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지가 태도를 바꿔 사람을 바꾸기도 하지만 공간이 저절로 그렇게 굴러갈 수 있게 상황을 만들어 주는 곳에서 공간이 주는 힘에 의지해보면 좋다. 능동적이거나 자립적으로 움직이고 싶지만 의지가 생기지 않는 다면 움직일 수밖에 없는 공간에 나를 놓아두는 것에 총력을 기울이는 게 더 빠른 것 같다.
사람은 새로운 곳에 오면 저절로 더듬이가 예민해진다. 보이지 않는 모든 촉수를 세워 우리가 안전하게 머물 수 있는지 파악하게 된다. 새로운 곳에서 또 우리만의 질서를 찾아서 돌아다니면서 정말 동물처럼 영역 확장을 해보게 된다. 집 앞부터 알아보다가 점점 멀리 가보는 연습을 해보게 된다.
내가 여러모로 배우고 라이프 스타일에 적용해 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그분들은 새해부터 이민을 떠났다. 그걸 보고 저마다 각자의 위치에서 '공간'이 주는 안정감을 버리고 새로운 '공간'으로 들어서는 계획을 했다는 점이 참 신기했다. 어쩜 결이 비슷했기에 내 시선을 사로잡았는지 모른다.
이곳에서의 안락한 환경, 이미 어느 정도 자리 잡은 안정된 거처와 직장 등등 내 기준에 하나도 아쉬울 게 없어 보였지만 저마다의 새로운 길을 따라 떠났다.
내 모습도 다르지 않았을 것 같다. 이제 제법 사람들을 사귀고 아이도 독립적으로 집을 오가게 되었는데 그걸 다시 새로운 터전에서 만든다고 하니 정말로 고생을 사서 하는 기분이 든다.
수많은 사사로운 불편함들이 나에게 시시비비를 따지곤 했다. 그래서 돌아가고 싶은지?
후회하는지 말이다. 지금은 수많은 단점을 가지고 있지만 그걸 다 덮고도 만족할만한 공간이 주는 장점에 매료되고 있다. 이 공간은 시시각각 메시지를 준다.
물론 이사 와서 일주일이 지나서야 식사다운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짐을 줄이느라 반찬도 쌀도 다 줄였는데 정작 마트 갈 시간조차 없이 바빴다.
물건 정리부터 닦아내야 할 게 많았던 터라 손 끝을 더욱 아리게 만들었다. 덕분에 라텍스 고무장갑을 끼고 일하는 분들에 대해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잠도 마찬가지이다. 일주일마다 찾아와서 여기저기 수리를 하고 인터넷 선, 정수기 설치 등등 잡다한 연결고리를 이어야 해서 수시로 외부인들이 오는 통에 단잠 한번 깊게 못 잤었다. 통잠을 잘 수 있게 된 게 2주째 들어서야 가능해졌다. 아직도 어색한 건 물이 데워지는 속도와 집안의 온도이다. 늘 익숙했던 이전의 온도보다 훨씬 낮았고 그 서늘함에 마음도 조금 움츠려든게 사실이었다. 그런데 그것도 적응의 영역이었다. 모든 생활이 적응의 영역이다 보니 정말 내가 고요함을 찾아 기도 수행했던 일이 옛날일 처럼 느껴질 정도이다.
생활이 점차 페달이 밟히고 수많은 바퀴가 맞물려 갈 때까지 조금은 근육통과 피부 찰과상등이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새로운 곳에 적응해 가는 방식, 바빠도 무엇을 챙겨야 하는지 스스로에게 자주 물어볼 수 있게 되었다.
늘 샤워만 하다가 처음으로 물을 받아 목욕을 해보았다. 처음 받은 물은 미지근했다. 그래도 계속 받았다. 그러니 점점 뜨뜻한 물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 온도를 맞추기 위해 열심히 물보라를 만들어봤다.
아이도 금세 따뜻해져서 좋아했고 나 역시도 오래간만에 올린 온기에 몸을 녹일 수 있었다.
공간은 내게 계속 움직여서 여기에 맞는 온도에 적응하고 근육을 만들라고 알려준다. 시간이 좀 더 지나면 불분명한 장점이 좀 더 구체적으로 쓸 수 있게 드러날 것이다. 그때는 지금보다 좀 더 여유로운 시선으로 지금을 볼 수 있길 기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