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9번 '크로이처'
우선 제목만 들으면 베토벤이 후원 귀족에게 바친 흔한 소나타 같지만 그 세상 갬성 크로스오버를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보통 음악 작품은 다른 창작물의 원작보다는 소설이나 희곡의 2차 창작물 위치에 있는 편인데 크로이처 소나타는 원작 존재감을 뽐내는 특이 사례이다.
음악 작품이니 오페라나 발레 정도로나 개작했겠지....라고 생각하면 경기도 오산이다. 러시아 문학의 거물 톨스토이가 크로이처 소나타를 소재로 소설을 썼으니 요즘 말로 하면 원 소스 멀티 유즈급이다. 아마 장르를 넘나드는 2차 창작은 이때부터 시작하지 않았을까 싶다.
바이올린 곡을 이야기하며 정경화 선생님을 빼놓으면 섭하다. 인기 연주자라곤 백인 남자 사람만 존재하던 시절에 신의 활부림으로 전 세계 음악 평론가들의 눈코입을 오픈시킨 최초의 한국인 연주자이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사이버펑크 힙한민국이지만 정선생님이 활동할 시절만 해도 찢어지게 가난한 한국전쟁의 나라라 그런 나라는 처음 들어 보네 하는 반응이 당연했다;;
아니, 어떻게 (전쟁고아가 넘쳐나고 가난한) 한국 사람이 바이올린을 해?
어딜 가든 이런 시선이었으니 어디서 미개국 출신 애송이가 수준 높은 우리 음악을 모욕해?라는 속마음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사람도 많았다. 심지어 데뷔 무대 리허설에서는 원래 연주할 음악 대신 몰래 다른 음악을 연주해 엿먹이려고까지 했으니..... 정 선생님답게 눈도 꼼짝 않고 급 바꾼 음악을 완벽히 연주해 다행이었지만.
왜 바이올린 곡에 2호 최애님인가 싶지만 피아니스트라고 독주곡 협주곡만 연주하진 않는다. 유명 연주자일수록 어릴 때부터 합주 기회가 많아 내 파트 들어가는 타이밍과 팀원과 호흡 맞추기에 능숙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국제 콩쿠르에서 추가하기 시작하는 실내악 무대에서 오늘 처음 만난 트리오 콰르텟과 몇 년씩 맞춰본 포오쓰가 나지.....
같이 연주할 사람이 없어 독주곡만 연습해야 하는 취미러는 그저 울 뿐이다.
베선생님이 세상을 떠난 다음 해에 태어난 톨스토이는 남다른 소재와 방향을 제시한 작가답게 음악에서도 영감을 얻었다. 제목이 원작 음악명을 러시아식으로만 바꾼 <크로이체르 소나타>라 숲 속 피아노를 연주하며 쇼팽 콩쿠르 짱먹는 만화 같은 성장소설류 겠지? 싶지만 톨스토이가 그런 작품을 쓸 리 없다. 영국 소설이 명예를 위해 죽고 프헝쓰 소설이 사랑을 위해 죽을 때 그냥 죽는다는 러시아 소설계의 짱이 성장소설을 쓰는 건 우물가에서 캐러멜 마끼아또 찾는 소리다.
오히려 작중 주인공들은 음악과 함께 성장하기는커녕 구닥다리 마인드만 키워간다.
이야기는 기차 여행 중인 주인공이 옆자리 손님들의 망언에 진저리 치던 중 귀족 포즈드니셰프의 사연에 귀 기울이며 시작한다. (그렇다. <카르멘>처럼 이 작품도 액자식 구성이다.) 방탕 없인 못살던 포즈드니셰프는 난봉꾼들 내로남불 뇌구조답게 아내에게 집 안에 얌전히 틀어박혀 살림이나 똑바로 하라고 요구해 결혼생활 시작부터 삐그덕거렸다. 그러다가 포즈드니셰프는 아내가 바이올리니스트 트루하체프스키와 크로이처 소나타를 연주하는 모습에 바람났다고 의심하기 시작했고, 몰래 집으로 돌아와 두 사람이 다정한 한때를 보내는 장면을 두 눈으로 영접한다. 결국 눈깔이 360도로 돌아간 포즈드니셰프는 아내를 저 세상으로 보내며 끝난다. 그러게 있을 때 잘하라니까ㅡㅡ
줄거리를 보면 하차투리안의 왈츠로 유명한 레르몬포트의 희곡 <가면무도회>와 소름 돋을 정도로 빼다 박은 구성이다. 당시 귀족 사회가 타락세를 타 나는 난잡하게 살지만 넌 지조 지켜야 한다는 내로남불식 사고방식이 만연해 니들 생각이 얼마나 맷돌 손잡이가 없는지 깨달으라고 이런 창작물을 많이 지었나 보다.
크로이처 소나타는 문학가뿐만 아니라 후대 음악가에게도 좋은 모티브를 주었다. 체코의 작곡가 야나체크는 이 곡을 주제로 현악 4 중주곡을 지었고, 부제도 크로이처 소나타라고 지었다. 하지만 클래식 음악 코어 마니아가 아니면 모르는 작곡가답게 멜로디 꺼졍 난 표현력과 독창성을 잡을 거야 모드이기 때문에 클알못이 들으면 뇌내혼란 현상이 일어나기 매우 쉽다. 클래식 음악에 익숙하지 않다면 모선생님 베선생님처럼 멜로디가 두드러지는 스타일의 음악부터 듣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