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것을 선택하는 게 좀 어려웠다. 대체로 호불호가 많이 흐려졌고 웬만한 호에 대한 선택은 충분히 느끼는 것 같다. 연말이 되니 나에게 뭐를 선택해야 하는지 자꾸 물었다. 그런데 이외로 싫어하는 것부터 걸러내 보자고 마음을 먹으니 더 쉽게 답이 나왔다.
'나를 초라하게 만드는 것들로부터 해방되자!
정리 컨설턴트, 곤도 마리에는 '설레지 않는 것'을 버리라고 했다.
난 그 기준이 좀 어려워서 뭔가를 입거나 어떤 것을 먹거나 뭘 했을 때 내가 궁색해 보이고 초라한 감정을 느끼게 하는 것을 걸러보았다. 마침 이사라는 이슈가 있으니 여러모로 버리고 정리하기에 기준이 생기니 훨씬 속도가 빨라졌다.
관계
'자신을 소중히 대하라'는 기준이 애매했던 예전에는 자존감이 낮아서였는지 내가 기꺼이 초라해도 되는 자리를 찾아가곤 했다. 그때 당시는 그게 양보하고 배려하는 마음과 허드렛일을 기꺼이 한다는 마음도 있었지만 그런 행위도 나 자신을 그렇게 바라봐주는 누군가가 있었을 때 선순환의 헌신이 된다. 가족관계에서도 직장에서도 내가 하는 행위에 대해 뭔가 서글프고 초라한 마음이 들게 하는 지점이 있다면 그 자리를 벗어나보는 것이다. 영화나 드라마도 사진 하나에 빛과 음악을 어떻게 연출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지듯이 나를 그늘에만 두는 습관을 검토해 보는 것이다. 그저 다른 사람의 비위를 맞추다가 자기도 모르게 낮추고 나도 모르게 아무런 멋이 없는 나 없는 삶을 선택하고 사는지도 모른다. 기회주의자가 되고 누가 보니까 하는 식이라면 곤란하지만 자기도 모르게 자신을 낮추는 습관을 버려보자. 자신이 좀 더 웃고 발언권이 있는 관계로 나아가보자.
옷
화려하게 멋을 내보라는 것은 아니지만 매번 습관처럼 혹은 굳어진 누군가의 권유로 아무런 취향 없이 그 시절의 기준에 맞춰 살고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오래되고 아무도 안 볼 거라 생각하는 속옷이나 내복, 잠옷도 점검해봐야 한다. 집순이라면 집에서 입는 홈웨어도 자신만의 기준을 찾아보면 좋다.
그런 작은 연출 하나로 '히키코모리'가 될지 그냥 '집에서 쉬는 사람'이 될지 정해진다.
누군가는 어린 시절의 어떤 메이커(지금은 모든 게 브랜드화되어 있지만) 제품이 부의 상징이 되어서 그것만을 고집하는 경우도 있다. 그게 지금도 어울리고 자신에게 기쁨을 준다면 그게 지금의 눈에도 괜찮은지 점검해봐야 한다. 분수에 넘치는 멋을 추가한다기보다는 내가 가진 고유의 격을 다시 점검하자는 차원에서 구분해 보자. 돈을 많이 들이지 않더라도 '변화'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
음식
'영화'나 '드라마'를 상상하면 너무 잘 드러난다. 음식을 식욕으로 때우는 느낌으로 허겁지겁 먹는 느낌과 계획하고 조금이라도 차려 먹는 것을 구분한다. 매번 끼니를 길에서 해결할 수도 있지만 그런 자기 자신이 초라하지 않으면 된다. 나의 이 모습이 성실함의 상징으로 보이면 된다.
그게 아니라 매번 먹을 때마다 초라하게 느낀다면 그런 자신이 불쌍하게 느낀다면 먹는 태도를 조금 바꾸면 된다. 대체로 가격이 비싼 곳일수록 차림표도 정돈돼 있다. 가격이 낮을수록 차림의 기준이 없다. 자신을 초라한 상태에서 보통 사람들이 먹는 정도로는 대접해 줘야 그 힘으로 남을 도울 수 있다. 나부터 잘 챙겨 먹자.
분수에 맞게 살라는 뜻은 분수를 넘지 말라는 뜻도 있지만 분수가 비워진 채로 살지 말라는 뜻도 포함된다. 자신의 그릇만큼은 소신껏 채워보자. 나의 초라한 마음은 자신을 더 움츠리게만 만든다. 내가 기꺼이 대접받고 싶은 만큼을 나에게 대해주자. 그 마음은 자기만 아는 이기심이 아니라 자신을 기꺼이 돌본 따뜻함으로 선순환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