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베르트 현악 사중주 14번 '죽음과 소녀'
예나 지금이나 예술가들이 요단강 횡단의 유혹에 시달리는 건 똑같다. 남들은 느끼지 못하는 작은 차이를 잡아내 나만의 감각으로 결과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예알못이라면 별거 아니라고 툭툭 털고 일어설 일도 두 번 세 번 곱씹으며 멘탈이 지구 멘틀을 뚫고 들어간다. 주어진 틀에 자신을 맞춰야 하는 고전 예술 분야는 덜하지만 자유로운 분위기인 현대 예술가들이 탈선에 빠지는 현상은 다 이유가 있는 거다.
슈선생님도 요단강 횡단의 유혹을 피해 갈 수 없었다. 가난한 집 출신+ 첫사랑에게 배신+ 살아생전 인정 못 받음 콤보 인생인데 저세상행 티켓 결제버튼을 매일 눌렀다 취소했다 하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결국 불혹을 찍어보지 못하고 요단강을 넘어갔으니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는 가사는 슈선생님을 보고 만들었나 싶다.
<죽음과 소녀>는 슈선생님의 주력 메뉴인 가곡부터 시작한다. 첫사랑의 강렬함과 지옥 불가마 같은 삶으로 점철된 슈선생님답게 주요 가곡 주제는 흔남의 연애사와 저승사자의 신입 멤버 영입 회유다. 당연히 <죽음과 소녀>는 저승사자의 신입 꼬시기가 주요 내용이다. 피아니스트 고문 곡으로 유명한 <마왕>과 전반적인 줄거리는 똑같지만 열린 결말로 마무리된다는 점이 핵심이다.
사실 말이 열린 결말이지 소녀가 저승사자의 팔 안에서 잠든다는 건 안 봐도 너튜브다.
원작보다 더 유명해진 현악 4중주 버전에서 원작 가곡의 선율은 2악장에 쓰인다. 중주 곡들은 독주곡과 성악곡에 비해 음악 자체의 구조를 중요시해 음악이 오른쪽 귀로 들어갔다 왼쪽 귀로 나가기 아주 좋다. 국제 피아노 콩쿠르 결선 실내악 라운드나 뫄뫄와 친구들 실황 영상을 보고 작곡가님을 만나고 오는 건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중주 작품을 처음부터 끝까지 눈꺼풀 부착 현상 없이 듣기 시작한다면 축하한다. 이제 클래식 조금잘알에서 클래식 오~잘알로 진입했다.
에스메 콰르텟도 클알못들이 그나마 들을 만한 중주 작품은 <죽음과 소녀>라고 생각했는지 해설이 있는 음악회에서 선곡했다. 경건한 감상은 못해도 노동요로 쓰기엔 경기도 안성맞춤이라 라디오로 생중계되면 클며듦 현상을 이끌 수 있기 때문이다. 너무 역동적이거나 해괴해서 정신을 어지럽히지 않고 러닝타임도 길어 효과가 아주 좋다. 그래서 한창 일에 집중하다가 음악 끝나서 다음 곡 찾아야 할 필요가 없어 에스메 콰르텟 멤버들이 마무리 포즈를 취하면 내 업무도 마무리 단계로 들어가 노동요의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는 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