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같은 하루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히 Feb 20. 2017

100권의 책에 도전한다

10여 년만에 도전하는 '일 년 동안 책 100권 읽기' 성공 or 실패

내가 20살이 되던 해, 눈독 들이던 온라인 커뮤니티가 있었다. 바로 '1년 동안 책 100권 읽기'라는 모임이었다. 이 얼마나 거국적인 모임 주제인가. 책 100권이라니. 어디 가서 '저 1년에 100권쯤은 거뜬히 읽어제끼는 여자예요'라고 말하기 참 적당한(그러니까, 허세 부리기 좋은) 그런 주제였다. 이 모임을 처음 시작하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100권의 책을, 1년 365일 내에 읽는 게 얼마나 힘든지 감조차도 잡지 못했다. 알았다면 그렇게 성급하게 시작하지는 않았으리라.


일전에 비슷한 주제로 블로그에 장문의 글을 쓴 적이 있다. 나름대로 책 읽기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주저리주저리 글자들을 늘어놓았더랬지. 그 글을 쓸 때까지만 해도 '그래, 다시 한번 시작이다!'라고 생각했었는데, 눈 앞에 닥쳐온 인생의 위기에 그 목표는 달성하지 못했다. (회사에서 온갖 눈칫밥을 먹으며 짤리기 직전이었다.) 그랬던 목표를 3년 만에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실패했던 2014년과 달리 지금은 자금적 여유가 있다. 시간적인 여유는 예나 지금이나 없지만, 독서에 임하는 자세 중 하나가 '책은 읽을 시간을 마련해서 읽는 것이 아니다.'이다 보니 다시금 도전할 수 있는 것 같다. 내가 썼지만 참 괜찮은 자세인 것 같다.



시작이 반이다, 그 시작은 일단 '책을 사는'것부터.

각설하고, 책을 겁나 많이 읽어야겠다고 생각하자마자 온라인 서점에서 4권의 책을 엄선해서 골랐다. 지루해져 가는 직장생활에 한 줄기 빛이 되어줄 책으로 <퇴사하겠습니다>, 평소 어쭙잖게 관심 가져온 철학 분야의 부족함을 채워줄 <왜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가>, 예나 지금이나 주옥같은 시는 쩌는 감동을 주기 때문에 선택한 <길 위에서 읽는 시>, 마지막으로 예술적 소양을 키우고 싶은 바람을 반영한 <알랭 드 보통의 영혼의 미술관> 되시겠다. (덤으로 가죽 재질의 고급스러운 짙은 남색 빛 리갈 패드를 득템 했다. 사랑해요 교X문고) 일단 책은 질러놔야 읽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언제 어디서든 눈에 띄는 곳에 있어야 아무 생각 없이 멍 때리다가도 시선 닿는 곳에 책이 있기 때문에 펼칠 수 있기 때문이다. 빌린 책은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다. 며칠 후에 반납해야 하는 시간 제약이 걸리는 순간, 책 읽기가 취미가 아닌 '의무'가 되어 버리면서 나의 다짐과 의미가 퇴색하는 것 같다. (물론 책 대출 서비스를 잘 이용하시는 분들이 많다는 건 안다. 단지 난 책 소유욕이 강해서일뿐...)


이왕 책 사는거, 뭐라도 하나 더 쥐어준다고 하면 결제하는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여기까지 쓰다가 생각났는데, 같은 이유로 예전에 다녔던 회사에 엄청 많은 양의 책을 갖다 놨었던 적이 있었다. 그래도 나름 기획 밥을 먹으며 사는 사람이기 때문에 인터넷을 통한 정보검색만으로는 다양한 생각을 하는데 한계가 있었다. 그럴 때마다 평소 읽었던 책을 들춰보면 생각보다 좋은 아이디어가 나오기에 집에 있는 대다수의 책을 회사로 옮겨 왔었다. 몇 칸의 책장을 가득 채운 그 책들은, 권수로 치자면 100권에 육박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실제로 책의 도움을 수시로 받았다. 명언을 모아놓은 책, 형이상학적이고도 난해한 책, 그림만 있는 책, 잡지 같은 책 등등 종류도 다양했다. 아마 다양한 장르의 책이 있어야 시시때때로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란 생각에 그렇게 모아놨던 것 같다. 그렇게 몇 년간의 회사생활을 마치고 퇴사할 때가 되어서야 그 책들을 전부 회수했는데 (정말 하나같이 아끼는 책들이라 차마 회사에 기증하고 나올 수가 없었다...) 도저히 혼자 힘으로는 가져갈 수가 없는 양이라 다마스 퀵을 불러서 집에 보냈어야 했다.



책을 읽는데도 타이밍이 필요하다.

