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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칸테 Jul 13. 2021

우리들만의 영화에 주인공은 바로 너였어

서울시향 스티븐 허프의 라흐마니노프

내가 아플지라도 숨은 엔딩이라도


우리나라에서 제일가는 오케라는 서울시향이지만 나와는 인연이 없었다. 상반기 정기연주회를 내가 싫어하는 놋쇠홀에서만 열어 갈 마음이 전혀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왕복 2시간 가까이 잡아야 해 1부 끝나면 강제 귀가해야 하고 시장판 분위기 때문에 공연 시작하기도 전에 방전되는 일이 흔하다ㅠ 


반면 예당길은 이러지 않는데 오늘따라 가는 길이 험난했다. 열차 화통 섭취 한 팀이 내리니 또 다른 팀이 청각 테러를 선사했다. 이제 조용히 가겠구나 싶었는데 핸드폰 지하철 모드 개발이 시급한 통화소리가 들린다. 예민미 타고 태어난 내가 잘못이지.(그런데 예민미 없으면 피아노도 안 치고 클덕질도 안 했을 텐데...?)

주말 5시 공연은 처음이라 시간 계산을 잘못해 너무 일찍 왔다. 3355 지인 잔치 사람 밭인 모습은 없고 어셔들도 안 돌아다니는 한산 of 한산이다. 대신 의자는 널널해서 예당 공연 투어 역사상 최초로 앉아서 쉰다. 가만히 앉아있으니 악기 연주하는 소리도 들린다. 콘서트홀 안에서 최종 리허설을 불태우고 있는 중이겠지.  

예전레코드 건너편 콘서트홀 계단은 연주자 상봉의 장소다. 대기실과 연결된 계단이라 코시국 없던 시절 싸인회 있는 연주회는 이 계단으로 연주자가 드나들었고 오케 단원들과 지휘자는 아예 여기서 퇴근하며 지인들을 만났다. 지금은 코시국이라 대기실 연결통로는 막아놨다고 하니 참고하자.

이날은 과도한 폰 사용으로 심포니 카페 옆 충전기에 폰 밥을 먹였기 때문에 더 이상의 사진은 없다.

들어가니 현음답게 오케스트라 자리의 법칙을 깨는 배치가 눈에 띈다. 콘트라베이스가 양쪽으로 찢어져 있고 평소 구석만 차지하던 하프 피아노 첼레스타는 정중앙으로 이사 왔다. 그러다 보니 프로그램 중간에 악기를 옮길 일이 많아 오케스트라 계단 없이 중고딩학교 교실처럼 고개를 치켜들고 지휘자를 보는 구조다. 키 큰 단원이 바로 앞에 앉으면 지휘자 사인이 안 보여서 어쩌지?


서울시향 연주회의 깨알 재미는 악장 맞히기다. 악장이 공석이라 부악장이 돌아가며 악장을 맡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오늘 공연은 신지아 바이올리니스트의 호적 메이트 신아라 님 당첨이다. 실루엣부터가 혈육임을 온몸으로 증명하니 역시 유전자의 힘은 위대하다. 


버선생님은 피아노 레슨 받던 시절 명곡집 2권에 실린 소나티네로 만난 작곡가다. 악보는 간단했지만 평소 치던 고전파 낭만파 작품의 박자와 영 딴판이라 레슨 내내 고생했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여느 오케 정기공연처럼 현과 타악기 첼레스타를 위한 음악도 5~6분짜리 서곡 스타일 곡인 줄 알았는데 악장도 분할된 2부 스타일 곡이었다;; 마치 애피타이저를 시켰는데 치맛살 스파게티가 나온 기분이다. 게다가 타악기 솔로와 피치카토로 버무려진 조용한 부분도 많아 벨소리 관크가 터질까 같이 피가 증발하기도 했다. 니가 연주하니


라선생님 파가니니 랩소디까지 하고 인터미션일 줄 알았는데 관객석에 불이 들어왔다. 서울시향 연주회 인파답게 이미 1.5층 多不有時는 만원이라 인춘아트홀 옆 多不有時까지 우사인 볼트 모드로 후딱 다녀오는 걸 추천한다.  


2부 시작은 라선생님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랩소디다. 파선생님의 불후의 명곡 라라 라도시라 미미 미솔파미 카프리스 24번이 주제인 피아노 협주곡 버전 변주곡이다. 불과 몇 주 전 관람한 유니버설 발레단 '트리플 빌'의 1부 프로그램 음악으로 들어 뇌내 콘서트홀에선 포디움 앞에 리나리노들이 춤을 추고 있었다ㄷㄷ


허프님의 앙코르는 라선생님 악흥 4번, 프렐류드 5번을 궁예 했는데 갑자기 뭥미싶은 선율이 들려온다. 하지만 바로 나를 버리고 가는 임에게 발병 난다고 저주(?)하는 한국인 심금 자극 음악이 당첨되었다. 허프님이 직접 편곡하셨다니 역시 한국에 한 번도 안 온 아티스트는 있어도 한 번만 오는 아티스트는 없나 보다.


버선생님 음악의 충격과 공포를 달래기 위해 마지막 프로그램은 클알못도 한 번쯤은 들어봤다는 카르멘 모음곡이다. 레전설 스케이터 카타리나 비트와 데비 토마스가 같은 시즌에 카르멘으로 대결을 펼쳐 후배 스케이터들에게 귀감이 되었고, 너도나도 카르멘의 최후를 표현한 엔딩을 따라 해 연맹에서 빙판에 엎어지지 못하게 하는 규정도 만들 정도였다. 사실 오페라와 오케스트라용 모음곡 말고도 발레로도 만들었으니 이쯤 되면 2차 창작으로 더 유명해진 대표적인 클래식 작품이 아닐까 싶다.


카르멘의 줄거리는 대딩 새내기 때 들은 오페라 교양수업으로 꿰뚫고 있었다. 그때도 클래식 조금잘알이라 재밌어 보여 신청해 인생 첫 A+을 안겨준 과목이 되었다. 남들은 밥먹듯이 지각한다는 1교시 수업이어도 여유 있게 도착해 음료수까지 뽑아 마시고 감상 시간에 꿈나라 여행을 떠나던 학생들 사이에서 초롱초롱 눈망울로 열심히 봤으니 시험시간에 모르는 문제가 없던 건 예견된 결과였으랴. 


오케스트라 앙코르는 며칠 전 강심 낮콘서트와 똑같이 비선생님 파랑돌, 아를의 여인 중 미뉴에트를 궁예 했지만 슈텐츠님은 객석 조명을 밝혀 집에가 모드를 실행하셨다. 오늘 지각 관객이 많아 기분이 안 좋으셨나? 아니면 원래 설샹은 오케스트라 앙코르를 잘 안 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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