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니칸테 Mar 29. 2021

가난한 학생이 인기 많던 시절

도니체티- O luce di quest’anima(내 영혼의 빛)

이상하게 오페라와 발레에서 꼭 부자 남주는 자기 정체를 평민으로 위장하고 여주에게 접근한다. 요즘 같으면 웃기지 마 얼마면돼를 시전 하며 작업을 펼치겠지만 그 시대 귀족들은 돈 자랑은 밀밭 낱알만큼도 안 하고 말빨로만 상대를 꼬셨다. 이럴 때 써먹는 가짜 정체는 새로 이사 온 가난한 농부나 학생이다. 오죽하면 새내기 때 들었던 오페라 교양과목에서 교수님이 그 시절엔 가난한 학생이 인기가 많았냐고 할 정도로 많이들 써먹은 뻥이다.



교육을 받기 힘들었던 시절이라 학생이라고 하면 지적으로 보여서 이성 꼬시기에 좋았나 보다.



도니체티의 <샤모니의 린다>도 왕정시대 막장 스토리의 설정을 충실히 따르는 오페라다. 자기 정체 숨기고 접근하는 부자 남주+가난하고 병약한 여주와 더불어 부자가 여자 한 명 가지고 대립한다는 점은 현대 창작물에서도 보기 힘든 전개다. <거침없이 하이킥>에서 삼촌과 조카가 같은 여자 사람을 좋아하는 대립구도가 있긴 하지만 별로 깊이 다루지 않아 지킬 선은 지킨 반면 여기선 대놓고 자기 아버지로부터 지켜주겠다며 사랑을 맹세한다. 호랑이 흡연하던 시절이라 창작물에서 다룰 수위를 정하는 비윤리적 한계가 작동하지 않았나 보다.




https://youtu.be/Q6HYCKj-reI

2006년 파리 샤틀레 극장 공연 실황 | 조수미 소프라노| 출처: 유튜브

O luce di quest’anima는 1막에서 남주 카를로가 같이 파리로 가서 살자는 구애를 받은 여주 린다가 기쁨에 겨워 부르는 노래다. 소작농 집 딸인 린다는 땅 주인인 후작이 재계약을 빌미로 자기 첩으로 삼으려는 사실을 눈치채고, 돈 벌러 파리로 떠나려 한다. 그 와중에 카를로가 후작의 흑심으로부터 안전해지고 같이 살림도 꾸리자며 파리로 떠나자고 제안해 린다는 꿈에 겨워 콜을 외친 것이다.


생각해보면 린다가 카를로의 제안을 덜컥 받아들인 이유는 카를로를 진심으로 사랑해서라기보다는 지긋지긋한 집구석과 시골 동네에서 벗어나고 싶어서인 것 같다. 당시에는 여자가 경제적인 독립을 하기 어려웠으니 떳떳하게 집을 떠나려면 결혼밖에 없었고, 우리나라도 90년대까지는 이런 이유로 일찍 결혼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으니 말이다. 물론 그렇게 한 결혼이 순탄하게 흘러가지 않는 건 안 봐도 너튜브다. 배우자감으로서 합격점인지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고 함량 미달인 상대와 결혼하기 쉬우니  오히려 결혼 전보다 훨씬 삶이 밑바닥으로 떨어지기 쉽다.




https://youtu.be/KGv1GgSm6kA

2018년 평창 패럴림픽 개막축제 | 이윤정 소프라노 | 출처: 유튜브

그렇게 린다와 카를로는 부모님의 반대도 무릅쓰고 파리로 가서 살림 차려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나면 흔한 3류 오페라로 끝났을 것이다. 파리로 가서도 후작 놈이 찾아와 자기랑 살자고 설쳐대고, 카를로는 어머니의 반대를 꺾지 못해 린다에게 확신을 주지 못한다. 결국 린다는 아버지 안토니오가 후작님 제발 소작 좀 다시 주십시오 하고 찾아올 때쯤에는 이미 후작의 첩이 되어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카를로가 다른 여자랑 결혼한다는 소식까지 들리자 쓰러져 기억상실증에 걸린다. (알고 보면 K-막장드라마는 다 오페라에서 따왔는지도 모른다)



다행인 건 카를로가 지조 있게 린다와 결혼하겠다고 주장해 파리에서 들린 소식은 가짜 뉴스였다는 사실이다. 그 후 린다가 샤모니로 돌아오자 부모님과 카를로가 마중 나오지만 기억상실증으로 누구세요만 시전해 억장을 무너지게 만든다. 그때 카를로가 한창 깨볶던 시절 부르던 노래를 부르자 0.0005초 만에 기억이 돌아오고, 둘의 결혼식으로 막을 내린다. 젠장, 이런 것까지 K-막장드라마랑 똑같다니 역시 이탈리아는 유럽의 한국인가.




https://youtu.be/wGi5qxfm0m4

주간 라벨라 '대한민국이 사랑하는 작곡가 시리즈' | 박주애 소프라노 | 라벨라 오페라단 유튜브

건전한 가사와 예고딩에게도 괜찮은 난이도라 콩쿠르 단골 레퍼토리다. 특히 라벨라 오페라단이 이 곡을 참 좋아하는지 유일하게 가사 해석 영상을 올리고 성악 콩쿠르에도 지겹도록 나온다. 이쯤 되면 라벨라 성악 콩쿠르에서 O luce di quest’anima를 매년 지정곡으로 올리나 의심해야 할 정도다;;


출처

https://terms.naver.com/entry.nhn?cid=60509&docId=2270778&categoryId=60509&anchorTarget=TABLE_OF_CONTENT1




매거진의 이전글 내가 아직도 순진한 여자로 보이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