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니작업실 May 29. 2024

꽃대 자르기

‘왕이 되려는 자, 왕관의 무게를 견뎌라’


꽃대를 자를 때마다 저 문구가 생각이 난다.

왕이라는 글자에 자기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영광을 넣어봐도 된다. 

생각이 확장돼 '왕관이라는 게 모든 걸 감수할 만한 왕관이 맞을까?' 하는 의심과 함께 지난날의 영광을 상징하는 시절인연의 전리품 같다는 생각이 따라왔다. 우리는 때때로 왕관을 바꿔도 되고 내려놔도 된다는 생각도 든다. 왕관을 내려놓고 머리를 자르고 목과 어깨의 건강을 다듬고 다시 왕관을 쓰려할 때, 곁에 왕관이 없다면 그것은 내 것이 아닌 것이다. 또 그때 내 왕관이 되어준다면 그것이야 말로 더 준비된 멋진 나의 영광일 것이다.

 나는 요즘 자신의 장점을 드러내라는 시대에 적어도 지금 시절의 한국에서는 문화가 바뀌기 전까지 때때로 자신에게 피어있는 꽃(장점)을 과감하게 잘라버리는 용기도 필요하다고 본다. 마냥 꽃만 핀다고 다 좋은 게 아니다. 주변 환경과 여건이라는 울타리가 있어야 꽃(자신의 장점)지켜진다. 어쩌다 꽃대가 올라 시선을 받을 수는 있어도 그만큼 존재감이 있기 때문에 불특정 다수의 손길에 꺾일 수도 있고 풀인 줄 알고 다가왔던 친구들은 꽃을 보는 순간 돌변할 때도 많다. 수많은 매체에 얼굴이 드러난 공인들 중에 인기와 실력이 드러나자 수많은 손길로 벼랑으로 몰린 사람이 너무나 많다. 나는 그들과 다를까? 그런데 인기가 생기고 재능이 빛을 발하면 그걸 지켜낼 울타리 작업이 있어야 한다. 울타리 작업을 하는 시기에 이른 꽃이 피었을 때, 꽃만이 드러나지 않게 가려주는 작업도 좋다. 우리는 그걸 겸손이라고도 하고 침묵이라고도 한다.

누구나 사랑을 받고 싶어 하는 무의식이 있다. 나 역시도 그렇다. 그런데 꽃이 있다면 더 사랑받을 것이기에 그 사랑이 유한하다고 믿는 누군가는 그 사랑이 줄어드는 줄 알고 뺏으려 들 수 도 있다. 그때는 꽃은 물론이거니와 꽃대, 잎사귀도 정신없이 밟힐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몸집을 키우고 터전을 만든다면 스스로 꽃을 피워도 조명을 조절할 수 있는 센스를 공부한다면 그 여정이 재미있을 것이다.


정원에서 길러진 정원수는 손길이 닿아야 제 매력을 보이는데 가지치기하지 않은 나무는 아무리 울창하고 멋지다고 우겨도 거미줄과 다양한 벌레들과 함께 음침하기 쉽고 잎의 모양이 예뻐 좋은 점도 보이지만 그만큼 단점이 자세히 보인다. 손을 많이 타는 반려동물처럼 말이다.

사람이 직접 가지치기를 하지 않는 산속 나무들은 제각각의 방법으로 가지치기를 한다.

나무끼리 경쟁하며 자라다 힘이 약하면 부러지기도 하고 휘어지기도 하지만 오래된 가지와 잎을 떨어뜨리는 것은 자연의 섭리다.


잎사귀나 줄기 같은 가지치기에 비해 꽃대 자르기는 쉽지 않았다. 화초에서 꽃은 식물에게 가장 빛나는 상징이니까 말이다. 내가 꽃을 보려고 이렇게 금이야 옥이야 가꿨는데 꽃을 잘라야 하다니 뭔가 아쉬웠다.

절화가 아닌 이상 살아있는 화초를 키우다 보면 강제로라도 꽃대를 잘라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초록 잎사귀만 있는 일명 '초록이'들만 있을 때는 보이지 않았던 병충해가 생기기 시작했다.

병충해를 잡다 보니 규칙을 발견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꽃이 있는 경우는 어쨌든 병충해에 취약하다는 것을 기본으로 알고 가야 한다. 상대적으로 해충이 잘 안 생긴다고 하는 종도 있지만 대체로 꽃이 피는 식물에는 유독 해충의 피해가 있었다. 그리고 정말 신기하게 진딧물은 식물의 약점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 꽃 중에서도 가장 약해 보이는 꽃에게 다 모여서 영양소를 갈취하고 있었다. 잎사귀 뒤에 있는 애들도 있다고 했지만 우리 집에서는 전부 꽃에만 모여있었다.  처음에는 다들 그렇듯이 집에서 하는 방법으로 시도해 봤다.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재료로 섞어 관수를 해주니 식물이 먼저 죽어나갔다. 오히려 시중에 나와있는 내 눈에 독해보이는 스프레이를 뿌려보니 생각보다 효과가 있었다. 집 안에서 키우다 보니 지속 가능하고 조금 덜 독한 방법도 알게 되었다. 차(tea)처럼 물을 우려서 그 물을 한 달간 천천히 뿌려주면 흙속에 있는 나쁜 벌레들을 잡을 수 있었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화분들은 스프레이로 그때그때 처리를 해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대 잡히지 않을 경우가 있다. 그때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일명, 삭발식. 중간 이상의 꽃대를 전부 잘라버리는 것이다.

해충들이 먹을 음식을 끊어버리고 잠시나마 꽃으로 가야 할 영양분을 뿌리랑 잎사귀나 새로운 꽃대를 만들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다.


나는 오늘 삭발해 버린 꽃대들을 보면서 아쉽기도 했지만 속이 시원하기도 했다. 꽃대와 해충이 공존하는 화분은 다른 화분과 가까이 둘 수 없기 때문에 항상 다른 곳에 뒀어야 했는데 오히려 가벼운 수형이 돼 보기 좋았다.


분명한 것은 새로운 잎사귀를 만들줄 알면 그 꽃은 결국 핀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꽃도 충분히 지금처럼 아름다울 것이라는 사실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