 사랑으로 가득차있어야 한다.
진실은 사랑은 받아야만 하는 게 아니라 원래 내게 있는 것이다. 나 자신이 사랑 그 자체임을 발견해야한다.
사랑이 없는 그는 사랑을 내가 마음을 열지 않아서 안주는 게 아니라 원래 줄 사랑이 없는 것이다. 자신이 특별히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아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이미 내가 사랑 자체인 줄 아는 순간 그런 연인들은 알아서 떨어져 나간다. 그렇게 자신의 힘이 없이 또 누군가에게 의지해서 자신에게도 없는 사랑을 주겠다는 마음이 알맹이 없는 희생이다. 알맹이 없는 희생의 사랑은 상처다.
관계는 주고받는 과정인데 끊임없이 덫을 놓고 사랑을 기다리는 사랑, 엎드려서 받는 사랑은 조금 종류가 다르다. 이건 사랑은 가득한데 태도가 부족해서 전달이 안 되는 사랑이 아니다.
태도는 완벽한데 뭔가 알맹이가 없는 관계를 유지하기 보다 오히려 내가 선택한 외로움을 선택하는 사람이 더 건강한 연애를 할거라고 장담한다. 다만 그 뒤로 충분히 공부를 해야한다. 자신을 사랑하는 공부이다.
스스로를 인정하고 스스로에게 아낌없이 지지해준 자존감의 성장이 먼저 이루어져야한다. 너무나 외로운 감정의 터널을 딛고 넘어선 자만이 가지는 사랑의 시작은 느려도 강하고 튼튼하다.
오래전 관상용 아기자기한 나무가 있었다. 한참을 물을 주어도 풀이 자라지 않았다. 있던 풀은 푸르렀다. 변화가 없다고 느끼고 나무를 만져보았다. 겉은 멀쩡한데 속이 다 물렁해져 있었다. 오히려 다 죽은 줄 알았던 시든 나무가 있었는데 그 나무는 자기의 속도대로 우리 집의 온도에 적응하기 위해 사투를 벌였다.
처음엔 그 옆의 나무보다 덜 푸르고 덜 예뻤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오히려 건강하게 컸고 아직도 내게 남아있다.
좀 무심한 듯 한 사랑을 줘도 같이 있을 인연은 남아있다. 애쓰지 않아도 섬섬해도 되는 사랑이 매력있는 속빈 강정보다 훨씬 가치있다. 아주 섬섬한 연애, 그렇지만 만나면 따뜻한 사랑을 꼭 찾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