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작업실 성장기
미대 졸업 후 쭉 한 길, 13년간 입시미술을 가르쳤었다.
일이 재미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절대 체력적으로 쉽지 않았고
입시 미술을 다시 가르칠 수 있는 시간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다시 복직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내가 애엄마가 되어있었기 때문이다.
아이를 만 3년 꽉 채워 가정보육을 하면서 항상 재취업에 대해서 전전긍긍했다.
나의 많은 페르소나 중에 가장 오랫동안 공들였고 사랑했고 아팠고 그럼에도 계속 쥐고 있었던 미술 하는 나를 계속 쓰고 싶었다. 그런 과정에서 책을 출간하고 처음으로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그런데 그런 모든 N잡러 중에 메인직업을 무엇으로 중심을 잡을까 고민을 했었다.
그렇게 하나 더 도전했던 게 미술홈스쿨이었다.
나는 누가 경영하는 곳에서 정말 내 것(학원)처럼 일하는 것은 잘했지만 정작 내 것으로 시작하려니 엄두가 나지 않았고 누구나의 첫 시작이 그렇듯 항상 떨렸고 항상 실수하지 않으려 애썼다.
나 정도면 실수에 이골이 났을 법도 한데 완벽주의가 자꾸 올라와 항상 힘들었던 적이 많았다.
그렇게 여차저차 3년 차가 되었다.
아쉽게도 이사 문제로 다시 타지로 가야 하는 상황이 생겼다.
이 한 달 조금 남은 상황에 아이들이 남아있을까?
생각보다 아이들은 잘 유지되고 있고 아이들과 또 어머님들과의 유대가 끈끈해져 있다.
금전적으로 아주 큰 성과는 아니지만 내가 글을 쓰게 된 근거랄까?
하나의 권위를 내세우자면 한 번도 학생이 20명 밑으로 끊긴 적이 없었던 점, 지금까지 꾸준히 일정 금액이 들어왔다는 점이다. 이 부분을 김승호 회장님이 쓰신 '돈의 속성'에서 발견하게 되었는데 홈스쿨을 운영하면서 소위 대박으로 많이 벌지는 않았지만 아주 천천히 꾸준히 입소문이 났고 첫 1년 때 빼고는 크게 홍보, 광고하지 않고 순수 입소문으로만 학생들을 모집하고 있다. 그런 와중에 일정 인원이 계속 유지됐다는 점.
그리고 근처 마트에서 안면이 없던 어머님이 인사를 하면서 어디로 이사 가냐고 아쉬워했던 점이 나에게는 그 어떤 금전적인 보상보다 값진 감동으로 남아있다. 한편으로는 뿌듯했고 한편으로는 아쉽기도 한 마음을 담아 좌충우돌 미술 홈스쿨을 창업한 이야기를 적어보려고 한다.
Let's sta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