잠깐 이야기가 다른 쪽으로 샜는데,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하나다. 정녕 1년 동안 100권의 책을 읽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두둥) 내 해답은 '눈 앞에 책 두기'이다. 당장 읽든 1달 후에 읽든 어쨌든 책이라는 녀석이 계속 내 눈앞에서 알짱거리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게 알짱거리던 책녀석들은 내가 순간 방심하고 멍 때리려는 순간 나의 시야에 들어와 '지금이 책을 읽을 타이밍이다!!'라고 외친다. 이게 바로 '책을 읽는 타이밍'이라고 생각한다. 평소 책 읽을 시간이 없어서 책을 못 읽는다는 지인들에게 하는 한결같은 이야기다. "당신이 책을 찾는 것이 아닙니다. 책이 당신을 찾도록 해야 합니다. 언제 어디서든 책의 눈에 띄기 좋은 환경이어야 해요."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는다. 독서라는 것은 단순히 눈이 글자를 따라가는 행위가 아니라, 단어와 문장과 문맥을 읽어 내려가며 생각하고 사유하고 곱씹어볼 수 있는 행위이기 때문에 이러한 행위를 할 수 있는 환경 (예를 들면 잔잔한 음악이 흐르는 카페 같은 곳)이 받쳐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독서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또 다른 반기를 든다. 그들은 언제 어디서든 책을 읽는다. 출퇴근길 지하철 안에서도 읽고, 친구와의 약속시간을 기다리며 읽고, 자기 전에도 한번 슥 보고, 점심 먹고 남은 10분 동안 눈길 한번 주고 그러는 것이다. 이 모든 순간이 '독서의 타이밍'이다. 내가 생각하는 독서의 타이밍은 그저 이렇게 우리의 일과 중에 숨어있는 공백의 시간이다.


3일에 1권씩 읽으면 1년에 100권이에요 = 하루에 1000원씩 저금하면 1년에 36만 5천 원이에요

어릴 적에는 '오후 두 시부터 세시까지 한 시간 동안 책 읽어야지!' 같은 시간적인 목표를 정해놓고 책을 읽었다. 이건 책을 읽는다는 개념보다는 시간을 때우기 위한, 내가 놀기만 한 것이 아니라는 당위성 혹은 의무감으로 글자를 읽은 것에 더 가까웠다. 하지만 어른이 된 지금의 독서방식은 달라야 한다. 누군가의 강요로 인해 책을 읽는 것이 아니고, 심지어 내가 읽을 책을 내가 제대로 성심성의껏 골랐다면 시간과 읽은 양을 비교해서는 안된다. 물론 다독을 하기 위한 한 가지 방법이 될 수도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무작정 많은 책을 읽는다는 것이 아니라 그 책을 '진심'으로 '읽어야'한다는 것이다. 가끔 행간 사이에 숨은 문맥마저도 읽어야 그 글을 제대로 읽은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긴 하지만, 모든 독서가 그러할 필요도 없긴 하지만, 그래도 '나 한 시간 동안 50장이나 읽었네!!'는 왠지 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내 목표는 1년 동안 100권이다. 산수로 계산하자면 3.65일 (약 86시간)에 1권의 책을 읽어야 한다. 내가 하루에 8시간씩 잔다고 하면 24-8=16시간, 그리고 오로지 일에 집중하는 7시간을 빼면 9시간이 남는다. 여기에 출퇴근에 쓰이는 3시간을 빼면 7시간이고 밥 먹는 시간마저 빼면 5시간이 남는다. 이렇게 하루 5시간씩 약 3~4일 만에 한 권의 책을 완독해야 하는데 이걸 무려 100번이나 쉬지 않고 반복해야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써놓고 보면 한 시간 동안 책 100장 읽기와 뭐가 다른 게 있겠냐 싶겠지만, 시간의 단위가 달라졌기 때문에 가능하다. 실제로 책을 쉬지 않고 읽는다면 3시간 정도면 1권을 완독 하는 것이 가능하다. (내가 책을 읽는 속도로 봤을 때) 


자, 복잡하게 시간 계산 따위 집어치우고, 결과만 놓고 생각을 해보자. 시간 계산을 생략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경제학 용어 중에 '카페라테 효과'라는 것이 있다. 하루 5천 원짜리 커피 한 잔을 안 마신다면 1년이면 182만 5천 원을 모을 수 있다는 말이다. 아마 비슷한 다른 이야기들을 숱하게 들어봤을 것이다. 나는 전적이로 이 이론에 동의하지 않는다. 내가 작심삼일 캐릭터라서가 아니라, 365회를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성공시키는 것이 매우 힘든 일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계산하자면 내가 하루에 5천 원씩 직장 생활하는 9년 동안 매일 저금했다면 지금 내 통장에 1600여 만원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나 같은 사람이 비단 나 하나뿐이겠는가! 독서도 이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하루 동안 책을 읽어야 하는 시간을 정해놓고 매일매일 잘 지킨다면 1년 동안 책 100권 읽는 것은 어려울 일이 전혀 없다. 하루 1시간만 책을 읽으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냉정하게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고,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사람이 아닐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루 몇 시간 책 읽어야지'하는 짧은 단위의 계획보다는, 기간을 길게 하고 분량을 늘려놓는 것이 더 달성하기 쉬울 것 같다는 그런 느낌적인 느낌이 든다. 누가 이 이야기 좀 과학적인 뭐시깽이로 정리해 줄 사람 없을까. 집에 가서 오늘 읽기 시작한 책이나 더 읽어야겠다.


그래서, 내가 2017년 2월부터 2018년 2월까지 읽을 책 리스트 (2017. 2. 20 기준)

001. 왜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가 (마르쿠스 가브리엘 지음) - 읽는중

002. 퇴사하겠습니다 (이나가키 에미코 지음) - 대기중

003. 길 위에서 읽는 시 (김남희 지음) - 대기중

004. 알랭 드 보통의 영혼의 미술관 (알랭 드 보통, 존 암스트롱 지음) - 대기중




써놓고 보니 ... 한 백 오십만원짜리 목표구나. 뱃 속으로 들어갈 양식을 줄이고 마음과 지식을 살찌워보자.


매거진의 이전글 번아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