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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작업실 Aug 03. 2020

해바라기 그림

엄마의 작업실

내가 첫 전시를 마쳤고 그 그림들이 다시 집으로 도착했다. 마침내 전시가 신문에도 실리는 기쁨을 맞이했다. 친정엄마에게 나의 성취의 기쁨을 알렸다. 마침 엄마는 엄마 친구분들과 같이 계모임을 가고 계셨다. 간단하게 내 상황을 전하고 끊었다. 그 계모임을 끝내고 다시 엄마가 전화가 왔다.


대뜸 '해바라기 그림'을 그려줄 수 있냐고 하셨다.


돈을 줄 테니 '해바라기 그림'을 작게 그려줄 수 없냐고 사람들이 묻던데? 난 대충 바쁘다고 둘러대고 전화를 끊었다.



난 사실 기분이 몹시 상했다. 이 기분을 어떻게 설명할까?




그림은 기운이 묻어난다. 그 그림에 정말 그 화가의 마음이 묻는다. 최대한 좋은 감성을 담기 위해 노력한다. 그렇지만 그렇게 소진하고 나면 나도 사람인지라 기운이 빠진다.

그렇게 기도하는 마음을 담는다.


그분들도 나름 나를 위한다는 가식적인 인사치레에 마치 " 너 기도 매일 하던데 내 기도 좀 해줄래? 너 기도 잘하잖아~ 내가 돈 줄게~! " 그런 마음이었다.

그런 말을 또 덥석 나에게 전달해 주는 엄마가 참 답답했다.

난 엄마의 친구분들에게도 마음이 상했지만 엄마에게도 마음이 상했다.


엄마도 물론 나에게 눈치 보면서 물어보긴 하셨다. "네가 그런 그림 안 그린다는 거 아는데...."


마침 졸업전시를 준비했던 학부 때가 생각이 났다. 졸업전시 이후 개인전을 바로 하는 선배님들이 계셨는데 그때 지인분들이 그림을 한 점씩 사주셨다고 했다. 그래서 완판을 했다며 자랑하는 모습이 기억이 났다.

난 그 정도를 바라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와! 너 전시했구나 그림 나중에 하나 사주고 싶네~" 정도면 족했다.


그 마음이면 난 더 바랄 게 없었다.


애초의 나는 내 가족들에게도 나의 친척들에게도 쉬쉬하고  나대로 몰래 전시를 한 거였다.


어차피 예술작품 관람 문화에 대한 방식과 상식은 다들 다양한 관점을 가지고 있었고 그걸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의 전시 의도는 내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그림으로 다가가고 먼저 소통하고 인정받고 싶었다.

가족들의 단결력이 좋아서 서로 사주는 모습도 참 좋지만 그런 게 아니라 정말 내 개인의 역량을 시험해 보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래야 철저히 나도 배울 수 있으니까.


그런데 내 전시 그림을 사준다는 게 아니라 해바라기가 '돈'을 끌어와준다는 기복적인 마음으로 그 그림을 그려달라는 것이었다. 내가 참 여유가 많아서 독박 육아를 하며 시간이 남아서 그림을 그리는 게 절대 아니다.

잠을 줄이고 내 아이에게 온전히 다 갔으면 좋을 마음까지도 조금 빚내어 도전하는 거였다. 남편의 회사도 불안정한 요즘 나의 커리어에 하나씩 도전하고 살붙이는 작업을 하고 있는 거였다.


https://www.instagram.com/p/B-FrbUSBNwS/?igshid=md9tkges1dnf



나의 경제적 자립을 위해 한다고 하지만 그런 식으로 해바라기를 그려줄 마음이 나지 않았다. 해바라기는 죄가 없다. '해바라기'는 내 사심으로도 그려보고 싶은 예쁜 꽃 중 하나였다.


다만 그 해바라기를 부탁하는 그 친구분들의 '의도'가 참 싫었다.



내가 어떤 상태에서 그리을 그리는지 어떻게 과정에서 나오는지 엄마의 친구분들은 모른다 쳐도 친정 엄마만큼은 그 마음을 알길 바랬다. 난 조심스럽지만 엄마에게 그려줄 수 없겠다고 말씀드렸고 울컥하는 마음이 올라왔다. 그렇게 부의 상징이자 최고 작가인 고흐의 대표 작품이기도 한 '해바라기'는 참 불편하게 내 마음에 숙제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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