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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칸테 Mar 22. 2021

내가 아직도 순진한 여자로 보이니

도니체티-Quel guardo il cavaliere(기사의 눈길)

클래식 음악 중에서도 오페라는 언어의 압박, 긴 러닝타임에 서양 버프까지 받아 아무나 보는 거 아님 포오쓰를 뿜어낸다. 그렇지만 그 심리적 장벽을 뚫으면 이만큼 재미있는 창작물도 없으니 적극 권하고 싶다. 


그 옛날 샹송과 마카레나를 가사 뜻을 다 알고 부르진 않지 않았는가...




https://youtu.be/Oms75w4KWpw

서양 것들의 유서 깊은 음악극이라 줄거리와 설정도 심오할 것 같지만 몇몇 작품을 빼고는 전혀 아니다. 대부분 요즘 드라마 영화처럼 남녀 간의 사랑놀음 이야기고 K-막장드라마는 명함도 못 내밀 오페라도 있기 때문이다ㄷㄷ


대표적으로 라 트라비아타는 2000년대 초중반 드라마 작가들이 하도 우려먹어 뼈만 남은 부자 남주와 가난하고 병약한 여주 설정이 나온다. 내 눈에 지리산 황토가 들어가도 이 결혼은 안된다는 반대와 여주가 병이 심해져 요단강을 건너는 결말까지 한국산 막장드라마와 판박이다. 그 외에도 바람둥이로 살다 하늘의 단죄를 받는 오페라, 부모님의 반대로 야반도주했다가 여주 오빠와 남주가 원수 되는 오페라를 보면 서양 놈들은 한국산 막장드라마를 욕할 처지가 절대 아니다.




https://youtu.be/3r4rQuLth4s

그래서 캐릭터들도 고전소설처럼 단편적이다. 여주 노리나는 방구석에서(?) 로맨스 소설 속 내용을 노래를 불러 자신의 속마음을 표현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난 그이밖에 모른다는 순정파 캐릭터 같지만 노래 중반으로 가면 반전이 나온다. 화자는 학생주임 선생님처럼 네 머릿속을 꿰뚫고 있으니 개수작 부리지 말라는 당찬 성격임이 밝혀진다. 저 시대에 저런 캐릭터가 나올 수 있나 싶지만 세비야의 이발사의 로지나, 돈 줘봤니의 채를리나가 있으니 적당히 맹랑한 여성상은 크게 문제 삼지 않았나 보다.


가사만 보면 최근에 화제가 된 옥상집 드라마에서 una voce poco fa 대신에 이 노래를 불러도 괜찮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로지나가 난 순한 맛 여자 사람이지만 내 허물을 들추는 사람을 항복할 때까지 괴롭히겠다고 했듯이 노리나도 날 건드리면 참지 않겠다고 노래하기 때문이다. 플러스로 로지나가 피가로와 동맹을 맺어 알마비바 백작과 결혼했듯이 노리나도 말라테스타라는 훌륭한 조력자와 짜고 자신이 원하는 에르네스토와 이루어지는 걸 보면 그 시대 관객들 취향이었나 싶기도 하다.


하지만 Quel guardo il cavaliere는 소설책 속 내용을 통해 내면을 간접적으로 표현한다는 점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일반적으로 동서양을 막론하고 그 시대의 창작물들은 인물의 생각과 특성을 대놓고 다 알려주는 편인데 돈 파스쿠왈레 각본가와 도니체티는 새로운 시도를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때는 왜 저래 소리를 들었지만 지금 보면 남보다 앞서 나간 구성이니 탁월한 선택이었다.




https://youtu.be/oGdZPwv9vfw

내가 이 곡을 알게 된 계기는 벨기에 다큐멘터리 K-classic generation이었다. 벨기에 다큐답게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한국인 우승자들이 주인공으로 나와 황수미 소프라노의 결선 무대는 카페의 아메리카노 같은 자료였다. 영상만 보면 최적화된 컨디션인 것 같지만 사실 결선 때 감기 기운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홍삼 10팩 섭취한 듯한 파워는 어찌 나왔던 건가. 게다가 흔들리지 않는 편안한 발성을 유지하면서 연기까지 실감 나게 해내니 될놈될은 진리라는 점을 느끼고 간다. 오페라 줄거리를 하나도 몰라도 표정만 보고 어떤 캐릭터인지 알 수 있을 정도니 말 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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